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이슈] '기축통화' 논쟁…"부채 여력 有 취지" vs "가짜 경제대통령"


"대선 후 천문학적인 재원 소요…정치권 반성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기축통화국 편입 가능성 발언으로 정치권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22일 인천 남동구 로데오거리광장에서 집중 유세하는 이 후보. /국회사진취재단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기축통화국 편입 가능성' 발언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다. 민주당은 부채비율에 관한 논의가 본질이라며 진화에 나선 반면, 국민의힘은 희박한 가능성에 근거해 정책을 펼칠 경우 경제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며 '가짜 경제대통령'이라고 공세를 퍼붓고 있다. 이번을 계기로 정치권이 '말꼬리 잡기'식 논쟁을 넘어 '적정 국가부채 수준'에 대해 치열하게 논의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 이재명이 쏘아 올린 '기축통화국' 두고 여야 공방

이 후보의 '기축통화국' 발언은 21일 첫 법정 TV 토론회에서 적정 국채 발행 규모를 놓고 질의응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GDP 대비 국채 비율은)어느 정도의 적정 수치를 보고 있나"라고 묻자, 이 후보는 국채발행 여력이 충분하다면서 "곧 기축통화국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고 근거를 들었다. 이어 '기축통화국과 비(非) 기축통화국 차이를 아느냐'라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질문에는 "우리도 기축통화국에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정도로 경제가 튼튼하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다음 날인 22일 보수 야권은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하며 '기축통화' 논쟁 확산에 주력했다. 지난 3일 토론회에서 불거진 윤 후보의 'RE100'(제품 생산에 필요한 전기를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한다는 국제적 약속) 논란에 대한 반격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국민의힘 측은 이 후보의 경제 인식이 현실과 동떨어졌다며 지적했고, 민주당 측은 재정 확대를 강조하는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21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대선후보 1차 토론회 전 기념촬영하는 후보들. /국회사진취재단

허은아 당 수석대변인은 "기축통화국 흉내를 내겠다며 통화를 찍어내면 시뇨리지 효과(seigniorage effect)는커녕 원화 가치를 폭락 시켜 경제에 위기를 초래할 것이며, 심각하면 제2의 IMF 사태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 후보의 경제인식이 현실경제와 동떨어져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공약도 '퍼주기'라고 비판했다. 허정환 선대본부 수석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 후보는 이런 무지함의 바탕 때문이었는지 그동안 일관되게 국가 재정을 이용한 퍼주기 공약을 남발하고 우리 국가재정은 튼튼하고 국가부채비율도 아직 여유가 있다고 했다"고 꼬집었다.

'이재명 저격수'로 불렸던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 윤희숙 전 의원도 나섰다. 그는 "되짚어보면 (이 후보는) 우리 국가채무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고 돈을 더 펑펑 쓰자고 주장했다"며 "똑똑한 고등학생도 아는 경제 상식도 모르고 대선 후보라는 이가 이제껏 국가재정을 망치자 주장해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야당의 공세에도 민주당은 말을 아끼며 확전을 꺼리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토론회 도중 공지를 통해 "이 후보가 언급한 기축통화국 편입 가능성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13일 배포한 보도자료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한 것"이라고 해명한 것 외에는 이날 추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표방하고 있는 '유능한 경제대통령' 이미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대신 '국채 발행 여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 차원이었다고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선대위 공정시장위원회 공동위원장인 채이배 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우리나라 경제가 튼튼하고, 재정건전성이 다른 나라에 비해 좋고, 국가채무에 아직 여력이 있다는 걸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야권이 '말꼬리 잡기'로 논쟁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처럼 보유세 강화, 탄소세 도입 등 증세도 솔직히 얘기하고, '잘 걷어서 잘 쓰겠다'고 약속한 후보가 재정건전성도 더 잘 지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야 유력 후보들은 너도나도 대규모 재정 지원을 주장하지만, 국가 부채 관리에 대한 논의는 뒷전이다. 코로나 피해지원 관련 16.9조 규모의 내용이 담긴 올해 1차 추경안이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는 모습. /국회사진취재단

◆ 너도나도 '대폭 지원' 예고..."부채 관리 필요"

이 후보가 '기축통화국 편입 가능성' 언급하며 근거로 인용했던 보도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자료다.

하지만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원화가 IMF의 특별인출권(SDR, special drawing rights) 준비 통화에 포함될 수 있다는 주장으로, 통상적인 '기축통화'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SDR은 외환위기 등에 처할 때 담보 없이 인출할 수 있는 권리로 미국 달러화, 유로, 중국 위안, 일본 엔, 영국 파운드 5개 통화로 구성돼 있다.

전경련도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원화가 SDR에 편입되어도, 국가 재정건전성 문제는 거시경제 안정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며 재정건전성 문제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제적으로 안전자산으로 인식되어야만, 국제 지급·결제 기능을 갖춘 명실상부한 기축통화가 될 수 있다"며 이 후보 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현재로선 원화가 기축통화 기능을 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정치권이 '기축통화 가능성' 여부로 비생산적인 공방을 벌일 게 아니라, 향후 국가 부채 방향성을 치열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정훈 시대전환 대표는 "대선이 끝나면 코로나 극복과 경제사회 시스템 전환을 위해 천문학적인 재원이 소요될 것이다. 이 돈을 국가가 부담할 것인가, 개인이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보다 이번 대선에 더 중요한 질문은 없다"며 "국가부채 논쟁이 기축통화국 논쟁으로 번지는 정치권의 모습을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거대 양당의 유력 대선후보들은 대선 후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경쟁적으로 예고하고 있다.

이 후보는 22일 인천 한 유세에서 경제 회복을 위한 '경제 부스터샷'을 강조했다. 그는 "당선되는 순간 2차 추경, 긴급재정명령권을 행사해서라도 50조 원을 준비해 기존에 국민들이 보상받지 못한 손해를 다 채워드리고, 대출 만기를 연장하겠다"며 "코로나 채무도 정부가 채권을 인수해 어려운 데는 이자를 탕감하고, 필요하면 원금도 탕감해 일상으로 돌아가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후보도 전날 토론회에서 정부·여당이 1차 추경 규모를 줄였다며 "제가 차기 정부를 맡으면 나머지 37조 원을 신속히 지원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민주당은 현재 국가 재정 건전성 여력이 있기에 코로나 피해를 본 이들에게 두터운 지원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국민의힘은 장기적으로 적정 수준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해야 하므로 불필요한 세출 조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지원 역시 취약계층에 집중 지원해야 한다는 기조를 갖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정건전성을 위해선 '기축통화' 논쟁과 별개로, 국가 부채 관리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축통화든 아니든 재정을 방만하게 풀면 금리와 물가가 올라가 국민 고통은 증가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적정 국가 부채 비율에 대해선 "경제가 좋은 나라 독일 등은 지금 60% 밑에서 관리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제적으로 이게 용인될 수준이냐 아니냐는 이자율, 국가 신인도 등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우리나라는 40%를 넘었는데, 경제 성장이 3% 된다고 하더라도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가) 국가 채무와 물가 관리에 상당히 신중하다는 신뢰를 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우리나라는 기축통화와 상당히 거리가 먼 게 사실이다. 그래서 (기축통화와 관련해) 재정의 국가 부채 이슈가 없다고 이야기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최근 국가 부채가 상당히 악화되고 있고,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해 (부채 비율) 수준이 양호하다고 하더라도 위험성이 있다"며 신중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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