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와 기후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다. 우리나라는 세계 11위 수준의 대표적인 온실가스 다배출국가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미세먼지 저감과 온실가스 감출을 통한 대기 질 개선을 위해 친환경차 보급을 장려하고 있다. 국내외 완성차 업체들도 충전시간 단축과 이동 거리를 늘리는 등 해마다 발전된 친환경차를 양산하고 있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국회는 법안 마련에도 나선 상황이다. 친환경차의 보급률이 빨라지는 현재 21대 국회의원들은 탄소중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더팩트>는 국회의원 300명의 자동차 종류와 대기오염 개선을 위한 정치권의 노력 등을 짚어봤다. <편집자 주>
국회 내 車 공회전 단속 無…"불필요한 의전 관성화"
[더팩트ㅣ국회=신진환 기자] 21대 국회의원 수행차량의 친환경차 비율이 낮을 뿐 아니라 내연기관차의 공회전도 대기오염물질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 국회 안에서 내연기관 차들의 공회전은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대기 질 개선에 국민이 동참하는 가운데 의원들의 '발'이 되는 차들이 각종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공회전으로 에너지와 세금 낭비는 물론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더팩트>는 국회 본회의가 열렸던 지난달 24일 국회 본청을 찾았다. 국회의원 수행차량 수십여 대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언뜻 봐도 검은색의 중대형 세단과 밴 위주였다. 본회의에서 법안 처리에 나선 의원들을 기다리는 차였다. 진을 친 차들 가운데 일부는 시동이 켜져 있었다.
공회전이다. 공회전이란 자동차를 주차 또는 정차한 상태에서 원동기를 가동하는 것을 말한다. 검은색 카니발은 지켜본 지 10분이 지나도록 멈춘 자리에서 엔진이 돌아가고 있었다. 차 배기구에는 흰 매연이 뿜어져 나왔다. 운전자는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그는 공회전 이유에 대해 "휴대폰을 충전하기 위해서"라고 답한 뒤 시동을 껐다. 공회전에 대한 문제 인식이 엿보였다.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날씨가 춥거나 덥거나 하면 어쩔 수 없이 시동을 켜 둔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서울 낮 기온은 17℃로 포근했다.
이날 3시간이 넘도록 이어진 본회의가 끝날 무렵 본청 앞 도로에는 차가 더 늘어났다. 이와 비례해 공회전 차량도 증가했다. 언제라도 의원이 본청을 나오면 재빨리 차에 태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의원들이 본청을 빨리 나온 만큼 차들의 기다림도 덜 했다. 한 카니발은 10분이 넘도록 대기했다.
본청 옆 의원회관 앞 도로에서도 공회전 차량을 볼 수 있었다.
이 차는 20분 넘도록 같은 자리에서 배기가스를 배출했다. 특유의 경유차 엔진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이 수행비서는 "애초 예상보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며 "휴대전화를 충전하느라 시동을 켜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원님 일정이 끝날 때쯤 차를 대기하라고 메시지를 보내지만, 늦어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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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국회 내에서 의원들 차량이 공회전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주로 의원들을 기다리는 차들이다. 봄철 미세먼지가 극심한 가운데 대기 질 악화 원인으로 꼽히는 자동차 배출가스 저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보였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시행 등으로 국민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과 대조된다.
대기환경보전법 제59조 1항은 '시·도지사는 자동차의 배출 가스로 인한 대기오염 및 연료 손실을 줄이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그 시·도의 조례가 정하는 바에 따라 터미널, 차고지, 주차장 등의 장소에서 자동차의 원동기를 가동한 상태로 주차하거나 정차하는 행위를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상 중앙정부가 지자체에 공회전 단속을 맡긴 것이다.
서울시는 불필요한 자동차 공회전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기오염물질을 줄이고 에너지 절감을 통한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 '서울시 자동차공회전 제한에 관한 조례'를 2003년 7월 제정했다. 모든 자동차가 공회전 제한 대상차량이다. 단, 이륜자동차, 긴급자동차, 냉동·냉장차, 정비 중인 자동차 등은 제한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런데 미세먼지 저감조치 일환인 자동차 공회전 단속은 국회에 미치지 않는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국회는 공공기관이라도 관리자와 소유자가 따로 있어 행정기관의 영향이 못 미친다"라며 "일반 빌딩 지하주차장 등에서 민원이 들어와도 관리자 측에 민원 통보를 할 뿐 직접 단속하지는 못한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도(公道)에서는 공회전 차량 단속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회 측은 단속 권한이 없다고 확인했다. 국회사무처 한 관계자는 "법상 국회에 단속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직접 과태료를 부과할 수도 없다"면서 "다만 경내 공회전 차량이 보이면 주차단속요원이나 방호담당 측에서 과도하게 공회전하는 차량을 주차장으로 유도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과 같이 미세먼지가 심한 봄철에는 서울 등 일부 지자체에서 자동차 배출가스 저감을 위해 자동차 공회전 단속을 벌이고 있는데, 국회는 예외인 셈이다. 사실상 국회 안은 무법지대라고 봐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가 있는 서울의 경우 공회전 제한장소는 모든 지역이 해당한다. 시 조례 제3조는 '공회전을 제한하는 장소는 시 관할구역 전역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공회전 단속 기준은 기온에 따라 허용 시간이 다르다. 0도 이하 및 30도 초과 시에는 공회전이 허용된다. 0~5도에서는 5분, 5~25도에서는 2분, 25~30도에서는 5분간 허용된다. 이에 따르면 이날은 정차 허용 기준은 2분인데, 이를 위반한 차들이 여러 대 있었다. 과도한 공회전을 하다 적발되면 과태료 5만 원이 부과된다.
공회전은 예산을 낭비하는 측면이 있다. 엔진이 계속 가동하기 위해서는 연료가 쓰이기 때문이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국회의원 1명당 매월 110만 원의 차량유류비가 지급된다. 국회의원은 300명으로, 1년에 39억6000만 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임기 4년을 고려하면 총 158억4000만 원의 혈세가 지원되는 셈이다.
자동차 공회전을 줄이면 매연도 줄고 에너지도 절감된다. 환경부에 따르면 승용차(연비 12㎞/ℓ 기준)로 하루 10분 동안 공회전을 하면 약 1.6㎞를 주행할 수 있는 138㏄의 연료가 소모된다. 하루 10분 공회전 시 평균 승용차 기준 연간 50리터의 연료가 쓰인다. 또, 공회전 시 자동차 배출가스 온도 저하(550도 이상→약 200~300도)로 정상 운전할 때보다 90% 이상 배출가스 정화효율이 떨어진다고 한다.
정치권의 관행과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영경 에너지정의행동 사무국장은 "국회의 기후위기 비상선언과 정부가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시점에 의원들 스스로 친환경자동차를 이용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라면서 "불필요한 의전이 관성화돼 있다. 가까운 거리나 시내 등을 이동할 때 당연하게 차를 이용하는 모습들도 조금씩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국장은 올해부터 공공부문은 신규 구매 차량을 80% 이상 무공해차로 사기로 한 점을 언급한 뒤 "국회는 차량 구매와 활용이 의원 개인의 판단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차량 임차를) 의원 자율에 맡기다 보니 법적 제재나 의무 규정에 포함되지 않는 제도적 한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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