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대결 돌입...기후위기 대응 등 표심 사각지대는 뒷전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자살할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마구 식당을 열어서 망하는 것도 자유가 아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없는 사람이라면 부정식품보다 아래도 선택할 수 있게 싸게 먹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거대 양당의 대선 후보가 확정되면서 내년 3월 20대 대선 본선 맞대결이 시작됐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 선거로 꼽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모두 각각 '대장동 개발 의혹'과 '검찰 고발사주 의혹' 등 논란 속에 당심의 압도적 지지에 기대 후보가 됐다. 두 후보에 마음을 주지 못한 부동층은 후보나 당이 아닌, 자신의 삶과 직결된 주요 공약에 따라 표를 행사할 것으로 보여 역설적이게도 이번 대선은 공약이 어느 때보다 중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지금은 극단적인 보수 대 진보의 대결이 되면서 결정타를 빼놓고는 네거티브가 주를 이룰 수 없게 됐다"며 "이념의 차이는 자연스럽게 정책의 차이로 이어지는데 부동산이나 교육, 남북문제 등 부딪히는 것마다 정반대가 되면 네거티브보다 정책 대결로 가게 된다. 남은 건 정책 싸움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후보와 윤 후보가 내건 국정운영 기조는 정부의 역할 확대를 강조하는 '큰 정부론'과, 정부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민간의 자율을 우선시하는 '작은 정부론'으로 극명하게 갈린다. 이에 따라 위드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조치와 부동산, 성장론, 청년지원 등 분야별 해법에도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위드코로나 어떻게? '전 국민 재난지원금' vs '50조 손실보상'
내년 3월 9일 20대 대선의 승자에게 주어진 최대 과제는 '위드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를 어떻게 추진하느냐다. 거대 양당의 두 후보는 '보편지원'과 '선별지원'이라는 대조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민주당은 9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6차 재난지원금을 내년도 예산안에 담아 이르면 내년 1월 지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면서 '위드코로나 방역 지원금'이라고 칭했다. 개인 방역에 힘쓰는 국민의 방역 물품 구입과 일상 회복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재정당국은 보편 지급을 공개적으로 반대해왔지만 이 후보가 거듭 당부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당이 끝내 힘을 실어준 모양새다.
이에 질세라 윤 후보는 '코로나 긴급 구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손실을 보상해주기 위해 50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43조 원은 대상자에게 직접 지급하는 것으로, 업종별로 최대 5000만 원까지 차등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나머지 5조 원은 신용보증재단에 출연해 저금리 대출 지원에, 2조 원은 공과금 등 각종 세제감면 혜택 지원에 투입한다는 '맞춤형 지원' 구상이다.
◆불로소득 근절 vs 부동산 세제 완화
부동산 정책은 두 후보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다. 집값 폭등으로 들끓는 민심을 사로잡아야 대선 승리 목표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대선 경선 과정에서부터 강력한 '부동산 대개혁'을 예고했다. 추진 속도와 내용도 과감하다. 우선 과반 집권당 의석을 활용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개발이익환수제 강화와 분양가상한제, 분양 원가 공개 등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부동산을 전담할 주택도시부를 신설하고 부동산감독원을 설립해 투기 거래를 감시하겠다는 공약도 제시했다. 또 국토보유세를 도입해 현재 0.17% 수준인 부동산 보유 실효세율을 1%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이 후보는 최근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전 국민 개발이익 공유시스템'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 후보는 이와 정반대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과세 강화 정책을 실패로 진단하고 종합부동산세를 전면 재검토하는 한편 1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와 재산세 부담을 줄이고 다주택자 양도세를 한시적으로 절반 감면하겠다고 밝혔다. 또 현 정부에서 바짝 죄었던 주택담보대출비율(LTV)도 신혼부부와 청년층 대상으로 80%까지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주택 공급은 두 후보 모두 '임기 내 250만 가구' 규모를 내세우고 있다. 다만 이 후보는 기본주택을 최소 100만 가구 배정하겠다고 밝혀 '공공'의 역할에 초점을 맞췄다. 기본주택은 저소득층부터 중산층 대상으로 저렴한 임대료로 30년 이상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공공주택이다. 장기임대,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등 여러 방식의 기본주택을 공급해 장기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전체의 10%까지 끌어올려 주택 가격을 안정화하겠다는 게 목표다.
이에 반해 윤 후보는 민간 주도의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통한 주택공급 확대를 주장한다. 수요가 높은 역세권 주택 공급을 위해 역세권 인근 민간 재건축 아파트 단지의 용적률을 300%에서 500%로 높이고, 대신 증가한 용적률의 절반을 기부채납 받아 공공분양 형태로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청년·신혼부부, 무주택자에게 시세 50~70% 수준 분양가에 총 20만 가구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가 주도 확장적 재정 투입 vs 민간 주도 성장
이 후보는 국가 성장과 관련해 '전환적 공정성장'을 1호 공약으로 내세웠다. 정부주도로 미래 산업에 "상상할 수 없는 대규모 국가 투자"를 하고 규제를 합리화해 저성장 사회에서 우상향 지속성장경제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대규모 인프라 구축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 선대위에 성장 전략을 논의하는 '전환적 공정성장 위원장'에 임명된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가 주도의 공급을 강조하는 인물이다. 미래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선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인데, 민간 자율에만 맡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반면 윤 후보는 기존 보수진영의 성장론에 따라 '민간'에 우선을 둔다. 기업 성장에 방해가 되는 규제를 완화하고 민간 분야에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경제 선순환을 이끌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은 기업을 지원하는 것에 방점을 둔다.
◆연 200만 원 청년기본소득 vs 취약 청년에 월 50만 원 '도약 보장금'
두 후보는 내년 대선 최대 캐스팅보터로 떠오른 20·30세대를 사로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위해 이 후보는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고 있다. 연 200만 원 청년기본소득 지급이 대표적이다. 2023년부터 19∼29세 청년들에게 연간 100만 원의 청년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전 국민에게 주는 기본소득까지 합해 자신의 임기 내에 청년에게 1인당 20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구상이다. 가상자산 투자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청년층을 겨냥해 가상자산 과세 1년 유예도 검토 중이다. 청년과의 적극적인 소통 행보에도 나선다. 민주당은 이 후보가 오는 12일부터 3일간 부산·울산·경남권을 시작으로 전국 민생현장 순회 캠페인에 나서며, 이 과정에서 버스 내부 스튜디오에 청년세대를 초청해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예고했다.
이에 반해 윤 후보는 공정한 취업 환경 조성을 우선시한다. 노조의 고용 세습과 친인척 고용 승계를 차단하고, 형편이 어려운 청년들을 위해 청년 자립 프로그램을 마련한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특히 지역특화형 '청년 도약 베이스캠프'를 설치해 모든 청년을 대상으로 상담·멘토링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또 취약 청년에게는 '청년 도약 보장금' 명목으로 월 50만 원을 최대 8개월간 지급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다.
◆기후위기·국민연금 등 미래세대 담론은 뒷전
거대 양당의 대선 후보가 정책 경쟁을 시작했지만 진영 대결로 변질하면서 선명성 부각에만 방점을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의 표심과는 거리가 멀지만 국민연금과 기후위기 대응 등 미래세대에게 민감하고 주요한 의제에 대해선 뒷전이라는 것이다.
국민연금 개혁은 문재인 정부에서 2018년 12월 4가지 개편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시한 뒤 후속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두 후보 역시 이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공약이나 의견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이날 지원금 지급 구상을 밝힌 두 후보를 겨냥해 "거대 양당의 퍼주기 경쟁"이라며 "청년세대가 떠안게 될 나랏빚을 갚고, 연금 개혁으로 청년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청년들의 몫까지 공정하게 챙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후위기 대응 역시 두 후보 모두 손을 놓고 있다. 이 후보는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하고 탄소세를 부과해 기후위기 대응 환경을 자연스럽게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전기차·수소차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획기적으로 육성해 그린일자리를 100만 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인 로드맵은 내놓고 있지 않다. 윤 후보의 경우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에 대해서도 현 정부가 추진하는 목표(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도보다 40% 이상 감축)에도 부정적이다.
국내 환경단체인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통화에서 "기후 대선을 만들어야 하는데 주요 후보들이 구체적인 공약이나 정책 비전을 보여주지 않고 있어 종합 평가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적어도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계획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기존의 탈원전 정쟁만 답습하고 있어 아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