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정수 기자] 문재인 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한때 80% 국정 지지도, 50% 여당 지지율, 지방선거 압승, 총선 180석 확보를 자랑했던 정부·여당이었지만 불과 5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정권 10년 주기설'도 깨졌다. 민심의 경고등은 선명했지만, 사실상 이를 간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정책·조국 사태...'내로남불'은 덤
민심 이탈의 결정적 원인은 부동산 정책으로 꼽힌다. 문제인 정부는 규제를 통한 투기 수요 차단과 실수요자 중심의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내세웠다. 단행한 부동산 정책만 모두 28차례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며 내놓은 대출 규제는 애꿎은 실수요자들에게 불똥으로 튀었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면서 부동산으로 인한 자산 격차 확대에 따른 절망감이 전 세대에 걸쳐 자리 잡게 됐다는 관측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청와대 인사들이 보여준 '내로남불' 행태는 민심 폭발의 도화선이 됐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임대차 3법' 시행 직전 자신의 강남 아파트 전세 보증금을 대폭 올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흑석동 부동산 투기 논란'으로 사퇴했다.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부의 집값 안정을 위한 진실성 표명 차원으로 참모들에게 실거주 목적의 1채를 제외한 부동산을 처분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서울 반포 아파트 대신 충북 청주 아파트를 팔아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조국 사태'는 문재인 정부의 신뢰와 도덕성이 빛바래진 사건으로 꼽힌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여러 의혹 가운데 자녀 입시 특혜 의혹은 결정타였다.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 1월 딸 조민 씨의 동양대 표창장을 위조하고, 조 씨의 입시에 부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자녀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의 유죄 판결을 받아 2030세대의 분노를 야기했다.
조국 사태로 여론은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갈라졌다. 서초동에서는 '조국 수호' 집회가, 광화문에서는 '조국 반대' 집회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은 갈등 봉합에 나서기보다 이를 선거 국면으로 끌고 가며 비판을 받았다.
김용민·김남국 민주당 의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민주당은 조 전 장관 시절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용민 의원을 남양주병에 전략공천, '조국 저격수'로 불린 주광덕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과 맞붙게 했다. 김남국 의원은 '조국 백서'의 필자로 조 전 장관에 비판적 입장을 취한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의 지역구에 추가 공모를 통해 공천을 신청하며 '조국 내전' 논란이 일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국민의힘을 향한 2030세대의 지지율은 두 번에 걸쳐 크게 높아졌다"며 "첫 번째는 2019년 발생한 조국 사태다. 두 번째는 지난해 4·7 재보궐 전후인데 그 기저에는 부동산 문제가 깔려있었다"고 진단했다.
◆권력형 성범죄에도...'피해 호소인' '후보 출마'
민주당 내부에서 발생한 '권력형 성범죄' 사건은 정부·여당에 대한 실망감으로 이어졌다. 안희정·박원순·오거돈 사건이 그렇다. 특히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의 경우 민주당 여성 현역 의원(남인순·진선미·고민정)이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하며 2차 가해 논란이 있었다.
또한 민주당은 박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으로 치러진 서울·부산 재보궐선거 후보 출마를 위해 당헌을 고치기도 했다. 민주당 당헌 제96조 2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선을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돼 있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 전 서울시장 사건에 대해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애매한 입장을 내놨다. 이어 당헌 수정에 대해서도 "당헌은 고정불변일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민주당은 4·7재보궐 서울·부산시장 선거에서 모두 패배했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무너진 'K방역'도 선거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지난달 17일 첫 10만명대 진입 이후 10일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32만명으로 이틀 연속 30만명대를 넘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강조했던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사실상 실패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불만이 폭발했다는 분석이다.
남북관계에 대한 실망감이 이번 대선에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기 남북관계 개선에 집중했지만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며 "초기에만 하더라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지만 오늘날 북한은 사전투표일에 미사일을 쏘고 있다. 사실상 '빈손 대북 정책'이라는 점에서 뼈아픈 대목"이라고 진단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에 이어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2018년 6월 싱가포르,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노력했다. 문 대통령은 2019년 9월에 평양을 방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북한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한반도는 긴장 상태로 전환됐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부동산, 코로나 대응, 검찰 개혁 등 다양한 세부영역들이 많지만 결국 이번 대선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라며 "유권자들은 앞으로 5년을 더 민주당 정권과 함께하게 될지에 대한 선택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는 '다름의 문제'를 '옳고 그름 또는 선악 구도'로 봤던 것 같다"며 "촛불 정국을 지나 적폐청산을 강조했지만 선거 결과, 대한민국이 절반 구도가 된 점에 있어서는 역사적 평가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