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월세 20만 원 지원?...표심 잡기 '단방약', 청년은 어이없다

집값 폭등으로 청년들의 내 집 마련 꿈은 갈수록 멀어져 간다. 2020년 12월 21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옥탑방과 비교되는 아파트 전경. /배정한 기자

양질 일자리 공급·국민연금 개혁 등 장기 대책 제시해야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상경한 지 10년이 넘었다. 남산에 올라 "열심히 살아 저 많은 집들 중 하나는 가져보자"고 했던 다짐은 현 정부 들어 폭등한 집값에 산산이 조각났다.

열심히 모은 목돈으로 원룸을 반전세에서 전세로 돌리던 날은 내 집 장만이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3년 전 몸 하나 누우면 꽉 차는 비좁은 공간에 집안으로 스며드는 겨울 웃풍 막느라 지칠 때쯤, 청년들에게 저리로 최대 1억 원 전세자금을 빌려주는 '청년전세자금대출' 제도를 알게 됐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만 34세 이하 청년 대상 전세자금 대출 금리를 1.2%로 낮추고 지원 규모와 대상을 대폭 늘렸다. 곧바로 휴대전화에 부동산 앱을 깔고 올라온 매물들을 구경하며 더 나은 환경으로 이사할 생각에 설렜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전세자금대출이 가능한 전셋집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등기부등본상 건물 용도가 주택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하는 곳이 적었고, 전세자금대출을 이용한 수요가 폭증한 탓이었다. '사회 초년생의 메카'로 불리는 영등포구·동작구·관악구 일대 신축 원룸 전세는 3~4년 전보다 20% 넘게 급등했다. 부동산에선 집주인들이 매매할 때 비싸게 팔기 위해 청년들의 저리 대출을 이용해 전세 보증금 가격을 높게 유지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귀띔했다. 비싼 전세지만 청년 입장에선 전세자금대출로 메우면 월세보다는 나은 '반전세' 수준으로 살 수 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택하게 된다.

당정은 내년 1년간 중위소득 60%(월 120만 원 소득)의 청년들에게 월세 20만 원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26일 더불어민주당 청년특별대책 당정협의. /이선화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지난 26일 내년 예산안에 청년층 일자리와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20조 원 이상을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중위소득 60% 이하의 무주택 청년에 대해 매월 20만 원씩 1년간 한시적으로 월세바우처를 지원하고, 연 소득 5000만 원 이하 청년에게 무이자 월세대출을 월 20만 원까지 제공하기로 했다. 하지만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땐 이 정책이 시장에 적용된다면 유동성 자금이 대거 투입돼 월세 급등을 부추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게다가 1년짜리다. 월 50만 원짜리 방이 이번 대책으로 들썩여 70만 원으로 오른다면 정부 의존도만 높아지고 주거비 부담은 달라질 게 없을 것이다. 당과 정부는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도록 부작용 대비책도 꼼꼼히 마련해야 한다.

더 문제는 현 정부에서 아파트 전세·매매 가격이 폭등하면서 원룸에서 벗어나 '내 집 마련' 하려던 꿈이 막혀 버렸다는 것이다. 최근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총량을 규제하자 일부 은행에선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중단 또는 조건을 높였다. 정부는 2분기 가계 빚이 사상 첫 1800조 원을 돌파하는 등 폭증하면서 이를 막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뜻)'과 '빚투'로 내 집 마련 막차를 타려 했던 젊은 층은 절규하고 있다. 정부가 임대차3법 등을 시행하며 아파트값을 폭등시키고 이제 와서 가계 부채를 관리하겠다고 나서면서 자금 마련할 기회조차 박탈당했다는 상실감이 크다. 당정이 야심 차게 내놓은 '청년 월세 지원' 대책이 씁쓸한 이유다.

당정은 '월세 지원'을 포함해 다양한 청년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국가장학금 지원 대상 확대 및 100만 명 반값등록금 지원, 중소기업이 청년을 채용하면 14만 명에게 1년간 960만 원을 지원하는 '청년 일자리 도약 장려금', 군 전역 시 최대 1000만 원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사회 복귀 지원금', 청년들의 초기 자산 형성을 돕기 위해 정부가 최대 3배까지 매칭하는 '청년내일저축계좌' 등을 신설할 예정이다. 코로나19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월 20만 원씩 3개월 지원하는 '청년 마음건강 바우처' 제도도 있다.

청년들은 월세 지원 등 정부에 의존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집값 폭등에 속수무책이다. 지난 3월 15일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LH 투기 의혹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하고 있는 한국청년연대, 청년진보당, 청년하다 등 청년단체 회원들. /뉴시스

내년 굵직한 선거를 앞두고 청년층 표심을 겨냥하기 위해 지속 가능하지 않은 현금 지원책만 마구 쏟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며 장기적으로 청년층에 부담이 될 국민연금은 당과 정부가 손도 대지 않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동학 민주당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 27일 "우리 정부에선 연금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하고 시간을 보냈다"며 민주당 대선 후보들에게도 이 문제에 대해 외면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청년의 경제력은 국가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민주당은 양질의 일자리와 질 좋은 주택 공급, 국민연금 개혁 등 장기적인 청사진을 제시해야 떠난 청년 민심을 되돌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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