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D-1' 문 대통령, 투표 독려 속 '대선 쟁점' 이례적 개입도


文 "여가부 업무 더 발전해야" vs 尹 "여가부 폐지" 재차 강조

문재인 대통령은 3·9 대선 전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문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제20대 대통령 선거 본투표를 하루 앞둔 8일 이번 대선과 관련한 여러 메시지를 내놨다. 국민들의 투표를 독려하면서, 선거관리위원회가 사전투표 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안전하고 공정한 선거 관리를 할 것을 주문했다. 또한 대선 쟁점 중 하나인 여성가족부 존폐와 관련해 야당 대선 후보와 다른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문 대통령의 이번 주 공식 일정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화상으로 주재한 국무회의가 유일했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이 대선 전 마지막 공식 회의에서 어떤 메시지를 밝힐지 이목이 쏠렸다.

◆"국민의 집단지성 보여 달라…당선인 측과 외교·안보 협력"

문 대통령은 회의 모두 발언에서 국민을 향해 "내일은 20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앞으로 5년간 국정을 이끌어갈 대통령을 선택하는 '국민의 시간'"이라며 "나라와 국민의 운명과 미래를 선택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투표에 임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한 "사전투표에서 37%에 육박하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는데, 지난 총선과 대선보다 10% 이상 상승한 것으로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며 "내일 본투표에서도 적극적인 참여로 우리 국민의 집단지성을 보여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오미크론 대유행으로 인해 내일 본투표에서는 사전투표 때보다 훨씬 많은 확진자들의 투표 참여가 예상된다"라며 "선관위는 개표가 끝나는 순간까지 투·개표 관리에 한치의 소홀함도 없도록 최선을 다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 특히 사전투표 관리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교훈으로 삼아,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 확진자들의 투표권 보장에 빈틈이 없도록 해 주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3·9 대선 투표로 선출될 새 대통령 당선인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 등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과 관련해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의 외교와 안보에 대해서는 대선이 끝나면 당선인 측과도 잘 협력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의 모두 발언 이후 비공개로 진행된 국무회의에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여가부 폐지' 공약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회의에서 정영애 여가부 장관으로부터 '여가부의 성과와 향후 과제' 보고를 받은 뒤 "이번 대선에서 여가부의 명칭이나 기능 개편부터 폐지에 이르기까지 여가부와 관련된 공약이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라며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오늘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가부의 연혁과 성과를 되돌아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여가부의 역사를 언급했다.

김대중 정부 때 '여성부'로 출범한 여가부는 노무현 정부에서 가족과 보육 업무를 복지부로부터 이관받아 역할을 더 확대하면서 명칭을 '여성가족부'로 변경했다. 다음 정부인 이명박 정부에선 당초 여가부 폐지를 추진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가족과 보육 업무를 복지부로 다시 이관하고 명칭을 여성부로 바꾸며 역할을 축소시켰다. 2년 뒤 이명박 정부는 복지부에 이관했던 가족과 보육 업무에 더해 청소년 정책까지 여성부로 이관하며 간판을 다시 '여가부'로 바꿨으며, 현재의 여가부는 그 조직 틀을 유지하면서 역할을 조금씩 강화해 왔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여가부는 지난 20년간 많은 성과를 냈고,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할 과제들도 많다"라며 "여가부가 관장하는 여성 정책, 가족 정책, 청소년 정책, 성폭력·가정폭력으로부터의 보호 등의 업무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 시대적 추세이고,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이른바 젠더 갈등이 증폭되면서 여가부에 대한 오해도 커졌다. 그렇게 된 데는 여가부 자신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라면서도 "여가부가 하는 일, 여가부의 역할에 대해서부터 오해가 많다. 여가부는 올해 예산 규모가 1조4600억 원으로 정부 전체 예산의 0.24%에 불과한 매우 작은 부처이며, 결코 여성만을 위한 부처가 아니다. 오히려 양성평등 관련 예산은 여가부 예산에서도 7% 남짓으로 매우 작다. 한부모 가족 지원, 아이돌봄서비스 등 가족 정책에 62%의 예산을 쓰고 있고, 청소년 정책 19%, 권익증진 9%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고 여가부의 역할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차기 정부는 여가부의 역할이나 명칭, 형태 등에 관해 새로운 구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분명한 것은 여가부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되든 여가부가 관장하는 업무 하나하나는 매우 중요하고 더욱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여가부와 관련된 논의가 그와 같은 인식 하에 건설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길 바라며, 우리 사회가 성평등을 비롯한 포용 사회로 더 나아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8일 SNS에 올린 여성 정책 관련 단문 공약들. /윤 후보 페이스북 갈무리

◆文, 대선 전날 '여가부 역할' 尹과 반대 입장 표명

문 대통령의 여가부 관련 발언에 대한 보도가 나간 이후 윤 후보는 SNS를 통해 대선 과정에서 언급했던 '여가부 폐지', '성범죄 처벌 강화, 무고죄 처벌 강화', '여성이 안전한 대한민국, 성범죄와의 전쟁 선포' 등 여성 관련 단문 공약을 연달아 붙인 사진을 게시했다. 이는 여가부에 대해 문 대통령과 전혀 다른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함인경 국민의힘 선대본부 상근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여가부의 민주당 권력형 성범죄 침묵', '민주당의 자당 소속 인사 권력형 성범죄 침묵 및 피해자 2차 가해',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 지칭하며 2차 가해에 가담했던 민주당 의원들 다수가 이재명 후보 대선 캠프에서 여성 정책을 논의'하는 상황 등을 언급하면서 "이 후보는 '형수 욕설'로 유명하고, 교제하던 여성과 그 어머니를 무참히 살해한 조카의 잔혹범죄를 '데이트폭력'으로 규정하고 심신미약으로 변호한 사람"이라며 "이런 이 후보가 여성 인권 보장을 약속하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윤 후보는 실질적으로 여성들의 삶을 향상시키고 여성들의 삶을 안전하게 지키는 정책을 펼치겠다"라며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해 여성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여성의 경력이 지속되는 사회, 국가가 아이 돌봄 책임을 나뉘어 여성들이 안심하고 각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 여성에게 진심인 정부, 여성들이 믿을 수 있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의힘 측은 기존 여가부는 존재 의미를 스스로 부정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면서, 그 역할을 다했다는 판단이 확고한 상황이다.

대선 직전 현직 대통령이 대선 쟁점에 대해 야당 후보와 상반된 입장을 밝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통상 역대 대통령들은 대선 전 선거 개입 시비를 우려해 선거 중립과 공정한 선거 관리를 당부하는 말 외에 다른 선거 이슈와 관련한 발언은 하지 않았다.

다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17대 대선 3일 전이었던 2007년 12월 16일 당시 대선 최대 쟁점이었던 이명박 후보의 BBK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에 대해 검찰이 '이 후보와 BBK는 무관하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것과 관련해 정성진 법무부 장관에게 '검찰의 재수사 지휘권 발동' 검토를 지시했다.

이에 이명박 후보가 BBK 특검법을 수용하면서 정 장관은 지휘권을 발동하지 않았다. 이 후보 당선 후 특검은 앞선 검찰 수사와 비슷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의 재수사를 받은 끝에 징역 17년형을 선고받고 구속돼 현재까지 복역 중이다.

노 전 대통령의 대선 쟁점 개입은 당시에는 대선 결과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는 못했지만, 10년 뒤 옳은 판단이었다는 게 확인됐다. 문 대통령의 대선 쟁점 입장 표명은 대선에, 또 그 이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sense83@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