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1.5℃①] '기후 위기' 현주소…내일은 늦는다


'2050 탄소중립' 차기 대통령-정부에 '선택' 아닌 '필수'

기후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이 중장기적으로 탄소중립에 나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20년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정부가 선언한 2050 탄소중립은 20대 대통령선거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차기 정부의 중요한 국정 아젠다가 될 수밖에 없어 공약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광화문 광장에서 바라본 청와대의 맑은 날(오른쪽)과 미세먼지 가득한 날 전경. /임영무 기자

'2050년 3월 9일 오후 3시. 비는 계속해서 내리지만, 오존층 파괴로 빗물을 마실 수조차 없다. 산소도 희박해졌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 숲, 맑은 공기는 기록으로만 존재할 뿐 더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만약 30년 전 기후 위기에 우리 모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너무 안일했고, 늦었다. 지구 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실천하지 않으면 미래세대가 겪을 현실이다. 2022년은 2050 탄소중립의 첫발을 뗀 해다. 문재인 정부에서 선언한 2050 탄소중립은 이제 차기 정부 몫이다. 탄소중립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차기 대통령의 기후 위기 철학이 요구된다. <더팩트>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맞아 현재 기후 위기와 미래, 후보별 공약과 미래세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대선 1.5℃]를 기획, 총 7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이철영·신진환 기자] '너희들에게 해준 게 없어 미안하다.'

한국의 산업화를 거친 부모 세대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부모가 자녀에게 주고 싶어 했던 것은 교육과 경제적 지원이었다. 2022년 현재 부모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 제3조 기본원칙 제1항이다. '미래세대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하여 현재 세대가 져야 할 책임이라는 세대 간 형평성의 원칙과 지속가능발전의 원칙에 입각한다.' 미래세대 즉, 자녀들의 생존을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부모와 우리는 '탄소중립' 사회를 만들 책무가 있다.

국제사회는 기후변화 문제 심각성에 인식을 같이하고 1997년 선진국에 의무를 부여하는 '교토의정서'에 이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가 참여하는 '파리협정'을 2015년 채택, 2016년 11월 4일 협정이 발표됐다. 우리나라는 2016년 11월 3일 파리협정을 비준했다.

파리협정의 목표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2도보다 아래로 유지하고, 2050년까지는 1.5도로 억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남은 온실가스를 흡수(산림 등), 제거해서 실제 배출량이 '0'이 되게 한다는 것이 탄소중립의 기본 개념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기상 이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크다. 지난 2020년 제10호 태풍 하이선의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많은 폭우가 내리면서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 진안상가에 경포호 물이 넘쳐 침수피해가 발생한 모습. /더팩트 DB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상 기후 현상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왜 2050 탄소중립 행동에 나섰을까.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상이변 등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가 지난해 8월 발표한 제6차 평가보고서(AR6: The Sixth Assessment Report) 제1실무그룹 보고서에서 '이번 세기 중반까지 현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유지한다면 2021~2040년 중 1.5℃ 지구온난화를 넘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세계기상기구(WMO)가 2020년 발간한 '2015~2019년 기후보고서'도 지난 5년간 지구 평균 온도는 5년 단위 기록상 가장 따뜻했다. 산업혁명 이후로는 1.1도 상승했고, 앞선 5년보다는 0.2도 더 높았다.

또, 지난달 28일 IPCC의 제2실무그룹 보고서가 나왔다. 제1실무그룹의 경고에 이어, 이를 더 구체화했다. 보고서는1.5~2.0℃ 온난화 조건에서 17억 명, 전 세계 인구의 5분의 1 정도가 심각한 열 환경에 노출될 것으로 분석됐다. 매 5년마다 4억 2000만 명은 극한 폭염, 7000만 명은 이례적인 열 환경에 노출된다. 우리나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18년 여름 40도 안팎의 극한 폭염이 5년마다 찾아올 수 있다.

관계부처합동 2020, 2019년 이상기후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폭염 일수도 급증했다. 폭염 일수는 2000~2010년 기간 연평균 10일 안팎이었다. 그러나 2010~2019년 기간에는 15.5일도 치솟았다.

홍수도 마찬가지다. 국내의 경우 지난 2020년 6월 24일 시작한 장마는 54일 동안이나 지속했다. 폭우 및 홍수로 인해 사망 37명, 실종 5명, 부상 8명 등의 인명피해와 함께 8956명의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2019년에는 7개의 태풍이 한국을 상륙했다. 1904년 근대 기상 업무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숫자다.

기후 위기는 해양식물에 대해서도 여러 피해를 낳고 있다. 지난달 19일 기상청이 전 지구·한반도 주변 바다 수온을 분석한 '해양기후 분석 보고서(1981~2020년)'에 따르면 지난해 한반도 연근해 수온은 연평균 18.98도로 2000년(18.37도)보다 0.61도 올랐고, 1981년(17.64도)보다는 1.34도 상승했다. 수온 상승은 매해 여름 양식장 어패류 집단 폐사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수온 상승으로 인한 어패류 집단 폐사는 국내만이 아니다. 지난해 여름, 캐나다 서부와 미국의 태평양 연안 북서부를 강타한 폭염은 50도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캐나다 밴쿠버 해변에서는 약 10억 마리 이상의 해양 생물이 집단 폐사했다.

기후위기가 가속화한다면 전 세계에 식량 위기가 닥쳐올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생태계에도 엄청난 변화가 불가피하다. /더팩트 DB

◆기후 위기로 바뀔 우리의 식탁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온 상승은 당장 우리 식탁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당장 체감되지 않겠지만, 탄소배출량을 줄이지 않을 경우 우리의 식탁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2016년 미국은 세계 최초로 벌을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했다. 꽃가루 매개자로서 꿀벌의 역할 때문이다. 꿀벌의 활동이 우리 식탁에 오르는 여러 식자재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중 70%가 꿀벌의 수분에 의해 생산된다. 꿀벌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전 세계가 식량난에 직면할 수 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 사과도 사라질 수 있다. 현재는 경북 청송·영주 등이 최대 산지지만, 기온이 상승으로 바뀔 것으로 예측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30년 사과 산지는 강원도 정선, 양구 등으로 북상했다. 이대로라면 제주도 감귤도 2060년 강원도에서 재배되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 속도를 늦추지 못하면 앞으로 강원도에서조차 사과나 감귤 재배가 불가능해진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재배 환경 북상은 사과, 감귤 등에 국한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쌀, 옥수수 등 거의 모든 재배 작물도 영향을 받게 된다. 농촌진흥청은 21세기 말까지 쌀 수확량이 25% 이상 감소, 옥수수는 10∼20%, 여름 감자는 30% 이상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확량 감소는 식량자급률에 영향을 줘, 식량안보도 위험해질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1.7% 수준으로 전 세계 5위의 식량 수입국이다. 즉, 전체 식량의 약 80%를 수입에 의존하는 것으로 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식량 안보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2050 탄소중립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 참석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먼 미래'라는 건 착각…기후 위기 대응, 보다 세밀해야

기후 위기는 정치, 경제, 사회 등 우리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세계 선진국들이 앞다퉈 2050 탄소중립을 위해 나선 배경에 대해 한국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경제의 핵심은 수출 등 무역에 있기 때문이다.

EU, 영국, 독일, 일본과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2050 탄소중립 선언과 함께 2030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목표 상향을 발표했다. 또, 자국 산업 보호 및 탄소누출을 우려해 탄소관세 성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를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 향후 수입 제품이 EU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보다 탄소 배출량이 많으면 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일부 수입 제품의 시범 실시 후 2026년부터 전면적으로 도입될 계획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도 2050년 넷 제로(Net Zero) 달성을 목표로, 2030 NDC 목표를 32.5~35%→50~52%로 상향 발표했다. 2035년까지 100% 탈탄소 친환경 전력 생산 체제로의 전환을 계획하고 있다.

미국과 EU 등이 탄소국경세 등 친환경 제재 수단까지 강구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또한 이런 추세에 미리 대응하지 못할 경우 가까운 미래에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우리 정부도 NDC 목표를 상향하는 등 세계 선진국 못지않게 탄소중립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21년 8월 31일, 탄소중립과 온실가스 중장기 감축목표를 규정한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 전 세계 14번째로 국회를 통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10월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 탄소중립 계획을 천명했다. 그러면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에도 동참해, 2018년 대비 기존 26.3%에서 40%로 상향하기로 했다"라며 매우 도전적인 목표라는 점을 강조했다.

20대 대선 후보들 역시 본인이 기후위기를 극복할 적임자를 자인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탈탄소 산업 전환 지원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와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기후에너지부 신설 등을 내놓았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기후위기 재난 대응체계 정비 및 글로벌 대응체계 구축 △실천가능한 국가온실가스 감축 방안 마련 및 추진 △차세대 원전 기술 개발 및 원전 수출 통한 일자리 10만개 창출 등을 공약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 50% 감축 법제화, 전력생산의 50%를 재생에너지로 △2030년까지 석탄화력발전 가동 종료 △2030년 이후 내연기관차 신규판매 금지 등을 공약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원자력에너지-신재생 등 에너지믹스로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며 "기후위기법을 제정하고 국가기후위원회를 설치하고 산업통상자원부를 산업자원에너지부로 개편하겠다"고 했다. 또한, '혁신형 차세대원전(SMR) 기술개발사업'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해 세계 최고 원전기술을 갖춰 탄소배출 없는 안정적 에너지를 확보할 계획이다.

현재 치러지는 대선 정국에서 후보들의 기후위기 정책이 전면에 등장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공약 자체에 물음표가 붙는다. 사진은 왼쪽부터 심상정 정의당, 안철수 국민의당, 윤석열 국민의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국회사진취재단

대선 후보들은 기후위기 극복 적임자를 자인하며 '미래세대'를 자주 언급한다. 그러나 현재 치러지는 대선 정국에서 후보들의 기후위기 정책이 전면에 등장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공약 자체에 물음표가 붙는다. 2022년 탄소중립 실천의 원년으로 차기 대통령과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 대선후보는 표에 민감한 민생경제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유권자의 약 50%는 기후위기 이슈나 후보들의 관련 공약이 지지 후보 결정에 영향을 준다고 보았을 정도로 관심도가 높다. <더팩트>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달 26~27일 전국의 만 18세 이상 남녀 1009명(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을 대상으로 '각 대선후보의 기후위기 관련 공약이 귀하의 지지 후보 결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습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8.8%는 '영향을 미쳤다(매우 영향 23.7%, 약간 영향 25.1%)'라고 답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응답자의 비율은 47.1%(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26.5%,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20.6%)로 비슷하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은 4.1%였다.

세대별로는 어린 자녀를 키우는 30대(53.4%)와 40대(51.1%)에서는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또, 모든 연령층 가운데 20대와 60대 이상은 각각 '영향을 미친다(44.7%, 46.8%)'는 응답했다.

성별로는 남성(45.6%)보다는 여성(52.0%)에게, 이념 성향별로는 보수(39.9%)보다는 진보(55.6%)층에서 더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진보와 보수 간 격차가 예측에 비해 크지 않았다.

황인철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기후위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좌지우지 될 향후 5년은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며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기후위기 등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단순히 탄소중립을 말만 하는게 아니라 올바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길 지구온난화는 어찌 된 거냐? 제발 빨리 돌아와라, 지금 필요하다고!"

2019년 1월 미국 중서부지역에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그는 지구온난화를 음모론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기후변화 회의론자로, 탄소배출 규제가 기업의 이익을 해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직후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했는데, 미국은 중국에 이어 탄소배출 두 번째 국가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파리협정 복귀에 사인했다. 트럼프는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 등을 부정했지만, 미(美) 국가환경정보센터(NCEI)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피해 금액은 2020년(950억 달러)보다 53% 늘어난 1450억 달러(약 173조4000억 원)를 기록했다. 허리케인과 화재와 폭염, 한파 등의 자연재해로 688명이 숨졌고, 평균 기온은 화씨 54.5도(13℃)를 기록했다.

기후위기를 부정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국에서는 '기후방화범'이라는 오명을, 세계 국가들에게는 기후위기 실천 동력을 떨어뜨리는 '민폐'를 끼쳤다. 대선을 앞둔 우리가 차기 대통령을 더욱더 신중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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