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열의 '靑.春일기'] '무책임'과 '모순'으로 반복되는 '靑 인사 실패'

청와대의 부적절한 인사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책임지는 인사는 아무도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헌법기관장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환담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청와대 취재기자의 주관적 생각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국민 눈높이와 궤리된 靑…변화 기미가 안 보인다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청와대의 부적절한 인사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문제가 반복돼도 책임지는 이는 없습니다. 부적격 인사를 추천하고, 부실 검증한 이들이 자리를 계속 지키고, 그들이 또다른 문제를 야기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이른바 '영끌 빚투' 논란으로 거센 비판을 받은 김기표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은 임명 88일 만에 사실상 경질됐습니다. 뒤늦게 공개된 김 전 비서관 재산 내역에서 54억 6441만 원의 금융채무를 바탕으로 서울 강서구 마곡동 상가 두 채(65억4800만 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아파트(14억5000만 원),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 근린생활시설(8억2190만 원) 등 91억2623만 원 상당의 부동산 자산을 보유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 논란이 된 이후입니다.

청와대는 김 전 비서관 인사 검증 과정에서 해당 사실을 인지했지만, '문제 없음'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투기 목적의 부동산 취득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고 해명하면서 "청와대 인사 검증 부실에 대해 많은 비판을 받아오고 있고,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한다"고 말했습니다. 비판을 수용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바뀌는 건 없습니다.

지난달 21일 임명된 김한규 정무비서관도 아내가 장모에게 물려받은 경기도 양평 밭을 경작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둬 농지법 위반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이광철 민정비서관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에 관여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면서 청와대를 떠나게 됐습니다. 하지만 사퇴의 변에서 그간의 인사 검증 실패에 대한 언급은 단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해당 논란을 거치면서 김외숙 청와대 인사수석 책임론이 여야 모두로부터 나왔습니다. 문 대통령과 법무법인 부산에서 함께 일했던 김 수석이 지난 2019년 5월 인사수석에 임명된 이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변창흠 국토부 장관, 이용구 법무부 차관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차기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또다른 중대한 인사 문제가 제기되니 여당에서도 "책임론을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 것입니다.

이에 대해 김부겸 국무총리는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자리에 가는 분들은 본인 스스로가 여러 가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고 하면 스스로 거절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참신(?)한 해법을 내놨습니다. 그러면서 "청와대 인사 검증시스템이라는 게 옛날처럼 세세하게 개인을 정보기관을 통해서 사찰하거나 이런 게 아니어서 상당 부분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부실 검증의 당위성을 역설했습니다.

하지만 김 전 비서관의 사례를 보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건 당사자뿐 아니라 청와대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인사 문제가 반복되어도 관련자들이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시스템 탓을 하다가,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 논란의 당사자만 자진사퇴 형식으로 내보내는 일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경질된 청와대 김기표 전 반부패비서관(왼쪽)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관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면서 청와대를 떠나기로 한 이광철 민정비서관. /청와대 제공

인사의 범위를 넓히면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인사청문회 대상자 중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야당의 반대 등으로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음에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사례는 총 24건입니다. 여당 단독으로 인사청문보고서를 처리한 뒤 임명한 경우까지 고려하면 33명의 장관급 인사가 야당 동의 없이 임명을 강행했습니다. 이는 국무위원이 인사청문회 대상에 포함된 2005년 이후 노무현 정부(3명), 이명박 정부(17명), 박근혜 정부(10명) 사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습니다.

야당과 언론에서 아무리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도, 신경 쓰지 않고 인사권자 뜻대로 인사권을 행사해 온 것입니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야당이 반대한다고 해서 검증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면서도 "청와대의 검증이 완결적인 것은 아니다. 이어서 언론의 검증, 그다음에 또 국회의 인사청문회 검증 작업이 이루어지는데 그 모두가 검증의 한 과정이고 국회 논의까지 다 지켜보고 종합해서 판단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야당이 반대한다고 검증 실패는 아니지만, 언론이나 야당에서도 검증을 한다는 모순된 발언으로 잇단 인사 실패에 대한 비판을 피하려 한 것 같습니다. 최근의 인사 문제에 대한 청와대 참모의 발언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1일 거듭된 청와대 인사 논란에 따른 김외숙 인사수석 경질 요구에 대해 "인사에 관계된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책임질 일이지, 특정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반박했습니다. 청와대 인사 관련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면서 정작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에 대해선 별다른 설명이 없습니다.

청와대 인사는 기본적으로 인사수석실에서 인재풀을 마련해서 추천하면 민정수석실에서 검증을 하고, 대통령비서실장이 위원장을 맡은 인사추천위원회에서 복수의 후보자를 선정해 대통령에게 건의한 뒤 대통령이 최종 결정을 내립니다. 이 과정에 속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앞으로 남은 문재인 정부 인사도 지금까지와 달라질 게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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