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제 20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선거 막바지에 다다르자 마지막 남은 한 표까지 자신에게 끌어오기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30 여성들은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고 불리는 이번 선거에서 거대 양당 후보 모두에게 강한 반감을 보여왔다. 후보들에게 '마지막 부동층'이라 불리는 이들의 '장미(투표권)' 민심 향배는 초미의 관심사다.
20대 여성의 '스윙보터' 성향이 가장 두드러졌던 선거는 지난해 4·7 재보궐 선거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구조사 결과 20대 여성의 44%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40.9%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뽑았다. 그러나 이들은 소수정당·무소속인 '기타 후보'에게 15.1%의 표를 던졌다. 재보궐 선거의 원인인 故 박원순 전 시장의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모두 지지할 마음이 없다는 '소신투표' 의사를 강하게 나타낸 것이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도 20대 여성 사이 '누구를 뽑을지 모르겠다'는 반응은 계속됐다. 오마이뉴스가 리얼미터에 의뢰한 3월 1주차(2월 28일~3월 2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 중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단일화 전)' 지지율은 16%, '지지후보가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8.5%, '잘 모르겠다'는 비율은 8.5%다. 단일화로 선택이 배제된 안 전 후보 지지율까지 포함하면 최근 지표만 봐도 20대 여성 33%의 표심은 아직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셈이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거대 양당 대선 후보들이 촌각을 다투는 지지율을 보임에 따라, 2030 여성 표심을 잡는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양당 대선 후보들을 향한 2030 여성들의 '비호감도'가 높다는 걸 뒤집어 생각하면. 반대로 거기서 끌어올 표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야 양당 대선 후보 중에는 2030 여성들에게 더 강한 호소를 보내고 있는 것은 이 후보다. 윤 후보는 그간 '여성가족부 폐지' '무고죄 처벌 강화' 등의 정책으로 젊은 여성층의 적지 않은 비난을 받았던 만큼, 눈에 띄는 관련 공약이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 공학적으로 결집력이 높은 20대 남성을 타깃으로 잡은 초반 전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경우에도 2030 여성들이 역대 대선마다 '소신 투표'로 꼽아왔던 대선 후보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최근 한 달 사이 여론조사에서 20대 여성의 이 후보 지지도(20%대→30%대)가 반등하는 등의 효과를 봤을 때, 향후 젊은 여성들의 표심이 이 후보를 향해 더 모일 것으로 예상한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 올해 1월 1주(2~7일 실시) 조사에서 이 후보와 윤 후보의 20대 여성 지지율은 각 29.2%, 27.1%로 둘 다 20%대였다. 이후에도 1월 2주(이 후보 29.6%, 윤 후보 28.2%)→3주(이 후보 28.2%, 윤 후보 28.6%)→4주(이 후보 29.4%, 윤 후보 29.7%)→2월 1주(이 후보 29.1%, 윤 후보 29.3%) 등이었다.
그러다 지난달 둘째 주 들어 이 후보 지지율이 30%대로 앞서기 시작했다. 이 후보는 2주차 37.7%→3주차 36.0%→4주차 주중 37.4%→4주차 주말 32.4% 등으로 조사됐다. 반면 같은 기간 윤 후보의 지지율은 23.4%→25.5%→21.4%→24.8%로 1월과 마찬가지로 20%대를 유지 중이다.
이 후보 지지율 상승의 원인으로는 여성 정책에서 이 후보가 구체성에서 윤 후보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 그리고 지난 1월 말 'N번방 최초 폭로자'인 박지현(25) 씨의 민주당 선대위 영입 등이 꼽히고 있다. 디지털성범죄특위 위원장을 맡은 그는 여성 유세를 비롯해 당 전면에 나서 젊은 여성들의 이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우상호 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온라인 커뮤니티 반응 등을 근거로 "2030 여성이 이재명 쪽으로 오고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여기에 최근 일부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들을 거론하며 이 후보가 직접 지지 호소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공유한 것도 화제가 됐다.
지난 금요일(4일) 사전투표를 마친 28세 여성 직장인 박 모 씨는 이 후보를 투표장에서 선택한 이유로 '이 후보의 여성 공약'을 꼽았다. 그는 "윤석열 후보의 무고죄 처벌 강화,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마음에 들지 않은 반면, 이재명 후보의 성범죄 처벌 강화, HPV 무료 백신 공약은 좋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27세 여성인 취업준비생 김 모 씨도 "(사전투표) 기표소에서도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1번(이 후보)을 뽑았다"고 밝혔다. 그는 그간 심상정 후보를 대선 때마다 뽑았다. 김 씨는 "이재명이 아니라 박지현에게 투표하는 마음이었다"며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들로부터) 실질적 위험을 감수하고 박지현 씨가 얼굴을 공개한 용기에 답이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고 이 후보를 뽑은 이유를 밝혔다.
이들은 민주당이 막판에 와서야 여성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보다도 처음부터 최근까지 젠더 문제를 일명 '갈라치기'로 이용해 온 윤 후보와 이준석 당 대표에 대한 반감이 더 크다고 털어놨다.
심상정 후보도 최대 부동층이자 자신의 주요 지지층인 젊은 여성 유권자 표심 잡기에 열심이다. 이와 동시에 정의당은 야권 단일화로 지지할 후보가 사라진 안 후보 지지층 표심 일부를 흡수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앞서 말한 이 후보의 막판 '여성 친화'적 행보에 정의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과거 박원순, 오거돈, 안희정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들을 2차 가해했던 민주당의 과거도 부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과 정의당 간 2030 여성을 향한 신경전도 치열한 모습이다.
심 후보의 홍보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자신의 SNS에 "여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민주당이 기상천외한 전술을 펴기 시작했다"며 "'정의당은 여성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라는 거다'(는 논리를 민주당 쪽에서 펼치는데 이는 )2030여성 유권자들의 표를 훔치기 위한 수작"이라고 밝혔다. 류 의원은 "심상정은 당신이 필요로 할 때 당신을 찾아가지만 이재명은 자기가 필요할 때 당신을 찾을 뿐이다. 속지 말자"고 덧붙였다.
심 후보 본인도 민주당의 움직임에 대해 "이 후보가 (선거 운동) 초창기에 20대 성별 갈리치기에 약간 편승하다가 다시 입장을 바꿨다. 김지은 씨 2차 가해자들에 대한 문제라든가 故 이예람 중사 문제 등에 실천으로 의지를 보여주시지 못하고 있다"고 일갈한 바 있다.
사전투표에서 심 후보를 뽑았다는 30세 직장인 여성 정 모 씨는 "사표가 되더라도 심 후보의 정치적 행보에 지지자가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뽑았다"며 나머지 후보들은 다 싫다고 밝혔다. 그는 "심 후보는 여성을 대표할 수 있는 유일한 여성 후보이기 때문"이라며 "윤 후보의 경우 아예 '이남자'에 치우쳐 여성 관련 정책을 오히려 퇴보시키는 중이고, 이 후보는 표심잡기용 공략만 남발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심 후보를 선택한 25세 여성 대학원생 이 모 씨도 "민주당은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국민의힘은 윤 후보 배우자 김건희 씨 관련 의혹에 많이 실망했다"며 "또 김건희 씨 의혹 당시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의혹과 무관한 '외모 평가'를 하는 모습도 아쉬웠다"고 밝혔다. 이 씨는 "심 후보는 여성과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해 오래 공부한 사람이고, TV 토론에서도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줘 나라를 이끌어갈 리더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여성 공약이나 2030 여성에 대한 언급이 비교적 적었던 윤 후보는 최근 '여성가족부 폐지' '무고죄 처벌 강화' 등을 메시지로 내놨던 페이스북 공약을 다시 꺼내 들었다.
지난 2일 윤 후보는 페이스북에 '여성이 안전한 대한민국 성범죄와의 전쟁 선포'라는 문구를 남겼다. 이를 두고 윤 후보도 대선을 일주일 남기고 막판 여성 민심 결집을 호소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대선 전날 마지막 유세까지도 여성 관련 유세나 행사 일정이 전무해 이 사실 또한 눈길을 끌었다.
윤 후보를 지지하는 젊은 여성들의 경우 '정권교체'를 위해 윤 후보를 지지할 뿐, 이번 대선 자체가 여성을 염두에 둔 대선이 아니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오는 9일 투표장에 갈 예정인 26세 직장인 정 모 씨는 "2번(윤 후보)을 뽑을 것 같다"며 "현 정부의 경제·부동산 정책이 못 미더웠다. 2번을 뽑으면 그나마 대출 규제는 풀어주지 않을까 싶다. 전세 대출받아서 내 집 마련하는 게 현재 제일 힘든 문제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대선 후보의 여성 정책에 대해선 "애초에 여성 인권이 주요 의제로 설정되지 않은 구시대적 대선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며 "(두 후보 다) '성폭행을 했으면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라' '여성이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도 못 하는데 뭘 바라겠나"라고 꼬집었다.
한편 1908년 미국 뉴욕에서 1만5000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와 임금 인상, 노동환경 개선, 여성 투표권 쟁취를 요구한 것이 '세계 여성의 날'의 전신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빵(생존권)과 장미(참정권)를 달라"고 외치며 여성 인권 향상을 호소했다.
그날의 시위 후 100년이 넘게 흐른 대한민국 제 20대 대선. 여성들은 한 손에는 도장을, 다른 손에는 27cm 길이의 흰 종이를 들게 됐다. 그들의 빨간 인주는 어디로 향할까. 선거 막판 '페미니스트' 영입을 알리며 자신의 여성 정책을 알리는 후보일지, '페미니스트는 휴머니즘의 한 종류'라는 후보일지, 매 대선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임을 공표한 후보일지, 그것도 아니라면 27cm 사이 어떤 후보일지. 하루 뒤인 오는 9일, 담판이 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