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친구 A가 고민을 털어놨다. 한번 변심했던 동업자 B가 돌아와 최근 많은 사람이 있는 앞에서 공개 프러포즈를 했단다.
"받아줘, 말아?"
이들을 옆에서 유심히 지켜온 입장에선 "글쎄"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A는 당시 정치개혁 중 '연동형비례대표제'에 꽂혔고, 이를 함께 실현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B도 "좋다"면서 손을 잡았다. 이땐 몰랐다. B의 관심과 신경은 온통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에 있었단 사실을. 결국 이러저러해서 B가 원하던 공수처를 해결하고, 누더기가 되긴 했지만 '준연동형비례제'도 탄생했다. 그러자 B가 돌연 '비례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준연동형비례제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하여튼 그런 거였다. A는 당시 화가 많이 났다. 가족에게 욕먹어가면서까지 B를 도왔는데 결과가 이런 식이라니. 결국 둘은 헤어지고 제 갈 길을 갔다.
이후 B는 180석까지 몸집을 키우고, 원하는 법안도 마음대로 밀어붙이면서 승승장구했다. 지난해 4월 서울과 부산에서 호되게 당하기 전까지는. 정신 차린 B는 거듭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정치 개혁'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JM'으로 개명한 뒤에는 계속 고개를 숙였다. 알고 봤더니 요즘 A에게 들이대는 사람이 거슬렀던 듯하다. 그의 이름은 'SY'. 걸핏하면 어퍼컷을 날리고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고 말하고 다닌다나. 이런 와중에 JM이 공개 제안을 한 것이다.
눈치 챘겠지만 A는 소수정당, B는 더불어민주당이다.
민주당이 제안한 프러포즈의 내용은 꽤 구체적이다. △국무총리 국회추천제 도입 △대통령 4년 중임제와 결선투표제 개헌 △국회의원 연동형 비례대표제·권역별 비례대표제 △지방선거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 도입 △여·야·정 정책협력위원회 설치 등이다. 그동안 숱하게 지적받아온 승자독식 '대통령제'와 양당 체제 구조를 깨트리고 '다당제 연합정치'를 제대로 하자는 게 핵심이다. 내용만 보자면 바람직한 방향이다. 선거제는 차기 정부 출범 후 6개월, 개헌은 1년 안에 추진하겠다며 구체적인 시기를 언급한 점도 일단 긍정적이다.
다만 '대선'을 10여 일을 앞두고 제안한 점이 마음에 걸린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단순한 선거용이 아니다"라고 항변하지만 범보수 진영의 단일화 협상이 불발된 국면에서 누가 봐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견제하기 위한 카드로 읽힌다. 이 후보가 보수 진영인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선 후보에게도 '국민통합정부'를 직접 제안했다고 하니 반(反) 윤석열 연대를 위한 전략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제안을 받은 상대도 멈짓하는 반응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지난 25일 중앙선관위 주관 TV토론에서 "지난 국회 땐 저와 정의당이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선거제도를 바꿨지만 결국 민주당이 이걸 뒤집었다"라며 "이번 대선에서 득실 따지고 이용할 생각하지 말고 故 노무현, 김대중의 유지를 잇는 민주당 정체성 회복 차원에서 진심을 다해서 실천하시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도 이미 지난해 11월 자신이 발표한 '권력구조대개혁' 공약과 내용의 거의 같다며 "이번에도 선거전략만 고민하는 '양치기 소년'은 아닌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민주당은 한 달 전에도 '인적 쇄신안'으로 △국회의원 동일 지역구 3연임 초과 금지 제도화 △지방선거 광역·기초 의원의 30% 이상 청년 공천 등을 약속했지만 당내 반발에 부딪혀 논의조차 지지부진하다.
민주당의 카드는 뻔해 보이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정치권의 숙원이었던 '다당제'의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늘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소수정당이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으면 한다. 민주당은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관련 제도개혁을 끝까지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후속 조처를 내놓아야 한다. 제안한 지 3일 만에 의원총회를 열어 정치개혁안을 당론 채택한 움직임은 긍정적이다. "민주당의 명운을 걸고 정치를 바꾸겠다"는 결의를 다짐한 만큼 이번에도 변심한다면 국민의 회초리는 더 아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