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마이클 샌델 대담, 참여해보니…"'케미'없는 화기애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1일 서울 중구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와 공정과 정의를 주제로 화상 대담을 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버벅대는 '동시번역'에 시청자 불만 대담 내내 폭주

[더팩트ㅣ정동=송다영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1일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 '공정하다는 착각' 등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와 '공정'을 주제로 화상 대담회를 가졌다. 진지한 분위기 속 진행된 두 사람의 문답은 샌델 교수가 자신의 저서와 각종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개했던 능력주의와 공정 관련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둘 사이의 '호흡'을 엿보기엔 부족해 아쉬움을 남겼다.

이 후보는 이날 서울 중구 정동아트센터에서 샌델 교수와 '어떻게 공정의 날개로 비상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비대면 화상 대담회를 가졌다. 기자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사전 신청을 받아 '공정'하게 추첨을 거쳐 선정된 15명의 '국민참여단'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행사 관계자는 "사전에 400명이 넘는 인원이 신청해 경쟁률이 치열했다"라고도 덧붙였다.

대담회 시작 1시간 전인 오전 9시부터 국민참여단은 현장을 찾아 책을 보고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는 등 대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10대부터 50대까지로 추정되는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이 후보와 샌델 교수의 대화의 장을 기다렸다. 비교적 고령대인 60대 이상의 현장 참석자는 보이지 않았는데, '구글 문서' 작성을 통해 온라인 신청을 받다 보니 고령층의 추첨 기회가 적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석자 중 남성은 10명, 여성은 5명이었다. 이 후보를 마주하는 자리에 놓인 좌석은 5개씩 3줄로 배치돼 있었다. 한 남성은 민주당의 당색인 '파란색 목도리'를 하고 맨 앞자리에 앉은 것도 눈에 띄었다.

현장 국민참여단 외에도 '줌'으로 참석한 비대면 국민참여단 49명도 대담회에 합류했다. 이 인원은 대담회 동안 행사장소 뒤에 마련된 LED 스크린에 나타나 현장을 '강의실'처럼 보이는 착시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외에도 더불어민주당 공식 유튜브 '델리민주', 이 후보 채널 '이재명TV'에서도 실시간 생중계가 진행됐다. 대담은 이 후보의 채널에서만 동시시청자 9천여 명에 육박해 성황을 이뤄 북적거렸다.

국민참여단으로 참석한 40세 남성은 "최근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었는데 각박한 삶 속에서 위로를 받았다. 10살 아들과 7살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샌델 교수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말했던 부모가 자식의 길을 결정해주는 '능력주의' 사회 속 모습이 아이들의 학교 '수행평가' 과제로 나타나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끼고 있기도 하다. '공교육의 변별력'을 높이는 문제에 대해 후보의 생각이 궁금하다고 신청서에 써냈다"고 대담회 신청 이유를 밝혔다.

대학교에 재학 중인 20대 여성 참석자는 "'공정하다는 착각'을 여러번 읽기도 했고, 20대이고 사회학과 학생이라 공정 담론에 관심이 많아서 참여하게 됐다. 최근 20대와 그 이전 세대 사이 공정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보이는 양상을 이 후보는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고 밝혔다.

리허설 후 현장 국민참여단이 대담회장에 들어섰다. 휴대폰과 노트북 등의 전자기기 사용은 자제해달라는 사전 공지를 받은 터라 참석자들은 저마다 작은 노트와 펜을 챙겨 무릎 위에 올려뒀다. 개중에는 '공정하다는 착각'을 챙겨온 사람도 세 명 보였다. 현장에는 일반적인 촬영용 카메라 외에도 공중을 날아다니는 대형 '지미집' 카메라가 동원돼 대담회 참여자들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것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여기에 눈을 빼앗기지 않고 1시간 동안 필기를 하며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했다.

또 참석자들의 의자 위에는 손 안에 들어오는 크기의 낯선 전자기기가 놓여있었는데 다름 아닌 '동시통역 음성 수신기'였다. 행사 관계자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채널 1번을 누르면 샌델 교수가 말함과 동시에 한국말(통역)이 나온다"라고 참여단에게 쓰는 법을 알려줬다.

이날 행사에는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지미집 카메라, 동시통역사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송신기 등을 볼 수 있었다. /송다영 기자.

10시 대담회가 시작됐고 회색 체크무늬 정장, 청록색 목폴라 니트, 자줏빛 구두를 신은 이 후보가 등장했다. 눈에 띄는 것은 이 후보의 재킷에 달린 '사랑의 열매' 배지였다. 이날 사회를 맡은 강선우 민주당 의원은 "정동1928아트센터(대담회 장소)는 과거 '구세군'이 출발한 역사적 장소다"라고 소개했는데, 연말이면 종소리와 빨간 냄비로 시민들의 기부 활동을 촉진하는 자선단체 '구세군자선냄비'가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이 때문에 이 후보도 장소적 배경을 인식해 자선단체의 명맥을 함께하는 '사랑의 열매'를 착용하고 나왔다는 추측을 가늠케 한다.

이어 1시간 10분여 동안 이 후보와 샌델 교수의 대담이 이어졌다. 이 후보는 대담에서 먼저 "교수님의 책을 여러 차례 반복해 읽을 만큼 팬"이라며 "제가 대한민국 정치에서 고민하는 의제와 일치해 깜짝 놀랐다"고 반가움을 드러냈다. 이에 샌델 교수는 "기득권 계층이 자신들의 성공을 노력의 결과로 믿고 자만심을 갖는 것이 빈부격차 심화의 원인"이라며 "이런 현상을 '공정하다는 착각'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답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 중심이었으며 한국의 입시, 취직, 양극화 문제 등도 언급됐다. 샌델 교수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입학생 중 상류층 자녀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현상을 거론하며 "능력주의는 결국 평등보다는 사회 전반의 불평등을 더 가져오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샌델 교수는 드라마 'SKY캐슬'을 언급하며 "치열한 한국의 입시경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하는가 하면, '오징어게임'은 능력주의의 결함과 체제에서 밀려난 사람들에게 주는 '패배감'을 잘 나타내준다"며 이러한 콘텐츠가 한국 사회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 이 후보에게 물었다.

이 후보와 마이클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국의 입시, 취직, 양극화 문제 등을 이야기했다. 두 사람은 현 사회에 사라져가는 ‘연대 의식’ ‘부채 의식’ ‘공공선’ 등의 인식의 회복을 통한 대전환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결의하며 대담을 마무리했다./국회=이선화 기자

이에 이 후보는 "'스카이캐슬'은 우리 입시제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의 학력 수준은 부모의 경제력 수준과 거의 일치한다는 게 통계적으로도 드러난다"며 "이미 출발점 자체가 불평등한 상황에서 형식적 평등을 넘어선 '실질적 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는 "경쟁이 격화하니 소수자·취약층의 할당제를 통째로 폐지하자는 이야기도 있다.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며 "과거엔 경쟁이 사람들 사이 더 나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함이었다면 지금은 생존에 문제가 되고 있다"며 샌델 교수에게 '할당제 폐지'에 대한 생각을 묻기도 했다.

샌델 교수는 "최근 사회에 나타난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은 사람들을 '승자'와 '패배자'로 극명하게 나눈다. 승자들은 그 결과를 스스로 만든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는 '오만'에 빠져 '비기득권 계층'에 대한 '부채의식'이나 '책임의식'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하며 "또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트럭운전사, 간호사, 창고 물류직원 등처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마주했던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보면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존중도 마땅히 따라야 할 것"이라며 '노동의 존엄성'(dignity of work)을 강조했다.

이 후보는 샌델 교수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나온 능력주의 해소와 관련한 제언 중 '차라리 추첨제도가 더 공정할 수 있다'는 부분에 공감하는 바가 많다며 "현실 사회에서 (추첨제가) 정책적으로 실천될 수 있는 것인지"를 물었다. 이에 샌델 교수는 "입시 추첨제는 더 공정한 입학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며 "이를 제안한 것은 명성 있는 대학에 입학한 것에 노력뿐 아니라 운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을 인지하게 해주고 싶어서다"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이 후보와 샌델 교수는 현 사회에 사라져가는 '연대 의식' '부채 의식' '공공선' 등의 인식 회복을 통한 대전환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결의하며 대담을 마무리했다. 서로 마지막 인사를 건내는 순간, 내내 한국말을 쓰던 이 후보가 샌델 교수에게 "Bye"라고 영어 작별을 고하자 현장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대담에서 아쉬웠던 점은 샌델 교수와 이 후보 사이 서로 생각하는 바를 늘어놓기에 바빠 대화의 '핑퐁'이 안 되거나 서로가 공감하고 '케미(호흡)'가 느껴지는 순간들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샌델 교수의 질문이나 답변은 자신의 저서나 최근까지 한국의 여러 TV 프로그램이나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밝힌 자신의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 후보가 구체적 답변을 구할 때도 이를 뛰어넘거나,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만 그치는 경우도 있었다.

대담 동안 버벅대고 서툰 동시통역은 유튜브 실시간 시청자들의 분노를 샀다. / 이재명TV 실시간 댓글 갈무리.

또 대담 내내 쓴소리가 나온 것은 버벅대고 서툰 '동시통역' 이었다. 대담 동안 동시통역이 3~5초 사이 지연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샌델 교수의 책에서 언급되는 개념들의 번역에 있어서도 잘 번역되지 않는 현상들이 계속 이어졌다.

샌델 교수가 'populism backlash(포퓰리즘 반발)', 'credit'(공적, '능력주의' 아래서 자신의 배경은 인식하지 못한 채 능력에 따른 과한 수혜를 당연히 받아들인다는 것을 설명할 때 언급됨), 'technical training and investment'(기술 훈련과 투자, '능력주의'를 해소하는 제언으로 언급됨) 'citizenship'(시민권, 시민자격) 등을 언급했을 때 번역을 건너뛰거나 지체되는 현상이 이어졌다. 현장 참여단들은 샌델 교수의 답변 시간동안 필기를 멈추거나, 번역에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고 듣는 이도 더러 있었다.

여기에 동시통역을 이유로 실시간 자막이 별도로 제공되지 않다보니 유튜브 스트리밍 동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계속해서 '통역이 이상하다' '통역 때문에 못 듣겠다' '샌델 책을 읽어보지 않은 통역사같다'는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대담회 관계자는 이후 "검증을 거쳐 선발된 인원이었는데 '순차통역'(발화자가 말을 모두 끝낸 후에 다른 언어로 통역함)이 아닌 동시 통역을 하다보니 차질이 생긴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현장 분위기는 대담회 내내 화기애애했다. 이 후보는 샌델 교수에게 질문을 건넬 때나 답변을 들을 때 손에 든 노트에 필기를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등 집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대담회 이후 현장참여단과 함께한 20여 분간의 질의응답 시간에도 막힘없이 답변을 이어갔다. 현장 프롬프터에는 시민들의 질문만 떠 있을뿐 이 후보의 답변은 따로 화면에 뜨지 않았다. 유튜브 댓글을 읽는 시간에는 한 지지자가 '교수님과 이 후보가 행사를 계기로 친구처럼 지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댓글을 읽은 이 후보는 "나는 그 분이 아주 익숙하다. 그 분은 나를 오늘 생전 처음 봤겠지만"이라며 농담 섞인 답변을 하며 웃었다.

이후 국민참여단과의 사진 촬영에도 이 후보는 밝았다. 이 후보는 사진 촬영 전 스태프에게 '마스크를 가져다달라'고 요청했고, "제일 멀리서 오신 분이 누구냐"며 참가자들에게 먼저 질문을 건네기도 하고, 첫 시도에 별다른 포즈 없이 사진을 찍자 '이재명은 합니다' 구호를 외치며 사진을 찍자며 제안하기도 했다.

이 후보가 대담회 행사를 마치고 가는 길에 한 시민이 이 후보에게 편지로 추정되는 종이봉투를 건넸다. 이 후보의 지지자로 추정되는 중년 여성은 자신의 자필 편지를 훑어 보는 이 후보에게 이동하면서 읽어 보라며 웃음을 지었다. /송다영 기자.

퇴장길에는 한 시민이 이 후보에게 갑자기 다가와 본의 아니게 팬덤에 부응하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순간도 포착됐다. 후보가 대담을 마치고 떠나는 아트센터 입구에는 약 10여 명의 유튜버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저마다 "응원한다" "이재명 멋지다" 등 이 후보를 향해 소리를 높였고, 이 후보는 화답하는 의미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다 한 중년 여성이 이 후보에게 종이봉투를 건넸다. 이 후보는 종이봉투에서 종이를 빼내 유심히 살폈다. 종이는 a4용지 3장 분량으로 중년 여성이 이 후보에게 보낸 자필 편지로 추정된다. 이 여성은 봉투를 건넨 후 경호원의 제지를 받아 뒤로 물러섰으나, 이내 이 후보가 괜찮다며 자신 쪽으로 와도 된다는 의사를 밝히자 가까이 다가섰다.

현장에선 "이 후보는 (시민) 막는 것 별로 안 좋아하신다"고 하는 소리도 들렸다. 중년 여성은 편지를 보는 이 후보에게 웃음을 머금고 "이동하시면서 읽어 보라. (내용에) 청탁 없습니다"라고 말했고, 이 후보는 "고맙습니다"라며 중년 여성의 어깨를 두 어번 툭툭 두들긴 후 손 인사를 건네고 수행 차량에 올라섰고 이내 현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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