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대통령 왜 안 되나'…대선 앞두고 불붙는 개헌론

정권 말기 개헌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이번엔 청년 정치인들이 대통령 출마 연령 제한을 핵심 과제로 들고 나온 점이 색다르다. 8일 대통령선거 40세미만 출마제한 폐지 관련 여야 9개정당 청년정치인 공동선언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 /이선화 기자

'정권 잡고 뒷전' 반복…'국민 주도' 개헌 필수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특정 세대가 독점하는 정치는 막을 내려야 한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

내년 대선을 270여 일 앞두고 '개헌론'이 달아오르고 있다. 세대교체 바람을 일으킨 '이준석 현상'과 맞물려 현행 만 40세인 대통령 출마 가능 연령을 낮추자는 개헌 요구가 청년 정치인 사이에서 활발하다. 다만 대통령 피선거권 연령만 조정하는 '원포인트 개헌'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권력구조 개혁 등 전면 개헌 요구와 맞물려 추진될 경우에도 여야 정치적 이해관계로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개헌안을 제출했던 2018년 3월 이후 약 3년 만에 정치권에 개헌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최근 정치권에서 세대교체 요구가 커지고, 2030 세대의 표심이 주요해지면서 청년 정치인을 중심으로 대통령 출마 연령 제한 폐지 목소리가 힘을 얻는 모습이다. 헌법 40조는 대통령 출마 자격을 '국회의원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40세에 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국회의원 출마연령인 만 25세로 맞추는 원포인트 개헌에 가장 무게가 쏠리는 양상이다.

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국민의당 등 9개 정당 소속 청년 정치인 24명은 지난 8일 이 같은 내용의 헌법상 출마 연령 제한 폐지를 촉구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이 문제를 청년 정치인의 과제로 미뤄서는 안 된다"며 "각 당 대표가 입장을 밝히고 모든 당에서 대통령 피선거권 연령제한 폐지를 당론으로 정해 연내 개헌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여야 청년 정치인들은 현행 만 40세인 대통령 출마 나이 제한을 만 25세로 낮추는 개헌안을 준비하고 있다. 8일 대통령선거 40세미만 출마제한 폐지 관련 기자회견. /이선화 기자

전용기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출마 가능 연령을 만 25세로 하향하는 원포인트 개헌안을 연내에 발의할 예정이다. 전 의원실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연내 발의를 목표로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개헌안은 발의하면 90일 내로 무조건 처리해야 하는데 다음 대선에 맞춰 국민 투표하기 위한 것이다. (개헌을 위해) 별도 비용을 쓰는 건 정치권에서 회의적이다 보니 선택지가 없었다"고 했다.

대통령 피선거권 나이 제한 조항은 1962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제안으로 국민투표를 통해 처음 명시됐다. 우리나라 외에 미국·러시아(35세 이상), 독일(만 40세), 러시아(35세 이상) 등 주요 국가도 대통령 연령을 헌법으로 제한하고 있다.

학계에선 의견이 엇갈린다. 한쪽에선 나이 제한이 낡은 규정이며 시민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이고, 반대하는 측은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된 현 권력구조에선 능력을 고려했을 때 최소 일정 나이 이상은 돼야 한다고 본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40세' 연령 제한은 시대적 추이에 안 맞아서 30세나 35세로 내릴 필요는 있다고 본다. 다만 의원내각제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많은 권한이 집중돼 있기 때문에 인기몰이식으로 포퓰리스트적인 젊은 정치인이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며 "현재 유신헌법 조항 등 낙후된 내용이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급하지 않은 (대통령 피선거권 조정만 하는) 원포인트 개헌을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본다"고 했다. 반면 임지봉 임지봉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 피선거권 연령 제한이) 헌법에 들어오게 된 건 62년 헌법 때다. 그런데 당시 왜 그런 규정을 뒀는지 취지가 명확하지 않다. 장유유서 유교문화의 영향을 고려한 것 같다"며 "1962년과 2021년은 시간적인 간극이 굉장히 크다. 수십 년 세월 동안 한국사회는 많이 변했고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도 크게 높아졌다. 이런 변화를 반영한다면 조항을 삭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의 정치참여를 확대해 정치를 선진화하는 데도 도움 될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학계 의견과 별개로 정치권에선 대통령 출마 연령 하향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은 현실성이 낮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전 의원실 관계자는 "송영길 대표나 윤호중 원내대표도 공감을 표했다. 다만 현재로선 지도부가 부동산 정책 등이 있어 이 문제에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고용진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지난달 30일 "개헌으로 가기까지 별도의 절차가 있어 향후 논의를 진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하는 데 그쳤다.

대통령 출마 연령 조정은 원포인트 개헌보다 여권 대선주자 중심의 전면 개헌론과 맞물려 진행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지난 8일 국민 행복 추구권 보장을 위한 기본권 개헌 토론회에서 축사하는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선화 기자

여권 대선주자들이 중심이 된 '전면 개헌안'과 맞물려 추진될 가능성이 현재로선 가장 높아 보인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최근 대통령 피선거권 연령 하향과 함께 '토지공개념 3법'과 기본권 강화 등 전면 개헌을 제안했다. 정세균 전 총리도 내년 대선 때 국민 투표에 붙이자며 '4년 중임제'를 핵심으로 하는 개헌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유력 대권주자인 이 지사 측은 경쟁 주자들의 이 같은 '개헌 카드'를 지지율 반등을 위한 돌파구용으로 보고 개헌론에 선을 긋고 있다.

1987년 체제에서 멈춰버린 헌법 개정은 매번 정권 말기, 대선 국면에서 이야기가 나오지면 집권하면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국회에서 논의하고 국민투표까지 치러야 하는 까다로운 절차 때문이다. 특히 개헌안 단골 분야인 5년 단임제와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등 권력구조 개편은 정치권이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기에 합의점을 도출하기 쉽지 않다.

학계에선 개헌론이 나왔다 사라지는 행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국민이 개헌을 주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 교수는 "(최근 대선주자들의 개헌 주장은) 정치 캠페인 성격이다. 선거에서 국민 표를 얻기 위해 잘 보이려고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된 후에 하겠다는 건 공약(空約)"이라며 "정치인들이 자기들끼리 (개헌 내용을) 말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국민이 추동해서 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임 교수도 "과거 개헌 논의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장 등 유력 정치인이 주도했다. 그런데 다 찻잔 속의 폭풍으로 끝난 이유는 국민이 주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이번 대선 국면에서 후보들이 개헌 공약을 제시하고 국민이 이에 대한 판단과 평가를 한다면 과거보다는 (개헌 실현)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수 있지 않나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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