'협치' 가능할까…윤석열-민주당의 불편한 인연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여권 인사와 친분 거의 없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제1야당이 될 더불어민주당과의 협치를 연일 강조하지만, 민주당은 172석 의석을 무기로 맞서고 있다. 민주당 인사들과 친분도 적어 관계를 활용한 돌파구 모색도 쉽지 않아 보인다. 2019년 7월 8일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왼쪽)와 더불어민주당 인사청문위원들. /국회사진취재단.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카메라 앞에선 얼굴을 붉히지만 카메라가 꺼지면 웃으며 악수한다.' 정치권에서 여야 정치인의 관계를 잘 대변하는 말로 쓰인다. 양당 구조 속에서 정치적 견해차로 상대방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지만, 평소 쌓아둔 친분을 활용해 냉랭한 관계를 녹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연일 야당과의 협치 메시지를 내고 있다. 이에 제1야당이 될 더불어민주당과의 첫 관계 설정에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정계 입문 9개월의 '0선' 정치 신인으로, 국회 의정활동 경험이 전무해 그와 사적 친분이 있는 현 여권 인사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술 좋아해 만나"...양정철 전 원장과 인연 눈길

윤 당선인과 가까운 민주당 인사로는 문재인 대통령 '복심'으로 불리는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거론된다. 두 사람은 20대 총선 인재 영입 과정에서 인연을 맺었다. 윤 당선인은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수사 과정에서 배제됐고, 양 전 원장은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활동할 때였다.

양 전 원장이 윤 당선인에게 여러 차례 20대 총선 출마를 제안했던 사실은 2019년 7월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윤 당선인은 청문회 당시 "(2015년) 대구고검에 근무하던 시절에 가까운 선배가 주말에 서울에 올라오면 얼굴을 한번 보자고 해서 식사장소에 갔더니 양 원장이 나와 있었다"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제안이 있었지만 거절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두 사람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윤 당선인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할 때, 차기 총장 후보군으로 거론되던 2019년 초에도 만난 사실이 알려지며 인사청문회 당시 '정치적 중립성 훼손'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에 윤 당선인은 "출마 권유의 인연으로 서로 술을 좋아해 만난 것일 뿐 다른 목적은 없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두 사람의 친분은 대선 과정에서도 수면 위로 떠 올랐다. 비공식적으로 윤 당선인을 수행하고 있는 황 모 씨가 양 전 원장의 민주연구원장 시절 수행·운전을 담당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황 씨는 양 전 원장이 민주연구원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 채용돼 약 1년간 업무용 차량 운전과 양 전 원장 공식 일정을 수행해왔고, 2020년 4월 총선 직후 양 전 원장이 연구원장직을 사임하자 함께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선 황 씨를 연결고리로 두 사람이 친분을 이어온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윤 당선인에게 출마를 권유한 것을 계기로 사적 모임에서 만나 친분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4월 17일 서울 여의도 민주연구원에서 업무를 본 뒤 건물을 나서는 양 전 원장. /국회사진취재단

◆정대철 등 비문계 원로와 친분 유지

윤 당선인과 인연이 있는 또 다른 인물은 친문계와 갈등을 겪다 2016년 민주당을 탈당한 뒤 최근 복당한 정동영 전 대표, 정대철 상임고문이다. 윤 당선인이 지난해 3월 검찰총장에서 물러나고 얼마 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이들의 인연을 조명하는 글을 올리면서 주목받았다.

당시 조 의원의 글에 따르면 2013년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장으로 부임해 박근혜 정부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수사를 맡았던 윤 당선인이 검찰 수뇌부의 반대에도 적극적인 수사를 벌이다 업무에서 배제당했다. 이 때 정동영 전 대표와 김한길 전 대표가 그를 격려하면서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특히 윤 당선인과 정 전 대표가 "끈끈한 사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정 전 대표는 윤 당선인이 신임 검찰총장으로 예방했을 때 본 것 외에는 사적 만남을 가지지 않았다며 친분설을 부인한 바 있다. 이에 반해 김한길 전 대표는 최근 윤석열 당선인 인수위원회 국민통합위원장에 임명돼 오랜 친분을 증명했다.

정 고문은 윤석열 당선인과 대학교 선후배 관계로, 평소에 가끔 통화하는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28일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정 고문. /남윤호 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인 '동교동계 원로' 정대철 고문 역시 윤 당선인과 인연이 깊다. 대학교(서울대 법과대학) 선후배 사이인 데다, 박영수 전 특검을 연결고리로 친분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 고문은 지난 1월 <더팩트>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이 같은 친분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윤 후보는 검사 때부터 상당한 시간을 내가 데리고 다녔다. 같이 밥하고 술도 여러 번 먹었다. 윤 후보하고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대통령 후보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라고 했다. 정 고문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윤 당선인을 영입하려 했던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자리를 주선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6년 뒤 야권 단일화와 공동정부 파트너가 되는 인연의 첫 시작이었던 셈이다. 정 고문이 국정 경색 국면에서 청와대와 제1야당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우리 형"...어제의 동지에서 오늘의 적으로

윤 당선인과 사적 친분이 있는 여권 인사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다.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 23기 동기다. 박 장관의 국회의원 당선 축하를 위한 연수원 동기 모임에서 윤 당선자는 아무 말 없이 술 한 잔만 마시고 10분 만에 모임을 떠났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박 장관은 윤 당선인이 정치권에서 비판을 받을 때 방패막이 역할도 자처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 검찰 지휘라인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직 3개월' 징계를 받고 수사에서 배제됐을 때다. 박 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윤석열 형! 형을 의로운 검사로 칭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과 검찰의 현실이 너무 슬프다"며 "굴하지 않고 검찰을 지켜주세요, 사표 내면 안 됩니다"라며 그를 응원한 바 있다. 이후 윤 당선인이 2016년 국정농단 사건 박영수 특검팀 수사팀장에 지명되고,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 임명됐을 때도 "성격이 호방하고 술을 잘 마신다. 디테일에 강하고 집념이 있다"며 호평 일색이었다.

하지만 '조국 사태'를 필두로 윤 당선인이 유재수 전 부산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송철호 울산시장 관련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등 정권 비리 의혹을 수사하자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 2020년 10월 국정감사에서는 윤 당선인을 향해 "윤석열의 정의는 선택적 정의"라며 "똑바로 앉으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최근에는 윤 당선인에 대해 "(사법연수원) 동기인데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고 짧은 말을 남겼다.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으로 물망에 오르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오른쪽)은 윤석열 당선인이 검찰총장 시절 대립각을 세워왔다. /더팩트 DB

윤 당선인이 총장 시절 정권을 겨냥한 수사에 나서자, 강하게 맞서면서 충돌했던 인물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다. 추 전 장관이 두 차례 검찰 고위 간부급 인사를 단행하면서 엇박자가 나기 시작했고, 검언유착 사건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의 감찰 방해·재판부 불법 사찰 논란으로 검찰총장직 직무정지 결정을 내리자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는 결국 윤 당선인이 지난해 3월 자진사퇴하는 계기가 되면서 추 전 장관은 보수 진영에서 '윤석열 정부 일등 공신'이라는 역설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도 대선 과정에서 윤 당선인 장모의 요양병원 특혜 의혹, 배우자 김건희 씨의 주가조작 및 이력 위조 의혹 등을 제기하면서 '윤석열 저격수'로 불린다. 공교롭게도 추 전 장관과 박 의원은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물망에 올랐다. 만약 이들 중 한 명이 당선될 경우, 윤석열 정부에서 수도의 자치단체장으로서 또 한번 강하게 대립하는 구도가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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