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열의 '靑.春일기'] '김경수 유죄'와 文정권 '내로남불'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에 연루돼 징역 2년을 확정 받은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지난 21일 경남도청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경남도 제공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청와대 취재기자의 주관적 생각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사법부 최종 판결도 불신하는 오만한 권력자들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지난 대선을 전후해 이뤄진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징역 2년 형이 확정됐습니다. 지난 21일 대법원은 김 지사가 드루킹 김동원 씨와 공모해 문재인 대통령 당선을 위해 자동화 프로그램 '킹크랩'으로 여론을 조작한 혐의(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가 있다고 최종 판단했습니다.

이로써 김 지사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끝났습니다. 당장 야권에선 '친문 적자'라 불리는 김 지사가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현 정권의 근본적 정통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게 사법부 판결로 확인됐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범죄다", "김 지사의 불법 행위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문 대통령이다" 등의 거센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하자니, 정통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 같고,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는 김 지사를 두둔하자니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인 삼권분립을 흔든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워 아예 말을 하지 않기로 한 것 같습니다. "김 지사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은 없다"는 게 청와대의 공식 입장입니다.

대신 문 대통령과 가까운 여권 유력 인사의 반응에서 속내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이자, 역대 최장수 총리로 재임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3일 수감(26일)을 앞둔 김 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의 이 어려움을 잘 이겨내시면, 김 지사에 대한 국민의 신임이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김 지사는 "대통령님을 부탁드립니다. 잘 지켜주십시오"라고 말했고, 이 의원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대통령님을 잘 지켜드리겠다. 경남에 '우리' 김 지사가 그동안 추진했던 일들, 하고 싶다는 일은 제가 챙기겠다. 제가 김 지사의 특보라는 마음으로 잘 챙기겠다"고 답했습니다.

이낙연 캠프 상황본부장을 맡은 최인호 의원은 해당 통화 내역을 SNS에 공개하면서 '가슴 뭉클한 이야기: 김경수와 이낙연, 그리고 문재인'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가슴 뭉클하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낙연 전 대표 측이 김경수 지사와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최인호 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사법부가 범죄를 확정한 범죄자와 여권 유력 대선후보의 통화에는 사법부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 삼권분립 따위는 내 편을 공격하면 언제든지 무시할 수 있다는 오만한 권력자들의 태도가 엿보입니다.

이 가운데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했던 현역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대선의 득표율(문재인 41.08%, 홍준표 24.0%)을 거론하면서 불법 행위를 할 이유가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있었던 박근혜 정부의 국가정보원 댓글 조작을 다시 꺼내 반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부 사실(대선 득표율)로 전체적 진실을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흔드는 선동에 가깝습니다. 시간을 지난 대선일 한 달 전으로 한 번 돌려보겠습니다. 2017년 4월 1주(4~6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율은 38%, 안철수 후보 지지율은 35%였습니다. 그 다음 주인 4월 2주(11~13일) 차 조사에서도 문 후보는 40%, 안 후보는 37%로 3%P 격차가 유지됐습니다.

문 후보가 오차범위 밖에서 선두를 달리기 시작한 것은 4월 3주(18~20일) 차 조사 때로, 당시 문 후보는 41%, 안 후보는 30%로 조사됐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갤럽 측은 "공식 선거운동 돌입 후 격화된 검증과 네거티브 공방 등에 안철수를 지지했던 유권자 일부가 이탈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상세한 사항은 한국갤럽 누리집 참조).

재판부에 따르면 드루킹 일당은 2017년 1~3월까지는 1일 약 100개의 기사 댓글을 조작했지만, 4월 초에는 1일 약 300개, 4월 중순경 이후부터 2017년 5월 대선일 직전까지는 1일 약 500개까지 조작 기사 수를 늘렸습니다. 재판부가 인정한 총 조작 개입 기사 수는 약 7만 여개, 공감·비공감 클릭 조작은 약 4133만 건입니다. 이러한 조작이 당시 문 후보의 지지율 상승 및 안 후보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극성 친문들 외에는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조작의 주체는 다르지만, 여론 형성의 장을 왜곡한 여론조작이라는 본질이 같은 2012년 국정원의 댓글 조작(약 41만 건)과 비교해도 100배가 넘는 조작 건수입니다. 국정원 댓글 조작은 비판하면서, 드루킹 댓글 조작은 사법부의 최종 유죄 판결에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우리 편을 공격하면 사법부도 인정할 수 없다'는 반민주적 인식에 따른 '내로남불'적 행태입니다.

민주당의 '내로남불'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지금은 차기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장 뜨거운 '정치의 계절'입니다. 여야의 각종 네거티브 공방이 가장 격렬해지는 시기에 지난 대선의 불법 행위를 사법부가 범죄로 판단해도 여권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다가오는 대선에서도 '혹시나' 하는 우려와 의혹을 낳을 수 있습니다. 길을 이탈해서 가려는 정치인들에 대한 깨어있는 국민들의 보다 깊은 관심과 견제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sense83@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