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위 개선 방향 두고 '강경론' vs '신중론'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답보 상태에 빠지면서 '180석 승리'를 이끈 이해찬 전 대표와 '전략가'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구원투수로 떠오르고 있다. 당내 일각에선 "선대위에서 이들의 공간은 없다"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지도부 신구 세력이 선대위 주도권을 두고 힘겨루기하는 모양새다.
17일 여권에선 선대위 쇄신론과 함께 이해찬·양정철 등판론이 나오고 있다. 이 후보의 지지율이 경선 후 줄곧 30%대에 머물러 있을 뿐만 아니라 '매머드급 선대위'가 규모와 달리 국회의원 중심으로 인선이 이뤄지면서 기민성과 현장 대응이 떨어진다는 당 안팎 비판이 쏟아지면서다.
선대위 공보단 수석대변인인 고용진 의원은 이날 선대위 총괄본부장 회의 후 "기존 의원 중심의 선대위로는 부족하다는 초선의원들과 각계의 지적을 아프게 받아들인다"며 당 지도부가 외부 인사 영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필요한 위원회를 마련하는 등 미비점을 보완하기로 공감대를 이뤘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양 전 원장이 지난해 4월 총선 이후 1년 7개월 만에 여의도를 찾아 주목된다. 민주당 영입인재·비례대표 의원모임 '비공개 간담회'에 발제자로 초청된 일정이었지만, 행사를 주도한 의원실에서 일정 사전 공지는 물론, 양 전 원장도 간담회 전후 백브리핑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에 이번 일정이 사실상 그의 '여의도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양 전 원장은 현 민주당 선대위 지도부를 향해 가감 없이 쓴소리했다. 그는 '이재명 선대위'에 대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하며 "확실한 컨트롤타워가 부재하고, 책임과 권한이 모호하고 비효율적인 체제를 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이례적으로 이날 1시간 20여분 간 진행된 간담회 주요 발언을 의원실을 통해 언론에 공개했다. 양 전 원장은 이성복 시인의 시 '그 날'에서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문구를 소개하며 "당의 현실"이라고 비유했다. 양 전 원장은 "대선이 넉 달도 채 안 남은 상황에서 이렇게 유유자적 여유 있는 분위기는 우리가 참패한 2007년 대선 때 보고 처음"이라고며 "후보만 죽어라 뛰고 있다. 탄식이 나온다"고 꼬집었다.
양 전 원장은 선대위 구성에도 "희한한 구조, 처음 보는 체계"라며 "권한과 책임이 모호하고 명확한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지 못한 비효율적 체계"라고 지적했다. 전문성과 주특기를 살리지 못하고 선수 중심의 '끼워 맞추기' 선대위가 됐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중도층 확보 전략을 제대로 구사하고 있지 않다고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컨트롤타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핵심 측근들과 선대위 핵심 멤버들이 악역을 자처하고, 심지어 몇 명은 정치 그만둘 각오까지 하고 후보 중심으로 키를 틀어쥐고 중심을 잡아 컨트롤타워 역할을 안 하면 승리가 어렵다"고 했다.
이 후보와 이 전 대표의 회동도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이날 회동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정 조율이 되지 않아 연기됐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주변에서 후보가 원로들과 만나 차 한잔 하자는 의견이 있어 조율을 해봤는데 시간도 잘 안 맞고 지금 만날 필요도 없다고 해서 일정에 반영이 안 된 것"이라고 했다. 권혁기 선대위 공보단 부단장도 "오늘 이 전 대표를 만날 일정이 없다"면서도 "추후에 만날 수는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양 전 원장과 함께 21대 총선을 대승으로 이끈 이 전 대표가 상임고문으로 2선에 머물러 있지 말고, 위기에 직면한 이재명 선대위에 합류에 당내 군기를 잡고 신속한 의사결정 구조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 선대위에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합류가 임박하면서 이에 견줄 만한 인사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지난 16일 한 라디오에서 그의 등판 가능성에 대해 "지금은 출전할 명분이 조금 덜 성숙했지만, 대선 승리를 위해 당연히 출전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이 전 대표와 양 전 원장의 역할론을 두고 선대위 지도부 내에선 불편한 기류가 감지된다. 이들이 전면에 나설 경우 중도 외연 확장에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 안팎에서 지도부 신구 세력이 선대위 개선 방향을 두고 힘겨루기를 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송영길 상임선대위원장 측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두 인물의 등판설에 대해 "그분들이 등판한다고 할 게 있겠나. 답답해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분들이 (선대위에) 들어와 할 수 있는 공간은 없어 보인다"며 "양 전 원장이 전면에 나서면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당이 정비를 하고 있으니 이번 주가 지나면 잘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참신한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동선대위원장인 이상민 민주당 의원도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선대위 쇄신론'에 대해 "잘못된 것을 고치는 노력은 당연한 것"이라면서도 "외부 인사 영입을 보완재가 아닌 대체재로 활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용광로 선대위가 이뤄지기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신중론을 역설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중도 외연을 확장할 외부 인사 영입에 선대위 개선 방안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선거전략·메시지·외부 인사 영입 등을 주도하는 핵심 의사결정자가 없는 구조가 먼저 개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후보가 이후에도 지지율 반등을 하지 못하면 이 전 대표와 양 전 원장에 대한 기대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