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허주열 기자] #1. 지난 18일 밤 경기도 수원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생후 7개월 된 A 군이 경기를 일으킨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6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119 구급대는 병상 확보를 위해 인근 10여 곳의 병원에 연락을 돌렸다. 하지만 응급실에 확진자를 치료할 공간이 없거나 소아과 의사가 없어 모두 거절당했고, 구급대는 수소문 끝에 17km가량 떨어진 안산 지역의 대학병원으로 이송했다. 이 과정에서 심정지를 일으킨 A군은 병원 도착 직후 사망 판정을 받았다.
#2. 충남 천안에 거주하는 30대 가정주부인 B 씨의 초등학교 5학년 아들 C군은 최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재택치료 대상으로 분류돼 집에서 치료를 가장한 휴식을 취하던 C군은 어젯밤 열이 41도까지 올랐다. 고열과 함께 C군이 뜻을 알 수 없는 헛소리까지 하자 깜짝 놀란 B 씨는 119를 불렀다. 하지만 야간에 응급실을 운영하는 인근 병원 전부가 비어있는 음압격리실이 없다면서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거부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B 씨는 자택에 미리 준비해 둔 해열제를 C군의 열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 먹이는 방식으로 치료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2년 내내 세계가 인정한 성과라고 강조했던 'K-방역'의 현실이다. 잦은 방역 조치 변경, 정보 전달 미비, 현실과 괴리된 조치 등으로 방역 현장은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늘어나는 확진자를 감당하지 못한 방역당국이 오미크론 대응 체제로 전면적인 대응체제 변경을 단행하면서 혼란은 더 커지고 있다.
◆오락가락, 현실과 괴리된 방역 조치
지난 14일 교육부는 3월부터 유·초·중·고교생과 교직원은 주 2회씩 등교 전 신속항원검사를 한 후 '음성'이 나와야 등교하는 방안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당장 학부모들 사이에선 "아이를 데리고 한 번이라도 코로나 검사를 받게 했다면, 증상도 없는 아이들의 코를 주 2회 쑤시는 결정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비판이 쏟아졌다.
논란이 커지자 교육부는 16일 '적극 권고'라고 한발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학교 안팎에선 '권고'를 가장한 '의무'가 되어 이를 확인하려는 교사들의 업무부담을 키우고, 정확성이 떨어져 실효성이 떨어지는 잦은 자가진단검사로 인한 학생들의 불필요한 고통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오미크론 변이가 코로나 주류로 자리를 잡으면서 정부는 50대 이하 일반 국민 확진의 경우 사실상 손을 놓았다. 50대 이하에서 확진자가 나올 경우 '일반관리군'이라 칭하는데, 사실상 자율적인 격리에 정부에서 무언가를 해주는 것은 없다. 각자가 코로나에 걸릴 것을 대비해 미리 해열제 등 상비약을 구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 중인 상황에서 임산부에 대한 코로나 대처도 오락가락이다. 정부는 임산부를 코로나 고위험군으로 분류, 백신 접종을 강력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출산을 위해 산부인과에 입원할 때는 일반군으로 취급돼 병원에 따라 10만 원 상당의 비용을 지불하고 PCR 검사를 받아야 한다. 만약 검사에서 확진 판정을 받을 경우에는 출산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헤매야 한다.
재택치료자의 비대면 처방의 경우에는 담당자와 통화 후 알려준 병원으로 연락하면 통화가 연결되는 것 자체가 힘들다. 어렵게 연결이 돼도 코로나 검사자가 많아서 처방이 힘들다며 다른 병원으로 전화하려고 넘기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119에서 확진자 이송 문의가 자주 오는데, 음압격리실이 비어 있으면 무조건 받는다"라면서도 "5개뿐이 음압격리실은 최근 항상 환자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때 재택치료를 하다가 상태가 나빠진 확진자가 온다고 하면 기존 확진 환자를 내보낼 수 없어 못 받는다. 코로나 중증환자용 병실이 병동에 따로 준비돼 있지만, 그쪽으로 환자를 올리기 위해선 응급실을 거쳐야 하는데, 응급실에 환자가 넘쳐나 병원을 못 찾는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세계 최고 수준의 백신 접종률과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간 시행 중이지만, 확진자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3일 0시 기준 신규 확진자는 17만1452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재원 중인 위중증 환자는 512명, 사망자는 99명으로 집계됐다. 2월 3주 차 코로나 확진자 수는 한 달 전 대비 14.7배 증가했고, 위중증 확진자는 1.63배, 사망자는 1.25배 증가했다.
◆文 "오미크론 안정적 관리"…대선 후보들 "K-방역 실패"
오미크론 대응 체계로 변경하면서 방역 정책이 오락가락한다는 비판을 정부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달 말 SNS를 통해 "K-방역이 오락가락한다든지 실패했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라며 "이는 2년 넘게 코로나와 사투를 벌인 국민과 방역 당국·의료진의 노력을 폄훼하는 모진 말이다. 정부는 K-방역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생물처럼 살아 움직이는 오미크론이란 적에 대응할 수 있도록 대응 전술을 개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1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최근 확진자 수가 10만 명을 넘고 있지만, 당초 예상 범위 내에 있으며 걱정했던 것에 비해 상황이 어려워진 것은 아니다"라며 "정부가 중점을 두고 있는 위중증 환자 수는 아직까지 방역 당국과 전문가들이 예측했던 절반 이하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치명률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병상 가동률도 안정된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정부가 잘 대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오미크론 유행을 최대한 늦추면서 미리부터 충분한 병상 확보와 백신 접종, 먹는 치료제 조기 도입 등의 노력을 기울였고, 위중증 중심의 대응 체계로 선제적으로 전환해 대비한 결과"라며 "정부가 최근 거리두기를 조정한 것도, 확진자 급증 속에서도 위중증과 치명률, 의료 대응 여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과 정부는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3월 9일 대선 투표에서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가 나오면 현 방역 정책은 대대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농후하다.
최근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안철수 국민의당,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정부와 방역당국이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의료 전문가들의 제언을 묵살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고,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대응도 준비가 부족해 국민 피해를 키우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오미크론 대응 재택치료 전환에는 큰 문제가 없다"라면서도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일상 활동을 하게 하고, 영업시간 제한도 24시까지 풀어야 한다"고 방역 조치 변화를 예고했다.
K-방역은 처음부터 허구였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덕희 경북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지난해 말 이형기 서울대병원 교수 등과 함께 공동으로 출간한 'K-방역은 없다'라는 제목의 저서에서 "K-방역은 첫날부터 오류였으며, 시간이 갈수록 오류가 확대 재생산됐다. 잘한 점을 찾는 게 불가능하다"라며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면서,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을 비교하는 우를 범하면서 K-방역을 정당화해 실패했다"고 꼬집었다.
서민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과 교수는 "K-방역의 가장 잘못한 것은 확진자 숫자에만 매몰된 보여주기식 방역을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숫자를 빌미로 '우리나라가 제일 방역을 잘했다, K-방역의 위대한 힘이다'라며 자화자찬을 했다"라며 "코로나 초창기부터 다른 나라보다 확진자가 적다면서 K-방역을 떠들어댄 결과 다른 나라가 다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도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통제된 상황이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이어 서 교수는 "그 와중에 자영업자들의 삶은 도탄에 빠졌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이렇게 자영업자만 선택적으로 죽이는 방역은 하지 않았다"라며 "정부가 잘한 것은 말 잘 듣는 국민들을 가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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