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한미훈련 개시 맹비난…멀어지는 남북관계 개선

한미 연합훈련 사전 연습 격인 위기관리참모훈련(CMST)이 시작된 10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한미 양국을 싸잡아 맹비난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맞대응을 자제하면서 북한의 태도 등을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 9월 18일 김 부부장(앞)과 남북 정상이 평양 조선노동당 중앙위 본부 청사에서 정상회담장으로 이동하는 모습.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북한에 끌려다닌 文정부…이번에도 北 주시만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친동생으로 북한의 외교·안보를 총괄하고 있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한미 연합훈련 사전 연습 격인 위기관리참모훈련(CMST)이 시작된 10일 담화를 통해 한국과 미국을 싸잡아 맹비난했다.

특히 현실성이 거의 없는 '주한미군 철수'까지 거론하면서, 남북 통신선 복원으로 관계 개선을 모색하던 남북 관계에 또다시 찬물을 끼얹었다. 북한의 변함없는 태도에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 관계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 부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과 남조선군은 끝내 정세 불안정을 더욱 촉진시키는 합동군사연습을 개시했다"라며 "10일부터 13일까지의 위기관리참모훈련과 16일부터 26일까지의 연합지휘소훈련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이번 합동군사연습은 우리 국가를 힘으로 압살하려는 미국의 대조선적대시 정책의 가장 집중적인 표현이며 우리 인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조선반도의 정세를 보다 위태롭게 만드는 결코 환영받을 수 없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자멸적인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거듭되는 우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강행하는 미국과 남조선 측의 위험한 전쟁연습은 반드시 스스로를 더욱 엄중한 안보 위협에 직면하게 만들 것"이라며 "연습의 규모가 어떠하든,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든 우리에 대한 선제 타격을 골자로 하는 작전 계획의 실행 준비를 보다 완비하기 위한 전쟁시연회, 핵전쟁 예비연습이라는데 이번 합동군사연습의 침략적 성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한미 연합훈련은 북한의 취소 요구와 코로나19 4차 대유행 등을 이유로 규모를 대폭 축소해 실시한자. 하지만 북한은 훈련 자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김 부부장은 미국까지 강하게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국방력 강화 당위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조선반도의 정세 발전에 국제적 초점이 집중되고 있는 지금과 같은 예민한 때에 침략전쟁연습을 한사코 강행한 미국이야말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장본인이며 현 미국 행정부가 떠들어 대는 '외교적 관여'와 '전제조건 없는 대화'란 저들의 침략적 본심을 가리기 위한 위선에 불과하다"며 "조성된 정세는 우리가 국가방위력을 줄기차게 키워온 것이 천만 번 정당했다는 것을 다시금 입증해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선반도에 평화가 깃들자면 미국이 남조선에 전개한 침략무력과 전쟁장비들부터 철거해야 한다"며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한 조선반도정세를 주기적으로 악화시키는 화근은 절대로 제거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한미군 철수까지 언급했다.

아울러 김 부부장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절대적인 억제력, 우리를 반대하는 어떤 군사적 행동에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국가방위력과 강력한 선제타격 능력을 보다 강화해나가는데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며 "이 기회에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인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김 부부장은 지난 1일 경고성 담화 이후 9일 만에 다시 낸 이번 담화에서 "위임에 따라 이 글을 발표한다"고 했다. 이는 그간 대남 담화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던 김 총비서의 의중을 반영한 담화로 해석돼 사실상 북한이 최고 수준의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미연합훈련 사전 연습이 시작된 10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에서 고공정찰기 U-2가 착륙하고 있다. /뉴시스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 1일 발표한 담화에 이어 한미 훈련에 대한 북한 측의 기존 입장을 거듭 밝힌 것"이라며 "향후 북한 태도 등을 면밀하게 주시하면서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한반도 긴장이 고조돼선 안 된다는 입장을 여러 계기에 밝혀 왔다"라며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정산 간 의지를 바탕으로 여러 노력들이 계속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김 부부장의 이번 담화는 지난 1일 담화에 이어서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북측의 기존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본다"라며 "담화의 의도나 북한의 앞으로의 대응 등에 대해서 현시점에서 예단하지 않고 북한의 태도 등을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통일부와 같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통신선 복원 직후 한미 훈련을 고리로 북한이 내놓은 고강도 비난 담화는 무력 도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북한은 지난달 27일 남북 간 통신연락선이 복원된 지 2주 만인 이날 군 통신선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채널을 통한 정기통화에 응답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이날 "동해지구와 서해지구 군 통신선에서 오늘 오후 4시 정기통화가 모두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고, 통일부도 "오후 5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마감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현익 국립외교원장 내정자는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반발 차원에서 "단거리미사일이나 장사정포 훈련을 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결국 정권 출범 초기부터 남북 관계 개선에 상당한 공을 들이면서, 사실상 북한에 끌려다녔던 문재인 정권에선 남은 임기 동안 지금과 같은 방식의 대북 접근을 한다면 관계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통화에서 "북한은 김 부부장의 이번 담화에서 과거부터 요구해온 주한미군 철수, 한미 연합훈련 영구 중단을 요구하면서 속내를 정확히 드러냈다"며 "북한은 향후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해당 사안을 조건으로 내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문 센터장은 이어 "북한은 과거 6·25 전쟁을 일으켰고, 한미는 북한의 재침을 막기 위해 훈련을 하는 것인데, 북한이 한미에 적대시 정책을 먼저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북한의 잇단 도발에 우리 정부가 할 말을 못 하고, 잘못된 행동도 바로 잡지 못 하고 눈치만 본 결과"라며 "당근과 채찍을 같이 써야 하는데 현 정부가 당근만 주면서 북한이 우리를 우습게 보고 있다. 이대로는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우리에 대한 도발을 하지 않으면 자신들에게 득이 되고 반대로 할 경우 엄청난 손해를 볼 것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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