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서도 반발…"의견 수렴 절차 거쳐야"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다주택자 주택 구입 문턱을 대폭 낮춰 줬더니 새로 공급된 주택들은 다주택자들에게 많이 돌아갔다"(2020년 8월 본회의 소득세법 개정안 찬성토론,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당과 숙의 과정 없이 내뱉은 돌발 발언에 민주당이 요동치고 있다. 이 후보가 제안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를 두고 내부가 찬반으로 갈린 것이다. 반발하는 이들은 "당내 의견 수렴 절차가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집권여당이 오락가락하는 정책 노선으로 부동산 시장 혼선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문제로 여당 발등에 불이 붙었다. 이 후보가 지난 12일 대구·경북(TK)을 순회하던 중 다주택자 양도소득세를 1년간 유예하자고 주장하면서다. 이 후보는 지난달에도 관련 언급을 꺼냈지만, 당내 강경파들의 우회적인 항의와 청와대, 정부의 공개적인 반대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모양새였다.
하지만 숨 고르기를 한 뒤 굴하지 않고 재차 주장을 밀어붙였다. 이 후보는 다주택자의 양도세 부담을 덜어 주택 매도를 유도함으로써 집값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이유를 들었다. 그러면서 6개월 안에 처분을 완료하면 중과를 완전히 면제해주고, 9개월 안이면 절반만, 12개월 안에는 4분의 1만, 1년이 지나면 예정대로 중과를 유지하자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당 원내지도부는 즉각 호응했다.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이달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는 것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박 의장은 상속 주택 매매 등으로 인한 '일시적 다주택자'에게 종합부동산세 산정 기준을 완화해주는 '핀셋' 방안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집권여당이 대선 후보에 편승해 갈지자 행보를 보인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이 후보가 언급한 다주택자 양도세 세율을 상향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은 지난해 8월 4일 민주당이 강행 처리했다. 당시 야당은 "법안 처리 절차가 일방적이고 효과도 우려된다"며 반대했지만, 민주당은 투기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며 밀어붙였다.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당시 해당 법안 찬성토론자로 나서 "투기 수요를 억제하지 않고 공급만 늘리면 가격이 자연스럽게 잡히겠나"라며 "이렇게 다주택자의 주택 구입 문턱을 대폭 낮춰 줬더니 새로 공급된 주택들이 과연 누구에게 갔는지 아나. 확연하게 다주택자들에게 많이 돌아갔다"며 법안 추진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그는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최근까지 이 후보 비서실장을 맡은 바 있다.
관련 법안에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13명 가운데 일부가 이 후보의 측근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선대위 총괄특보단장인 정성호 의원이나, 최근까지 공동선대위원장이었던 우원식 의원 등이다. 이들은 이 후보와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물들로 꼽힌다. 공동 발의자이자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으로서 해당 법안을 강행 처리했던 윤후덕 선대위 정책본부장은 전날(14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책 환경이 달라져, 지금은 양도세 중과 유예가 필요하다"라고 입장을 바꿨다.
당 내부에선 급작스레 던져진 양도세 중과 유예 방안을 놓고 찬반이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다. 이상민 의원은 15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당에서 의견이 양분돼 있다시피 했고, 그것(유예)을 하지 않기로 결론을 냈다. 이제 시행하기로 정부와 손을 맞췄는데 (다시 제기한 것)"이라며 "자칫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혼란 신호를 줘서 시장에 엄청난 혼란을 만드는 요인을 제공한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출신 한 민주당 의원도 집권여당이 이런 행보를 보이면 부동산 세제 정책의 일관성이 훼손되고 시장에 혼란만 줄 수 있다고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그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양도세 중과 유예에 대해) 원내대표도 좀 난감해하는 것 같고 반대하는 의원들이 꽤 있다. 정부도 반대하는 상황이라 당내 상당한 논란이 있을 것 같다"며 "당에서 당론으로 만들어내는 절차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결국 지도부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의 문제"라고 했다.
반면 이런 충돌은 불가피하며 당이 조율해가야 할 과정이라는 입장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라고 불리는 윤건영 선대위 정무실장은 이날 BBS 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에서 "정책 결정이라는 게 국민 여론을 수렴해서 이것저것 따져서 조정 과정을 거쳐 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며 "당내 다양한 의견은 당연한 것이고, 그런 부분을 조화롭게 해결해 나가는 것이 정부·여당의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대선을 앞두고 후보 중심으로 당이 바뀌어야 한다는 데 방점이 찍힌 것으로 해석된다.
민주당의 태세 전환에는 당과 충분한 의견 조율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입장을 밝히는 '이재명식' 의사결정 체계가 이유로 꼽힌다. 선대위 '원톱' 체제에서 정책이나 현안에 대한 결정이 하향식으로 내려오면 당 지도부나 핵심 실무진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이 후보의 급발진 행보는 양도세 문제뿐만이 아니다. 그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 중에 '사법고시 일부 부활' 구상을 언급하는가 하면, 당내에서 금기시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경제 성과' 발언을 했다가 당을 당혹스럽게 했다. '보편 복지'를 주창해온 그가 기본소득 공약에는 소극적이지만, 최근 코로나19 5차 대유행 대비 '소상공인·자영업자 先 보상'을 제안하면서 그의 '복지 기조'가 무엇인지 헷갈린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이 후보가) 지난번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이 되겠다고 해서 질겁했다"며 "당과 함께 의견을 조율하고 그에 수렴하는 부분에 대해 맞춰달라"고 공개적으로 당부했다.
민주당은 이르면 다음 주 의원총회를 열어 다주택자 양도세 일시 완화 등을 포함한 '이재명표' 정책들을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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