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소확행', 윤석열의 '59초 공약'…"민감도 높아져"
[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대상은 더 특정되게, 메시지는 더 간결하게. 이재명·윤석열 여야 대선 후보가 '초미세 공약' 대결에 나서고 있다. 두 후보는 1분 미만의 SNS 영상 게시, 생활밀착형 공약 제시 등으로 '설날 민심'을 잡기 위해 필살의 선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를 두고 국정운영에 대한 중요성과 무게는 간과한 채 '포퓰리즘'에만 매진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후보는 일찍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시리즈로 생활밀착형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14일 기준 46개의 소확행 공약이 공개됐고, 이달 들어 공개된 것만 11개(36~46번째)에 이른다. 미세먼지 대책 방안, 대중골프장 회원제 금지, 타투 시술 합법화, 탈모 건강보험 지원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외에 경기도지사 시절 시행 정책 중 전국적 확산을 약속하는 '명확행(이재명의 확실한 행복)' 공약도 이 후보의 대표적인 '핀셋 공약'이다.
소확행 공약 중 최근 이 후보가 재미를 톡톡히 본 것은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공약이다.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가 탈모 공약을 검토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2030세대가 들썩였다. 이 후보의 슬로건을 패러디한 '앞으로 제대로 심는다. 나의 머리를 위해 이재명'이라는 문구도 유행처럼 퍼졌다. 야권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건강보험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비판했지만, 이 후보는 탈모 공약이 온라인 상에서 호응을 얻은 지 열흘 만에 탈모 치료약에 더해 중증 치료용 모발이식까지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하겠다고 공식화했다.
이 후보 선대위 측은 "국민들의 생활을 위해 필요한 걸 공약으로 뿌리다 보니 지금 40여 개 정도가 됐는데, 공약마다 그 타깃이 다르다. 그래서 중도층 유권자들 중에서 표를 아우르기 위해 '아 나는 이게 마음에 든다'하고 이 후보를 지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소확행의) 작전이다"라고 밝혔다.
윤석열 후보도 새해 들어 생활 맞춤형 공약들을 내세우며 맞대응을 하고 있다. '택시기사 보호 칸막이 설치 지원'을 비롯해 총 7개의 '석열씨의 심쿵 약속'을 내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심쿵공약에는 반려동물 쉼터를 확대하기 위한 방안이나 게임 이용자 편의 확대를 위해 온라인 게임 본인 인증 절차를 개선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내용이 주로 청년층을 겨냥한 부분이다 보니 윤 후보도 이 후보와 마찬가지로 2030 세대 중도층을 끌어오기 위한 홍보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윤 후보는 유튜브 채널에서 현재까지 8개의 '59초 공약'도 공개했다. 영상에는 이준석 당 대표와 원희룡 선대위 정책본부장, 윤 후보가 직접 출연해 공약을 쉽게 설명해준다. 현재까지 공개된 내용으로는 '영문 PCR(유전자증폭) 확인서 보건소 발급' '모바일 OTP 의무화' '수능 응시료 세액 공제' '지하철 정기권 적용 범위 (버스) 확대' 등 각종 생활밀착형 공약들이 포진돼 있다.
이외에도 윤 후보는 '선대위 슬림화' 이후, 공약 메시지도 '극단적'으로 짧게 내세우고 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 '성범죄 처벌 강화' '무고죄 처벌 강화' 등의 일곱 글자 메시지나 '병사 봉급 월 200만 원' 등의 '한줄 공약'을 연일 자신의 SNS에 올리고 있다. 또 선거 플랫폼에서 운영되는 AI(인공지능) 윤석열 '위키윤'은 실제 후보가 답변하기 어려운 청년층의 '쓴소리'에 대신 답변하는 영상으로 청년 세대 사이 재밋거리로 소비되는 중이다.
정치권에서는 두 후보의 이런 초미세 공약 대결이 '망국(亡國)적 포퓰리즘'이라고 비판을 퍼붓고 있다. 재정 부담으로 공약의 실현 가능성이 낮은 데다, 양 정당의 정체성과 어긋나는 공약들이 적지 않은 탓이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가 백년대계를 논해야 할 대선이 초등학교 반장 선거로 전락했다"며 현 상황을 지탄했다. 그는 "참으로 국민 앞에 고개 들기가 부끄러운 저질 대선을 바라보는 참담한 요즘, 대선이 대선답게 치러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비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와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도 포퓰리즘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안 후보는 거대 양당 후보들을 향해 "포퓰리즘은 '망국병'으로 모두가 포퓰리즘을 외쳐도 저는 포퓰리즘과 단호히 맞서 싸울 것"이라며 두 후보가 모두 제시한 '병사 월급 200만 원' 공약에 대해 "200만 원으로 청년 표를 사려는 매표 행위"라며 연일 꼬집고 있다.
김 후보도 "공정과 형평을 주장하는 진보정당의 후보는 국가 주도 성장을 주장하고, 상대 공약을 퍼주기라고 비난해왔던 보수정당의 후보는 퍼주기 공약들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며 "두 후보에게 철학과 비전이 없다.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 공약들만 밤거리 네온사인처럼 국민의 눈을 어지럽히고 있다"고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경제나 외교 등 거대 공약 실현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실생활에 와닿는 효능감 높은 공약을 향한 기대가 커지면서 정치권에 초미세 공약 열풍이 불고 있다고 보고, 이러한 양상이 대선 국면에서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성준 정치평론가는 "'마이크로 마케팅(유권자의 인구 통계적 속성과 생활방식에 관한 정보를 활용하는 방법)'은 1990년대 미국 빌 클린턴 때부터 내세우던 전략"이라며 "'거대 담론(경제·외교 등)성 공약'을 제시하면 그 공약은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의 공약인 경우가 많지 않았나. 그런데 '팬데믹'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재난지원금의 경우도 '누구에게 얼마를 주겠다' 하는 것이 굉장히 구체적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 평론가는 "팬데믹 2년 차를 넘기다 보니 국민도 '공약 민감도'에 굉장히 예민해져 있다. 국제 정치 환경도 미국·중국 패권 전쟁이기 때문에 대선에서 얘기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공약 자체가 복지나 현금 (살포) 쪽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