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野 "여가부 폐지", '해경 해산'과 뭐가 다른가

대선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과 하태경 의원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논의 초반 힘을 실었다. /국회사진취재단·이새롬·이선화 기자

입 맞춘 유승민·하태경·이준석…'남녀 갈등 편승' 논란

[더팩트|국회=문혜현 기자] "해경의 몸집은 계속 커졌지만 해양안전에 대한 인력과 예산은 제대로 확보하지 않았고, 인명구조 훈련도 매우 부족했다.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고 해경의 수사·정보 기능은 경찰청으로 해양 구조·구난·경비 분야는 신설되는 국가안전처로 이관하겠다."

2014년 세월호 참사 후 황당했던 정부 대처가 하나 있다. 그해 11월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물어 해양경찰청을 전격 해산한 것이다. 해경은 다행히(?)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해양수산부 산하 기관으로 복귀됐지만, 후속 조치와 재발 방지를 외면한 당시 정부의 대처는 '문제가 생기면 없애버리면 된다'식 주장의 대표적인 예가 됐다.

최근에도 박근혜 정부의 대처와 비슷한 주장이 나와 논란이다. 국민의힘 대선주자 사이에서 나오는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이다. '해경 폐지'와 결을 같이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가부 폐지의 시작은 지난 7일 대선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이었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여성가족부 일은 다른 부처가 해도 잘한다", "여가부 장관은 대선 전리품"이라며 여가부 폐지로 절약된 예산을 제대한 군인을 지원하는 사업에 쓰겠다고 주장했다.

가장 먼저 대선 후보로 출마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도 "현재 여가부는 사실상 젠더갈등 조장부가 됐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젠더갈등을 조장하는 여가부는 폐지하고, 그 대안으로 젠더갈등 해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어서 가장 큰 갈등 요소를 해소하겠다"고 했다.

이들의 주장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빈약한 부서를 가지고 캠페인 정도 하는 역할로 전락해버렸는데, 나중에 저희 대통령 후보가 되실 분 있으면 그 폐지 공약은 제대로 냈으면 좋겠다"고 힘을 실었다.

여가부 폐지 주장은 보수 정권에서 자주 나왔던 논제다. 실제 이명박 정부 때 여성가족부는 '여성부'로 축소되면서 예산을 1조1994억 원에서 539억 원으로 90%이상 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가부가 남은 이유는 여전히 그 역할이 분명히 있으며 디지털성범죄·양육비문제·돌봄노동 등 다양한 측면에서 지원을 받아야 하는 약자(여성·노인·아동)가 있기 때문이다.

대권주자인 원희룡 제주지사와 윤희숙 의원 등은 여가부 폐지를 반대하고 나섰다. 지난 7일 희망오름 포럼 출범식에 참석한 원 지사. /이선화 기자

세 사람의 주장은 진보 정당 뿐 아니라 국민의힘 내에서도 비판받았다. 두 대선주자의 경쟁자인 원희룡 제주지사는 "(여가부 폐지를) 당론으로 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반대한다. 국민의힘이 젠더갈등에 편승하고 부추기는 그런 자세를 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유일한 초선 대선주자인 윤희숙 의원도 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청소년과 다문화 가정, 성폭력 등을 여가부에 떼어놓은 이유는 다른 부처에서 해결이 어렵기 때문"이라며 "여가부 폐지는 딱 칼로 자르듯이 얘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일각에선 '이럴 줄 알았다'는 시각이다. 이 대표는 일찍이 여성할당제 폐지 등을 공약한 바 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여가부 폐지를 말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그 얘기를 함으로써 모든 지지층을 포용하고 가야 할 정당이 일부 계층을 배제해버리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 전 의원은 8일 자신의 주장이 '남녀 갈등을 부추기는 분열 정치'라는 비판에 "여성이든 남성이든 부당하게 차별받는다고 느낄 때 젠더갈등이 격화된다"며 "평등과 공정이 보장되면 젠더갈등의 소지가 줄어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가부에 쓸 돈이 아까우니 제대 군인 사업에 쓰자'는 식의 유 전 의원 주장은 평등과 공정이 보장된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는 데다 이명박 정부가 여가부 예산을 줄인 것과 다르지 않다. 또 여가부를 향해 '대선 전리품', '젠더 갈등 부추긴다'는 표현으로 깎아내리는 건 여가부가 제 역할을 하고 젠더갈등을 해결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여가부 폐지가 여성과 약자를 배제한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7일 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이 개정 성폭력방지법 시행 등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응체계 강화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일부 커뮤니티와 여론이 여가부가 일으킨 문제에 댓글로, 혹은 게시물로 "저러니 여성가족부를 없애버려야 한다" 힐난할 수 있지만, 정치인의 주장은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실제 여가부를 없애고 각 정부부처로 역할을 이양한다고 하면 그에 따른 행정비용은 물론이고 제도가 정착할 때까지의 행정 공백도 감당해야 한다.

또, 정치권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국가 행정 조직을 쉽게 흔들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하면 이는 곧바로 국가에 대한 국민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원 지사는 재차 9일 페이스북에 여가부 폐지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대안세력으로서 국민의힘의 신뢰를 떨어뜨린다"며 "무슨 일이 생기면 해경을 없앤다, LH공사를 없앤다 하는 식으로 쉽게 접근하는 것은 대안세력으로서의 신뢰를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원 지사는 이어 "여가부를 없앤다고 해서 여성을 적대시한다고 받아들이면 정치의식이 낮다고 비판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이 대표는 인정해야 한다"며 "굳이 그 많은 이슈 중 여가부 폐지를 앞세워서 아직도 우리에게 부족한 이대녀(20대 여성)의 지지를 배척할 우려를 만드는 것도 현명하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정치'의 사전적 의미는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이다. 이런 의미를 고려한다면 2022년 3월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여가부를 바라보는 이유가 '표 계산'이 아니길 바란다.

moon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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