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젠더' 바람<하>] "갈등 조장 그만, 지속성 관점에서 다뤄야" 

4·7재보궐 선거 이후 젠더 이슈에 대한 정치권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2018년 3월 7일 세계 여성의 날 기념-성평등한 국회만들기 토론회에 참석한 당시 원내지도부. /국회사진취재단

4·7재·보궐 선거에서 '이대남(20대 남자)'의 특정 정당 지지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서 정치권에 '젠더' 바람이 불고 있다. 한쪽에선 각종 여성 우대 정책으로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호소하는 남성들의 목소리를 정치권이 대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과잉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청년층의 근본적인 불만을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민감한 '젠더' 이슈에 대해 그동안 '모르쇠'로 일관해온 정치권이 논쟁을 시작했다는 점은 반길 만하다. 지역과 이념 갈등에 이어 정치 지형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른 '젠더'. 남녀 성 갈등 문제를 대하는 정치권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폭발하는 에너지를 동력 삼아 성평등 시대로 도약할 방향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성평등 정책 각론에서 이견…"공론화 필요"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하는 일은 없고 세금만 낭비하기로 유명했던 여성가족부의 폐지를 청원한다." (2020년 7월 17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이제 성차별 해소를 위해 사람들의 생떼를 그만 받아주어야 한다."(2021년 5월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젠더 갈등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이를 외면해온 정치권도 더는 손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29일 기준 청와대 국민청원에 '여성가족부 폐지' 관련 청원은 1526건에 달한다. 지난해 7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는 '여성가족부 폐지에 관한 청원'이 나흘 만에 10만 명 동의를 얻기도 했다. 정의기억연대 사건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여성인권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게 이유였다. 반면 4·7재·보궐 선거 이후 각종 젠더 논란이 불거지며 '폐지 반대 여론도 형성되고 있다. 지난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성차별 해소를 위해 사람들의 생떼를 그만 받아줘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청원은 29일 현재 4만2600명 이상 동의를 얻었다.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된 '여가부 폐지론' 외에도 여성할당제, 성인지교육, 성평등 관련 예산 등 정치권이 다뤄야 할 젠더 이슈는 쌓여있다. 정치권은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해야 할까. 오랫동안 여성계에 몸담았던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남성들은 가부장적 부담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또 여성이 많이 일해야 고령화 저출생 사회에서 사회 경제적인 성장과 대안을 찾는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며 "갈등을 부추기면서 편가르기 식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갈등의 원인과 의미들을 진단하면서, 우리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전망과 사회의 지속가능성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젠더 갈등을 두고 남성 역차별 주장이 부각되는 이유는 대표성이 불균형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2021년 4월 6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2021 4.7 재보궐 선거 성평등 정책 요구 기자회견하는 한국여성민우회 회원들. /뉴시스

◆'남성 역차별' 부각은 대표성 불균형 때문?

'우리 사회가 남성에 더 불평등하다'는 주장에 반발하는 이들은 구조적 불평등에 따라 '남성 역차별' 목소리가 더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여가부 폐지글을 올린 청원인은 "여성혐오와 여성정책 축소를 자꾸 정당화하는 건 이것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국방의 의무를 남성들만 지도록 한 것이 여성들인가. 진정한 역차별이란 성별 임금 격차가 사라졌을 때도 데이트 비용을 한쪽 성별이 부담하는 사례들이 나타날 때 쓰일 수 있다"며 "남성들이 느끼는 성차별 또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피해는 어디에서 왔나. 지금 사회는 억울하지 않을 것도 억울한 것으로 인정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권 의원도 여성들의 불만과 요구사항이 정치권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30 여성들은 본인들이 겪는 성폭력이나 성희롱 부분에 대해 굉장한 불안과 분노를 느끼고 그게 삶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전달되지 않는 현실이라 많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여기(정치권)에서는 5060 남성이 거의 모든 걸 판단한다. (여성)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자신들의 정책 결정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현실이니 그럴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여성의원 비율이 역대 가장 높은 21대 국회에서도 여성의원은 전체의 19%(57명)에 불과하다. 헌정사상 첫 여성 부의장이 탄생하고, 17개 상임위원회 중 5개 상임위에서 여성이 위원장을 맡았지만, 여전히 당 정책 결정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중진급 의원은 부족한 실정이다. 21대 국회 4선 여성의원은 김상희 부의장과 김영주 민주당 의원, 심상정 의원 등 3명이며, 3선은 민주당 소속 남인순·서영교·인재근·전혜숙·진선미·한정애 의원,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 등 7명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4월 재보궐 선거를 계기로 정치권에서 '여성할당제'가 화두다. 여성할당제는 각 분야에서 채용, 임명에 일정 비율을 여성에게 할당해 차별을 개선하는 제도다. 지난해 8.29 전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당에서 '최고위원 여성 30% 할당제' 도입 주장이 나왔지만, 지도부 반대로 무산됐다. 최근에는 각종 의혹이 제기된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임명을 강행하며 그 이유로 문재인 정부의 국무위원 30% 이상 여성 할당 목표를 언급하자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공천 시 여성 할당제 폐지'를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 공약으로 내세웠다. 할당제를 없애 당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면 오히려 남녀간 불균형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고 뛰어난 인재들을 발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가산점제 적용이 있을 뿐 할당제는 실체가 없으며, 불투명한 영입이나 자격 미달을 문제 삼지 않고 여성 가산점 자체를 폐지하면 불균형은 더 심화될 것이라고 본다. 또, 국회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16대 국회 때 6%에서 21대 국회 19%로 늘어난 것도 2000년에 최초 도입한 '여성 할당제(기초의회·광역의회·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 50% 여성할당 의무화)'가 없었으면 쉽지 않았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여성 정치인의 확대로 오늘날 젠더 이슈에 대한 목소리가 겨우 생기기 시작했으므로 향후에도 여성 대표성 확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성인지교육에 대한 학교 젠더 논쟁도 소모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정치권도 각론에서 이견이 있다. 지난 18일 청와대분수대 앞에서 페미니즘을 세뇌한 교사비밀조직 의혹에 대한 수사 촉구 기자회견하는 성차별교육폐지시민연대 관계자들. /뉴시스

◆"성평등 인식 개선 노력"...각론에선 이견

정치권은 젠더 갈등을 줄이기 위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뚜렷한 성인식 차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권 의원은 지난 4월 25일 '성인지교육 지원법안'을 대표발의했다. 같은 당 남인순·진선미·윤미향 의원 등 15명과 정의당 심상정 의원, 열린민주당 최강욱·강민정 의원 등 18명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성인지교육 관련 법이 개별법으로 산재해 있어 현장에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어 이를 통합해 대상에 따라 체계적으로 교육을 실시·지원하는 법적 기반을 마련한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정부 당국에 의무와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장관이 성인지 교육의 목표, 추진방향, 활성화 기반 구축, 전문인력 양성 및 지원, 자료 개발 및 보급 등의 내용을 담은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하고, 매년 교육을 점검토록 한다. 또 이를 위해 성인지교육위원회를 두고, 성인지 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실시 지원 등을 위해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혹은 기준에 충족하는 기관 또는 단체를 성인지교육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반대로 학생들에게 치우친 성인식을 주입하는 교육을 독려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는 여론도 있다. 국회 입법예고시스템에는 이 법안에 대한 의견이 1만7000여 개 올라와 있다. 법안에 반대하는 의견이 다수이며, 주로 "동성애를 더욱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는 잘못된 교육"이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성인식 차이를 개선하려면) 교육도 있어야 하고 문화적으로 체험도 필요하고 공론화장에서 많이 토론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알아야 고민하고 배울 수 있다"며 "지금 문제가 되는 건 제대로 된 성평등 교육을 하고 있느냐의 부분인데 누구나 다 합의돼 받아들일 수 있는 성평등 교육이 아니라 천차만별이고 오히려 교육으로 인해 불편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있어 (교육 내용에 대해선) 세심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성인지교육법안에 대한 일각의 비판에 대해 권 의원은 "국가가 제도 속에서 내용을 정하고 시민의 인권과 사회적 평등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향을 정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게 교육시스템의 기본적인 역할"이라며 "(성인지교육 법안에 대해) 비판은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인 인권과 평등과 몸에 대한 건강한 판단을 교육 내용 속에 담으려고 하는 것이다. (인식 교육을) 발전시켜나가는 걸 주입식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정치권에 진출한 여성계가 불신을 자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남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성평등 정책과 예산 지원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2020년 6월 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는 남 의원. /이선화 기자

◆변명은 그만...성평등 정책 및 예산 개선해야

젠더 갈등이 증폭된 배경에는 성평등 개선을 위해 앞장서야 할 여가부가 기계적인 여성쟁책만 내놓는 폐쇄성이 문제로 지적된다. 이와 함께 정치권이 위압에 의한 성폭력 논란에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오히려 2차 가해에 가담하면서 대변자로서의 위상을 훼손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례로 남인순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7월 고 박원순 전 시장 사망 18일 만에 성추행 의혹에 대해 입을 열고 사과했다.

여가부에 대한 남녀 불신도 상당히 높다. 특히 지난해 12월 22일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실이 진행한 여론조사(전국 성인남녀 998명 대상)에 따르면 '여가부가 매우 잘못 운영되고 있다'는 의견에 남성(71.4%)보다 여성(74.3%)들이 더 많이 응답했다. 사회 전반에서 젠더 이슈가 폭발했지만, 여가부가 따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역행하는 움직임을 보여줬다는 여론이 강한 것이다. 여가부는 지난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 때도 4일 만에야 첫 입장문을 발표했고, 피해자를 '고소인'으로 지칭하는 등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점에서 불신을 자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즉, 남녀 모두가 공감하고 바라는 성평등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여성계의 폐쇄성 해소, 성평등 정책 및 예산 검토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관련 예산을 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영하자는 움직임은 시작됐다. 양경숙 민주당 의원은 지난 27일 성인지예산제도 개선을 논의하는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성인지예산제도는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미리 분석해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예산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2010년부터 시행됐다. 2021년 성인지 예산사업 규모는 약 34조3000억 원이며 관련사업은 304개에 달한다.

토론회에서 이택면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주류화지식혁신본부장은 "성인지예산제도의 실효성은 그것이 얼마나 국가 재정관리제도와 잘 연동되고 통합되어 시행되느냐에 달려있는데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부수적 절차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성인지 예·결산서에 수록되는 성과정보가 부실해 성인지예산제도에 대한 심층적인 효과분석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인지제도가 재정사업 성과관리제도에 연동해 정부의 성평등 증진 목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업 수행 및 평가 등 통제 기능을 가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래야 성평등 수준을 높이는 제도적 기반이 되는 관련 예산이 효율적으로 쓰이고 성과도 많이 도출하며, 차기 예산에서도 성과를 도출하는 사업 중심으로 편성하는 환류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차인순 수석전문위원도 현재 성평등 수요에 대응하는 예산의 편성과 심의, 평가 등이 취약하고, 여전히 일반행정 중심의 운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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