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부동산, 북한 문제 등이 평가 좌우할 듯
[더팩트ㅣ청와대=허주열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를 1년가량 남겨두고 '성공한 리더'와 '레임덕'의 기로에 선 모양새다. 4·7 재·보궐선거 참패로 악화된 민심을 확인한 후 기존 정책은 유지하고, 인적 쇄신으로 임기말 국정동력 확보 승부수를 던졌다.
정책 기조 변화 없이 일부 인사 교체로 코로나19 백신 수급, 부동산 정책 등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잠재울지는 미지수다. 또한 문 대통령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 및 남북관계 개선은 남은 기간 진전된 성과를 보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특히 백신 안전성 및 수급 불안은 당·청의 '11월 집단면역 형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반복되는 메시지에도 가시지 않고 있다.
22일 0시 기준 코로나19 확진자는 735명이다. 최근 일주일로 범위를 넓혀서 보면 일평균 확진자는 650명으로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 백신 1차 접종자는 총 190만3767명(2차 접종자 6만622명)에 불과하다.
지난해 국내 총인구(5178만 명) 대비 1차 접종률은 '3.68%' 수준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만든 '아워 월드 인 데이터'(20일 기준)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코로나 1차 접종률 상위 국가는 이스라엘(61.96%), 영국(48.66%), 미국(39.85%), 헝가리(34.82%), 독일(20.63%), 프랑스(18.73%) 등이다.
이들은 정부의 백신 접종 속도전에 힘입어 일상으로의 복귀가 가시화되고 있다. 한국의 접종률은 OECD 37개 회원국 중 36위로 우리 뒤에는 일본(1.73%)뿐이다. 백신 접종이 늦어지면 그만큼 일상으로의 복귀와 경제 회복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일본 등 백신 접종이 느린 국가들을 향해 "상대적으로 낮은 감염률과 사망률로 사치스러운 시간적 여유를 부렸고, 지금은 해외 개발, 제조 백신에 의존하고 있다"며 "백신 접종 지연이 한국의 성공적인 방역 의미를 퇴색시키고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코로나와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선 백신 접종을 통한 집단면역 형성이 필수인데, 방역이라는 전투에선 앞서나가다가 전쟁 종식은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경제 성장률 전망도 백신 접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요 경제 기관들은 백신 접종률이 높은 국가는 올 하반기부터 경기 회복이 아닌 확장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일례로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6.4%로 올 초보다 1.3%포인트 올려잡았고, 영국의 성장률도 4.5%에서 5.3%로 0.8%P 상향 조정했다. 한국의 성장률도 3.1%에서 3.6%로 올리긴 했지만, 그간 성장이 더디었던 선진국보다는 상향 수치가 낮았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16일 1분기 '경제동향과 전망' 보고서에서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19 재확산에 대한 원활한 대처 여부 및 백신 보급 속도가 올해 경제성장 경로에서 가장 중요한 리스크 요인"이라며 "현재의 코로나19 재확산 추세가 상반기 내에 안정화되고, 적극적인 백신 보급 노력으로 올해 안에 집단면역이 형성된다면 현재의 양호한 성장 흐름을 지속할 수 있지만, 상황이 악화되어 확진세가 증폭하고 백신 보급마저 지연된다면 성장률은 다시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가운데 모더나와 화이자 등 안전성과 효과성이 뛰어난 백신을 제조하는 국가들의 '백신 민족주의'가 득세하면서 우리나라의 백신 수급은 불안정한 상황이다. 당장 당초 5월 도입 예정이었던 모더나 백신은 하반기로 도입이 늦춰졌다.
당·청은 11월 집단면역 형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면서도, 구체적인 백신 공급 일정은 밝히지 않고 있다.
공급 우려 속 우리가 확보한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우리나가 확보한 백신 중 아스트라제네카(AZ), 얀센 백신은 혈전 등 부작용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백신 수급 및 안전성 우려를 종식시키지 위해선 문 대통령이 5월 말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대규모 화이자·모더나 백신 스와프를 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주호영 국민의힘 당 대표 권한대행은 지난 21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끝이 안 보이는 코로나 정국의 게임 체인저, 탈출구는 양질의 백신일 수밖에 없다"라며 "우리 국민은 애타게 양질의 백신이 언제 공급될지 기다리고 있는데, 대통령과 정부가 우왕좌왕 오락가락 발언으로 국민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 미국으로부터 당장 쓰지 않는 양질의 백신을 조기에 많이 확보해줄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국민이 만족할 만한 백신 스와프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문 대통령 지지율은 반등 혹은 추가 하락 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문제도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 지지율 향방을 가늠할 이슈로 꼽힌다. 청와대는 재보선 참패에도 일단 기존 정책을 유지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여당에서 규제 강화 대신 규제 완화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
현재 여당에선 1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부과 기준 완화(9억 →12억), 보유세 면제 확대, 무주택 실소유자 대출 규제 완화 등 기존과 다른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당 내 반론이 만만치 않아 통일된 대책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재보선 이후인 지난 9~1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최근 2~3년 부동산값 급등 요인으로 국민들은 '정부 정책 불신'(47.5%), '투기심리'(28.8%), '저금리'(9.1%), '주택 공급 부족'(8.7%)을 꼽았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KSOI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정부 정책을 불신하는 여론을 되돌리기 위해 당·정·청이 어떤 대책을 내놓는지에 따라서 민심의 향방이 바뀔 수도 있다.
북한 문제는 문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야심 차게 추진했으나, 결국 제자리로 돌아간 현 정부의 아픈 손가락이다. 다만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최근 NYT와의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미중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미중이 북한 및 기후변화 등의 세계적 관심 현안에 대해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NYT는 "문 대통령은 자신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뿐만 아니라 자신의 최대 외교적 유산도 구하고자 급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서도 "새로운 미국 지도자가 북한과 관련해 이룰 수 있는 진전에 대해 문 대통령은 기대하고 있지만, 미국과 북한 정부 사이의 깊은 불신을 감안하면 큰 돌파구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일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야권에선 문 대통령이 지금 시점에서 집중해야 할 현안은 북한이 아니라 코로나 백신과 경제 회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평가를 좌우할 눈앞에 놓인 현안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sense83@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