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쓰레기 무관심한 정치권…'공정성과 환경성' 함께 고려해야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내년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가 예정돼 정치권이 들썩이는 가운데 너도나도 '탄소중립'을 외치지만 애써 외면하는 곳이 있다. 바로 '선거 쓰레기'다. 동네 곳곳에 걸리는 현수막과 거리에 나뒹구는 명함, 공보물 등 어마어마한 선거 쓰레기가 배출될 것으로 관측된다. 환경단체는 선거 공보물의 온라인화, 현수막 최소화로 선거 풍경이 달라져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정치권은 '국민 알 권리' 등을 이유로 제도 개선 노력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지방선거에서 사용된 투표용지는 약 3억 장, 선거벽보 수량은 104만 부, 선거공보 수량은 6억 4000만 부, 현수막은 13만8192장이다. 3억 장은 쌓으면 백두산의 10.9배이고, 한 줄로 이으면 한반도 길이의 49배에 달하는 양이다.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공보와 벽보에 사용된 종이는 약 5000t이다. 30년 된 나무 8만6000그루가 베어졌다. 8만7607곳에 부친 선거 벽보 122만8276매를 한데 모으면 잠실 야구장 면적의 50배에 이른다. 여기에 선거복, 어깨띠, 명함, 비닐장갑 등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은 '일회용' 쓰레기가 발생한다.
선거 쓰레기 중 환경단체가 가장 우려하는 건 현수막 쓰레기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각 후보는 크기 10㎡의 현수막을 선거 유세 기간 선거구 내 읍·면·동 수의 2배 이내로 걸 수 있고, 선거 후 인사 현수막을 1개 걸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어마어마한 양의 현수막은 상당수 재활용되지 못하고 폐기물로 처리된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전국에서 발생한 폐현수막 9220t 중 재활용된 것은 3093t(33.5%)에 그쳤고, 61.3%는 소각됐다. 처리 비용은 27억 원이 소요됐다.
비용보다 환경 오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더 문제다. 현수막은 플라스틱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테르가 주성분이라 매립해도 썩지 않고, 소각 과정에서 이산화탄소와 발암물질이 나온다. 친환경 현수막 제작이나 에코백 등으로 재활용한다는 대안도 있지만, 현실적 문제로 수요가 많지 않다.
선거 공보물은 현행법에 따라 세대별로 하나씩 지급되는데 국회의원 선거 및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12면, 지방의회의원 선거는 8면, 전단형 선거공보는 1매로 만들 수 있다. 대다수 종이는 재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재활용보다 절대 생산량을 줄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해 모바일용 선거 앱을 만들어 선거 공보물을 인터넷으로 받아볼 수 있도록 신청을 받도록 하고, 선거 공보물이나 종이 인쇄물 등을 제작할 때 녹색제품이나 재생종이를 의무적으로 사용토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현 공직선거법상 수량 제한이 없어 무제한으로 제작할 수 있는 예비 후보자들의 현수막 문제도 손봐야 한다고 요구한다.
제도권 정치는 '선거 쓰레기'에 무관심하지만 지난 4·7 재·보궐 선거에서 '제로웨이스트 선거운동'을 벌인 인물이 있다. 미래당 서울 송파구의원 후보로 나섰던 최지선 씨다. 그는 폐페트병으로 만든 원단으로 현수막을 제작해 걸고,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폐현수막으로 만든 어깨띠를 두르고, 사탕수수 종이에 콩기름 잉크로 인쇄한 명함을 유권자들에게 건넸다.
시간 싸움인 선거 유세 과정에선 어울리지 않는 일들이었다. 불편함을 넘어 아예 가로막힌 활동도 있었다. 달력 종이로 선거사무소 간판을 만들다가 선관위로부터 "종이에 쓴 글씨는 불법 인쇄물로 간주될 수 있다"며 제재를 받았고, 종이 사용을 줄이려 예비 공보물을 엽서 한 장으로 작성하려 했지만 '홍보물을 반드시 발송용 봉투에 담아야 한다'는 공직선거관리규칙에 막혔다.
결국 '제로웨이스트 선거운동'을 위해선 정치권이 직접 나서 선거법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관위 관계자는 <더팩트>에 "선거 폐기물과 관련하여 선거 공보, 선거 현수막 등의 인쇄를 대체하는 선거운동 방법 등에 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며, 향후 입법 정책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법을 칼질 할 수 있는 국회의원들은 무관심하다. 오히려 선거 홍보를 위해 현수막을 늘리는 방식을 택했다. 정치권은 지난 2018년 '선거운동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서'라며 선거법을 개정해 현수막 게시 매수를 '읍·면·동마다 1매'에서 '읍·면·동 수의 2배 이내'로 늘렸다.
자원순환사회연대 관계자는 <더팩트>에 "재보선 전인 3월에 현수막 문제를 제기하며 각 정당에 공문을 보내 협조를 구했다. 답변을 보니 '후보들은 조금이라도 유권자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집으로 발송되는 공보물은 좋든 싫든 일단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강한 것 같더라. 전자문서는 로그인 등 절차를 거쳐야 하니까. 또 인터넷을 안 하는 사회적 배려층이 아직 많기 때문에 공보물 발송은 '국민 알 권리'라고 말했다. 또 (공보물을)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줄 수가 없어서 쉽지 않다는 것"이라며 "정치적 이유가 강하기 때문에 여론이 형성되지 않는 한 정치권이 나서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정치권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공정성' 못지않게 '환경성'도 고려할 때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 씨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선거법은 현수막과 공보물 개수 등을 정해 놓았는데 과하게 하지 말라는 의미다. 그런데 정해진 것보다 덜 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는 점이 (제로웨이스트 선거운동에서) 가장 어려웠다. 선거는 사람들에게 알려야 표를 얻을 수 있는 건데 다른 후보들은 현수막을 짱짱하게 붙이고 공보물도 몇 페이지씩 하는데 저만 안 하면 위축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기준은 모든 선거 홍보물이나 인쇄물의 기준이 '공정성'에 맞춰져 있다 보니 너무 튀면 안 되고 너무 크면 안 되게 돼 있다. 이 기준에 '환경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본다. 공보물 같은 경우는 원하지 않는 분들은 온라인으로 보게 하는 선택지를 준다든가, 예비홍보물을 엽서로 제작하는 걸 허용하고, 현수막을 아예 없애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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