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당의 그늘-<상>] 민주당의 입법 폭주…무용지물 '안건조정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언론중재법을 단독으로 처리하며 입법 폭주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 19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에 항의하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들. /이선화 기자

지금까지 이런 국회는 없었다. 절반을 훨씬 넘는 의석을 차지한 여당의 '입법 폭주'가 멈추지 않고 있다. 쏠린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견제장치들마저 무력화된 지 오래다. '압도적인 국민 지지'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여야 합의를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 원리를 훼손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수당 견제 장치가 무용지물이 된 21대 국회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독주 사례를 살펴보고, 여야 협치와 신뢰 회복 방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21대 국회 다수당 '일방통행', '국회선진화법' 입법 취지 훼손

[더팩트ㅣ국회=박숙현·곽현서 기자] "9일 동안 정말 엄청난 입법 성과를 냈다." (8월 25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 윤호중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의 8월 '입법 폭주'는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가 자화자찬한 '엄청난 입법 성과'는 반대로 그만큼 일방 독주했다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21대 국회에서 압도적 의석을 확보하고, 18개 상임위원회 및 상설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모두 독식하면서다. 야당이 최후의 견제 수단으로 요청한 '안건조정위원회'의 무력화가 '결정타'였다.

민주당의 입법 독주 신호탄은 지난해 7월 임대차3법이었다. 국회법상 기본적인 의결 절차조차 지키지 않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당시 전문가들은 '전세 난민'이 생길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가 컸지만, 민주당은 전체회의와 법안소위에서 대체 토론, 축조·심사보고 등 일정한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법안소위를 건너뛰고, 숙려기간도 무시한 채 본회의에 올려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최근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민주당이 단독 처리하면서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단체 등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2012년 여야 의원들 합의로 '국회선진화법'(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된 후 국회에서 물리적 충돌은 사실상 사라졌다. 선진화법을 통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안건조정위원회 등 쟁점 법안에 대한 여야 갈등을 줄이고, 쏠린 균형을 맞추도록 하는 완충 장치들이 마련된 덕이었다.

특히 안건조정위는 여야 간 조정이 필요한 쟁점 법안에 대해 상임위에서 다수당의 입법 과속을 막는 역할을 해왔다. 상임위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최장 90일간 논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리버스터 역시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최장 100일까지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어 합법적으로 의사일정을 방해할 수 있는 장치지만, 상임위에서 밀리고 밀린 끝에 국회 본회의장에서 마지막에 꺼낼 수 있는 최후의 카드다. 이마저도 21대 국회에서는 범여권이 합심하면 필리버스터를 강제로 종료(재적의원 5분의 3 이상)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여야 동수로 구성되는 안건조정위는 통상 제1야당 2명과 비교섭단체 1명이 포함돼 의결 조건(조정위원 3분의 이상 찬성)을 충족하기 어려운 구조라 90일간의 숙려 기간을 채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조정위 구성 과정에서 친여 성향 무소속 의원이나 '여당 2중대'로 평가받는 열린민주당 의원들을 야당 몫으로 구성해 사실상 '4대 2'로 속전속결로 종료시켰다.

인원 구성권은 여야 간사의 협의를 걸치지만 상임위원장에게 전적인 권한이 있다.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차지한 만큼 여당에 유리한 조정위원 구성을 야당에 통보하는 식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던 배경이다. 특정 정당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강제로 법안 처리를 하지 못하도록 막고, 법안에 대해 숙의하고 합의를 끌어내라는 입법 취지는 무색해졌다.

◆21대 국회 안건조정위 총 22회 19개 안건...회의 1차례 만에 가결

26일 기준 21대 국회에서 열린 안건조정위는 총 22회로, 총 19개의 안건을 다뤘다. 각 상임위별 안건조정위 개의 횟수는 ▲법사위 2회(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설치및운영에관한법률(5건), 상법일부개정법률안), ▲정무위 2회(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등을 위한 특별법,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 ▲교육위 9회 (사립학교법, 교육기본법, 기초학력보장법안, 디지털기반의원격교육 활성화기본법안, 초·중·등 교육법, 한국사학진흥재단법, 고등교육법, 국가교육위원회법, 국가교육위원회설치및운영에관한법률(5건)), ▲과기부 3회(전기통신사업법), ▲문체위 2회(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에관한특별법,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산자위 1회(한국광업공단법안에대한안건), ▲환노위 2회 (근로기준법, 탄소중립법) 등이다.

제21대 국회 개원식에서 국회의원 선서하는 의원들. /국회사진취재단

22차례의 안건조정위 중 여야가 모두 참석한 회의는 6번에 불과하다. 나머지 회의에서는 제1야당의 불참 속에서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열린민주당 또는 무소속 의원들의 협조로 안건들을 가결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일방적인 조정위원 구성 통보에 반발하면서 상법일부개정법률안, 사립학교법 등 총 10건의 회의에는 아예 불참했고, 다른 회의에서도 참석 후 합의가 안 되자 퇴장했지만 표결은 그대로 진행됐다.

안건조정위에 올라온 대다수 안건은 4대2 표결로 민주당이 원하는 방향으로 통과됐다. 19개의 법안 중 국민의힘 의원이 찬성표를 던진 법안은 단 두 건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한 건은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이 직접 대표 발의한 '한국사학진흥재단법'이었다.

최장 90일간 법안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고 합의를 거치라는 입법 취지와 달리, 21대 국회에서 안건조정위는 하루 만에 속전속결로 끝났다. 민주당은 이달에만 이틀 사이에 모두 세 번의 안건조정위를 하루 만에 통과시켰다. 언론중재법은 지난 18일 회의가 열린 지 1시간여 만에 종료됐다. 지난 6~7월 과학기술통신위에서 진행한 구글 인앱결제 강제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논의 때만 세 차례 안건조정위가 열렸을 뿐 나머지는 모두 단 한 차례 회의로 가결됐다.

2019년 11월 19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소방공무원법 전부개정법률안. /국회사진취재단

◆20대 국회 '안건조정위' 합의안 도출 등 성과...4건만 표결 처리

20대 국회에서는 총 12차례의 안건 조정위를 개최했고, 회부된 법안 및 결의안은 9건이다. 이 중 1건은 여야가 합의안을 도출했고, 4건은 제3정당의 협조 속에서 민주당이 표결 처리했다. 이 외에는 제1야당의 강한 반발로 합의를 하지 못하고 표결 시도 없이 안건조정위 활동을 마무리했다.

패스트트랙 정국 당시 자유한국당의 상임위 보이콧 속에서 열린 20대 국회 안건조정위는 야당의 지연 전략을 여당이 어쩔 수 없이 수용하면서 본래 법 취지였던 '숙의 과정'에 온전히 집중한 측면이 강했다. 실제로 대다수의 안건조정위는 법이 정한 최장 90일이 임박해서야 활동을 종료했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국회에서 처음 '안건조정위원회'가 열린 곳은 20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였다. 2017년 1월 16일 교문위는 2건(역사교과용도서의 다양성 보장에 관한 특별법안,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추진중단 및 폐기 촉구결의안)을 안건조정위에 회부했고, 두 번째 회의에서 표결로 처리했다. 이은재 바른정당 의원, 새누리당 전희경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2월 22일 조정기간 만료일을 앞두고 민주당 의원 3인과 국민의당 의원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2019년 3월부터 제1야당의 보이콧으로 국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으면서 안건조정위는 활발하게 열렸다. 여당이 상임위에 불참한 야당을 빼고 다수결 처리할 때마다 야당이 안건조정위를 요청하면서다.

2019년 9월 행정안전위원회는 안건조정위를 두 차례(9월 6일, 9월 23일) 열고 3건(소방공무원의 국가직화와 관련된 법률안,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 공무원직장협의회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을 논의했다. 이례적으로 여야는 안건조정위에서 대형 화재에 체계적으로 대처하고 소방관의 지자체별 처우 격차를 줄이도록 하는 소방직 국가직화 관련법에 합의했다. 안건조정기간 최종일에 여야 조정 위원 6명이 협의를 통해 법안을 처리하기로 했고, 이후 국회 본회의에서도 일사천리로 통과했다. 나머지 2개 법안 중 과거사법도 안건조정위 후 여야가 극적 합의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치열한 쟁점 법안이었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두고 정치개혁특별위원회도 두 차례(2019년 8월 27일~8월 28일) 안건조정위를 열었다. 하지만 대안 마련이 가능한지 여부를 집중 논의하는 수준에 그쳤고 표결 시도는 하지 않았다. 공직선거법은 같은 해 12월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1'협의체(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과 대안신당)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통해 처리했다.

교육위 역시 이른바 '고교 무상교육' 관련한 법안 2건 논의를 위해 네 차례(2019년 7월 8일~9월 17일까지), 국가 교육 발전계획을 10년마다 수립하는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법' 논의를 위해 두 차례(2019년 10월 30일, 2019년 11월 21일) 안건조정위를 열었지만 여야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표결 시도를 하지 않았다. 이후 고교 무상교육법은 소관 상임위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집단 퇴장 속에 민주당이 강행 처리,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했다. 국가교육위 설치법은 20대 국회에서는 처리가 무산된 이후 21대 국회에서 다시 안건조정위를 거쳐 지난 7월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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