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일하는' 국회법, '소위 정례 개최' 상임위 無

여야가 지난해 12월 의결한 일하는 국회법이 지켜지고 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1대 국회 첫 본회의에서 인사말하는 박병석 국회의장. /남윤호 기자

대선 캠프 업무 증가·안건 중복 심사 행태도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국회가 국민 신뢰를 높이고 예측가능한 국회운영을 위해 마련한 '일하는 국회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 법안심사를 위해 법안소위를 한 달에 3번 이상 열기로 했지만 모든 상임위가 이를 준수하지 않았다. 대선을 5개월 앞두고 의원들이 대선 캠프에서 활약하면서 입법활동에 소홀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전문가는 법안 심사 회의 건수나 법안 처리 건수를 의정활동 평가의 온전한 기준으로 삼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일하는 국회법 개정안'이 시행된 4월부터 9월까지 17개 상임위 중 '법안소위 월 3회 이상 개최'를 지킨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소위 개최 횟수를 조정할 수 있는 운영위, 정보위, 여성가족위를 제외하고 14개 상임위의 일정을 살펴본 결과, 지난 4월에는 2개 상임위(외통위·국방위)의 법안소위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이어 5월엔 10개(기재위·법사위·정무위·교육위·과방위·외통위·행안위·문체위·국토위·국방위), 6월엔 3개(교육위·행안위·국방위), 7월엔 5개(교육위·과방위·외통위·복지위·국방위), 8월엔 7개(정무위·기재위 과방위·외통위·문체위·농해수위·국토위)개의 상임위가 개점휴업 상태였다. 9월엔 6개(기재위·교육위·문체위·농해수위·복지위·환노위) 상임위의 법안소위가 단 한 차례의 법안 심사도 하지 않았다. 특히 국방위는 4개월간, 교육위는 3개월간 법안 소위를 가동하지 않았다.

여야는 정국경색에 따라 반복되는 입법활동 중단 사태를 막고자 법안소위를 월 2회 열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일하는 국회법)을 20대 국회인 2019년 7월 17일부터 시행한 바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법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후 여야 중진 의원들을 비롯해, 180석을 확보한 민주당이 21대 국회 '1호 당론 법안'으로 추진하면서 국회는 2020년 12월 9일 좀 더 강화된 '일하는 국회법'을 처리했다. 법안심사 소위를 월 3회 이상으로 늘리고, 상임위 전체회의는 월 2회 이상 열도록 하는 내용이다. 그동안 법안소위 개최가 여야 간사간 합의에 따라 결정됐고, 간사간 협의가 불발됐을 경우 별도 구정이 없어 회의 개회와 의사진행 예측이 어렵다는 문제를 해소한다는 차원이었다. 하지만 이 법안 역시 의원들이 준수하지 않으면서 '내세우기용 법안'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1대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은 일하는 국회법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2020년 7월 14일 더불어민주당 일하는 국회법 당론법안을 제출하는 민주당 일하는국회 추진단. /국회사진취재단

'월 3회 이상 법안 심사 소위'가 지켜지지 않은 것은 5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 국면이 배경으로 꼽힌다.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의원 168명 중 대선후보 캠프에 합류한 의원은 100여 명이고, 국민의힘 의원 103명 중 20여 명을 제외하고 모두 대선 캠프에 합류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 모두 대선에 매달려 법안심사에 신경 쓰지 못할 공산이 크다.

한 대선 캠프에 합류한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 심사 소위는 줄어들었을지 모르지만 대선으로 인해 상임위 현안이 더욱 부각돼 업무 체감은 변화가 없다. 캠프에서 활동 중인 의원의 보좌진들은 캠프 관련 업무도 많이 늘었다"고 했다. 또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임시회와 소위 자체는 늘었지만 형식적이다. 매월 소위마다 안건도 줄어드는 느낌이다. (대선 국면이 다가올수록) 소위가 많아도 몇몇 안건이 반복 심사 식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정밀 심사를 위해 반복적으로 해도 좋지만 소위원들의 출석 여부에 따라 심사 시간을 낭비적으로 보내곤 한다"고 했다.

고질적인 여야 간의 대치 국면도 이유로 보인다. 해당 법안에는 정례적인 소위 개최 의무화를 담았지만 국정감사 기간이나 '회의를 개회하기 어렵다고 의장(상임위원장)이 인정하는 기간'은 예외로 뒀다. 특히 국회법상 위원장이 위원회의 의사일정과 개회일시를 간사와 협의해 정하게 돼 있어 정국이 얼어붙은 기간에는 소위 개의가 자연스럽게 불가능한 구조인 셈이다. 여야는 국회 개원 1년 3개월 만인 지난달에야 민주당이 독식했던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 중 7개 자리를 야당 몫으로 돌렸다.

여야는 이전부터 상시국회 제도화를 위해 노력했다. 2019년 4월 8일 5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일하는 국회법에 서명하는 모습. 왼쪽부터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문 의장,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 /국회사진취재단.

다만 전문가는 법안 심사 회의 개의 건수와 처리 법안 건수만으로 국회의 활동을 평가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거버넌스그룹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국회법은 대개 강제 조항이 아니라 권고 조항들"이라며 "(해당 법안의 취지는) 법안이 많이 발의되니 통과율이나 반영율을 높이기 위해 소위 개최를 의무화하자는 것이지만 불가피한 사정이 있으면 여야 합의로 안 할 수 있는 게 (국회)법의 원리다. 어떤 면에서는 그 법 자체가 무리한 면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국회가 많이 열리고 소위가 많이 일하는 게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라며 "기획이나 예산 관련 기능은 매우 취약한 상태에서 입법만 많이 하려고 일하는 국회법으로 정했지만 그 역시 현실을 잘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안 발의 자체는 확 줄어야 하고, 국회가 입법만이 아니라 예산작성, 아젠다 설정 등을 해야 한다. 회의 개최 건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법안을 막 털어내는 게 더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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