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돌풍' 지켜본 민주당, 대선 경선 흥행 고심

더불어민주당에서 대선 경선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젊은 야당 대표의 등장으로 경선 흥행에 대한 고심이 깊어진 탓이다. 10일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앞줄 왼쪽)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참석자들. /남윤호 기자

경선 '일정' 이어 '방식' 논의도 점화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국민의힘의 '이준석 열풍'으로 더불어민주당에서 '대선 경선 연기론'이 다시 불붙는 모양새다. '30대' 제1야당 대표가 등장하면서 경선 흥행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당내 역동성을 불어넣는 흥행 방식을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경선 일정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여권 일부 대선주자들은 토너먼트 형식의 토론이나, TV오디션 프로그램 차용 등 다양한 경선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 '경선 연기론'은 지난달 초 '친문' 핵심인 전재수 의원이 처음 꺼냈다. 이때만 해도 당내에선 회의론이 지배적이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나 이낙연 전 대표도 "당 지도부가 조속히 결단해달라"며 소극적인 입장이었다. 경선 연기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먼저 링 위에 오르면 후보가 상처를 입게 되고 상대당의 경선 흥행으로 여론 관심도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역대 대선 결과, 14대 때부터 19대 대선까지 모두 당내 경선에서 먼저 선출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점에서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팀배틀 등 경선 흥행 구상을 밝힌 바 있다. 11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제1차 전당대회에서 수락연설을 하고 있는 이 대표. /이선화 기자

다만 이달 들어 민주당 내 '경선 연기론'에 대한 온도는 달라진 분위기다. 이준석 당대표의 등장으로 그가 이끌어나갈 국민의힘의 차기 대선 경선에 관심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이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대선 전략에 대해 "원칙은 흥행 한 가지"라며 대선 경선 후보 토론회를 팀배틀로 진행하겠다는 구상 등을 밝힌 바 있다. 민주당 일부 권리당원들은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가 결합할 경우 경선 흥행 시너지를 우려하며 연기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민주당 수도권 초선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초창기에는 원칙대로 하자는 의견이 많았는데 이준석 열풍이 나오고 박용진 의원도 지지율이 오르는 상황에서 (경선 일정을 연기해) 붙어볼 만하다, 또 코로나19를 9월에 극복할 수 있으니 11월로 경선을 연기하면 더 승산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8월이 휴가철이고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한창 할 때라 백신 접종이 끝나서 축제 분위기에서 경선을 시작하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당사자인 대선주자들이 '경선 연기론' 공론화에 직접 나서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여권 '빅3'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지난 8일 "경선 시기나 방법 등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 됐다"며 경선 연기론에 힘을 실었다. 이광재·박용진·김두관 의원과 최문순 강원지사 등도 입을 모아 '경선연기'를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하는 최문순 지사는 자신의 메기론을 강조하며 경선 흥행 방식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유튜브에서 신인가수 MEGI로 분장한 최 지사. /유튜브 채널 최문순TV

특히 흥행을 위한 경선 방식을 논의하고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경선 연기는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문순 지사는 TV 오디션 프로그램 방식을 빌려와 경선을 진행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최문순TV'를 통해 신인가수 최 메기(MEGI)로 변신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선 경선에서 활력을 불어넣는 메기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에서다. 이낙연 전 대표 측에서도 경선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며 공감하고 있다. 이 전 대표 측 최측근인 윤영찬 의원은 지난 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슈퍼스타K,미스터트롯이나 이런 방식도 있지 않나. 리그전 토너먼트를 통해 역동성과 국민들의 흥미를 유발할 시스템이 도입돼야한다. 그런 시스템이 도입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경선 시기도 조정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 전 총리와 가까운 이원욱 의원도 <더팩트>와 통화에서 "예를 들어 2010년에 민주당에서 했던 시민배심원제라든가 집단지성이 발휘될 수 있는 심층토론도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고 했다.

최근 선거를 돌이켜볼 때 국민의힘의 선거 흥행 전략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도 경선 방식에 대한 치밀한 논의와 고민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을 더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이후 민주당은 두 번의 전당대회와 4·7재보궐 선거 모두 국민 관심을 끄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더불어민주당' 당명을 만들고 19대 대선에서 민주당 홍보위원장을 지내며 선거 흥행에 기여했던 손혜원 전 의원은 지난 재보선 때 여당의 선거 전략을 질타한 바 있다. 그는 박영선 전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를 향해 "옷에 글씨가 없어서 박영선인지 이영선인지도 모르겠다. 2012년 문재인 후보 디자인 때보다 훨씬 더 최악이다"라며 충고했고, 공교롭게도 이후 박 후보 캠프 측은 유세용 점퍼에 당명과 '합니다' 구호를 삭제하고 이름을 키웠다. 이후에도 박 후보 캠프에서는 당원을 '일반 청년 발언자'로 소개하거나, '샤이 진보 효과'를 강조하는 등 내부에서조차 "당과 캠프에 전략통이 없다"는 비판이 나온 바 있다. 반면 국민의힘에선 이준석 대표가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후보를 도와 청년 관심을 이끌면서 선거 흥행에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한편 '경선 일정'을 놓고 여권 선두를 달리는 이재명 경기지사는 "정치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중요한 건 국민의 눈높이"라며 여전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당 지도부의 고민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서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지면서 다음 주 확정할 예정이었던 대선기획단 인선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는 21~22일로 예정됐던 예비후보 등록 일정도 연기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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