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청, '北 김여정 협박'에 한미연합훈련 동상이몽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8월로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 취소를 공식적으로 요구한 가운데 문재인 정권 내부에선 엇갈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 계류장에서 미군 헬기가 착륙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강행'과 '연기론' 두고 엇갈린 정부부처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북한의 실질적인 2인자로 외교·안보를 총괄하고 있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8월로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 취소를 공식적으로 요구한 가운데 당·정·청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혼선을 빚고 있다. 최근 남북 통신 연락선 일부 복원을 계기로 대화 재개를 모색하려던 문재인 정권 내부에서 김 부부장의 '연락선 복원 청구서'에 대한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지난 1일 김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며칠간 나는 남조선군과 미군과의 합동군사연습이 예정대로 강행될 수 있다는 기분 나쁜 소리들을 계속 듣고 있다"라며 "지금과 같은 중요한 반전의 시기에 진행되는 군사연습. 나는 분명 신뢰 회복의 걸음을 다시 떼기 바라는 북남 수뇌들의 의지를 심히 훼손시키고 북남 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부부장은 "우리 정부와 군대는 남조선 측이 8월에 또다시 적대적인 전쟁 연습을 벌여놓는가 아니면 큰 용단을 내리겠는가에 대하여 예의주시해볼 것"이라며 한미연합군사훈련 취소를 촉구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난 2일 기자들과 서면 질의응답에서 "공식입장은 통일부와 국방부 브리핑을 확인하기 바란다"고 말을 아끼면서 "정상 간 합의로 복원된 남북 통신 연락선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하여 유지되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서두르지 않으면서 남북 및 북미 간 대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원론적인 입장만 표명했다.

청와대는 김여정 부부장의 요구에 말을 아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이는 한미연합훈련을 예정대로 실시할 경우 북측의 반발이 불보듯 뻔하고, 훈련을 연기하면 지난해 여당의 '대북전단금지법' 강행 처리에 이은 또한번의 '김여정 하명'에 문재인 정권이 충실히 따른다는 비판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말을 아끼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북한과 관련이 있는 정부기관의 입장도 엇갈리고 있다는 것이다.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김 부부장) 담화와 관련해 국방부 차원에서 언급할 내용은 없다"라며 "후반기 연합지휘소훈련은 시기, 규모, 방식 등에 대해 확정되지 않았고, 한미당국에 의해 결정될 사안"이라고 모호한 입장을 밝혔다.

반면 통일부는 한미연합훈련 연기론에 무게를 두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3일 "어떠한 경우에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계기가 돼선 안 된다"라며 "앞으로도 이런 방향에서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한미연합훈련의 연기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국가정보원도 통일부와 유사한 입장이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이날 오전 비공개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에서 "한미연합훈련의 중요성을 이해하지만, 대화와 모멘텀을 이어가고 북한 비핵화의 큰 그림을 위해선 한미연합훈련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원장은 또 "과거 6·15 정상회담을 위한 접촉 때부터 지난 20여 년간 미국은 북한 인권 문제를, 북한은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해왔다"라고 했다. 이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북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한미연합훈련을 연기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가운데)과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간사(왼쪽 두 번째)가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 앞두고 위원장실로 이동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이와 관련 정보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병기 위원은 "국정원의 공식입장이 아니라 박 원장의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국정원 수장의 입장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국정원 공식입장이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한 측면이 있다.

특히 김 의원은 남북 관계 및 김 부부장 담화와 관련해 "국정원은 김 부부장 담화에 대해 한미가 연합훈련을 중단할 경우 남북 관계 상응 조치 의향을 표출한 거로 분석하고 있다"고 한미연합훈련 연기 시 북측의 상응하는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보위 국민의힘 간사인 하태경 의원은 "국정원이 김 부부장의 하명기관으로 전락했다"고 꼬집었다.

민주당의 공식입장은 한미연합훈련 강행이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지난 2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미연합훈련은 평화 유지를 위한 '방어적 성격'"이라며 "전시작전권 회수를 위해 완전한 운용능력(FOC) 필수 훈련이기도 하다. 이 훈련은 예정대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 민홍철 국회 국방위원장도 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한미연합훈련은 한미동맹의 문제이고 우리 주권의 문제"라며 "그동안 연례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 위원장은 "제가 알기로 한미 양국 군사당국은 (한미연합훈련을) 계획대로 진행하는 걸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 김여정 부부장(사진)의 한미연합훈련 중단 요구에 우리 정부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더팩트 DB

아직 정부가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은 가운데 야권에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여당 일각에선 김여정의 말 한마디가 떨어지자마자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북한이 마치 상왕이라도 되는 양, 대한민국 안보 문제에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은 지난 4년간 문재인 정권이 보여준 대북 굴종적 태도 때문"이라며 "임기 내내 내세울 변변한 실적이라고는 하나 없는 문재인 정권이 어떻게든 김정은에게 잘 보여 가짜 평화 쇼 같은 위장된 실적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초조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우리 국민들의 자존심과 국방 주권을 김여정에게 농락당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원내대표는 "김여정의 명령 한마디가 떨어지자마자 반인권법인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어서 일명 '김여정 하명법'을 북한에 상납했던 문재인 정권이 이번에도 김여정의 하명에 따라 한미연합훈련을 취소 또는 연기하거나 위축시킨다면 문재인 정권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 국익을 팔아먹었다는 비난을 면하지 못할 것임을 엄중하게 경고한다"라며 "또다시 김여정의 하명에 복종해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고 한미동맹과 대한민국 안보를 위협하는 우려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여권 내 입장이 엇갈리고, 야권도 강력히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어떤 결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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