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7일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석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이 후끈 달아올랐다. '임기 1년' 짜리지만 대선 전초전이라 불리는 만큼 여야가 사활을 걸고 있다. 여당은 이번 선거로 두 전직 시장의 오명을 떨쳐내고 재집권을 위한 승기를 잡겠다고 다짐하고 있고, 야당은 현 집권 세력의 독주에 제동을 걸겠다며 벼르고 있다. '정권 심판론'이 외면당했던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 때와는 다른 분위기도 감지된다. 새해를 맞아 불붙은 선거 정국을 인물, 구도, 이슈를 통해 들여다보고 판세를 흔들 변수들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윤석열 사태로 달라진 정국…'야권 단일화'가 최대 관전 포인트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오는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경선 후보군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출마 시기를 저울질하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범야권에선 후보 다수가 일찌감치 출마를 공식화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발 '야권 단일화' 논의도 활발하다.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 복귀 이후 야권에 정국이 유리하게 전환된 흐름도 감지된다. '부동산'과 '윤석열 사태'는 보선을 관통하는 주요 이슈로 작용할 전망이다.
◆'안철수' 등판했는데 민주당은 막판까지 장고
서울시장에 출마하는 범여권 후보는 4선의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재선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 신지혜 기본소득당 상임대표 등이다. 여당에선 가장 먼저 치고 나온 우 의원 외에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박주민 의원이 출마를 막판 고심 중이다. 박 장관 측근에 따르면 당 지지율이 흔들리는 어려운 상황에 최근 출마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박 장관은 이번 보선의 배경을 고려했을 때 '여성 후보'라는 강점이 있고 당내 지지기반이 확고하며 친문 지지층에게도 우호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박주민 의원도 야권 후보인 조은희 구청장과 재산세 환급을 두고 설전을 벌이며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조만간 여당의 서울시장 최종 후보군과 경선 방식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달 중순 재보선 기획단을 통해 경선 규칙과 일정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범야권에선 현재까지 8명이 출마를 공식화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선동·이종구·이혜훈 전 의원을 비롯해 조은희 서초구청장, 박춘희 전 송파구청장, 김근식 송파병 당협위원장이 선거에 뛰어들었다. 바깥쪽으로 눈을 돌리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무소속 금태섭 전 의원이 출마를 선언한 상황이다. 야권 후보는 현재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홍정욱 전 의원은 최근 블로그에 글을 올려 "내 개성과 역량이 시대정신과 경영 환경에 부합하면 직접 나설 것"이라며 서울시장 출마설에 다시 불을 지폈다. 나경원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거물급도 출마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신환 전 의원과 '5분 연설'로 화제를 모은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도 잠재적 후보군이다.
부산 보선은 보수진영에서 '빼앗긴 곳을 되찾아오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국민의힘 소속으로 예비후보에 이름을 올린 후보가 8명일 정도로 내부 경쟁이 과열 조짐이다. 다만 박형준·이언주 등 선두권에 있는 이들에게 관심이 쏠려있다. 잠정 확정된 국민의힘 서울·부산 시장 보선 경선 룰에 따르면 '100% 시민여론조사'로 예비경선을 실시해 후보를 4명으로 압축하기 때문이다.
선두권 가운데 박형준 전 의원이 가장 앞서 있다. 여러 TV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고 '합리적 보수'라는 위치가 그의 강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전 의원은 당내 유일한 여성후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출마선언 현장에서 "성추행으로 생긴 보선이 신공항 프레임으로 바뀌어 수세에 몰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여성 문제가 깨끗한 사람이 (시장이) 돼야 한다"며 20% 여성 가산점을 거듭 요구하기도 했다.
여당은 "해볼 만하다"면서도 아직 자숙하는 분위기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실시 이후 23년 만에 처음으로 밀어준 여당 소속 부산시장의 이탈로 시민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산을 지역구로 둔 한 여당 의원은 <더팩트>에 "1월 7일 재보선기획단 회의를 하면 경선시기와 룰이 확정될 것"이라며 "아직까진 분위기가 뜨지 않고 있는데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연초가 좀 지나면 분위기가 뜰 것이다. 부산시당에선 전략기획실을 계속 가동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야권과 달리 민주당은 김영춘 전 국회사무총장의 독주다. 최근 사무총장직을 사퇴하면서 출마 채비를 갖췄다. 김 전 사무총장은 지역주의 타파를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김 전 사무총장은 서울 광진갑에서 재선한 뒤 부산에 내려와 한 번의 실패 끝에 3선에 성공한 극복 스토리가 있다. 이 외에도 첫 여성 부산시의회 의장으로 주목받은 박인영 전 시의장과 변성완 시장 권한대행 등도 몸을 풀고 있다. 출마가 예측됐던 김해영 전 최고위원은 최근 '경선 불출마'로 가닥을 잡았다.
◆최대 관전 포인트는 '야권 단일화'...선거판 구도 흔들린다
야권 단일화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눈여겨봐야 할 최대 관전 포인트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안철수 국민의당과 연대하느냐 마느냐가 변수가 되고 있다. 선거 구도 자체가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에서도 안 대표를 누를 만한 강력한 카드가 필요하다는 흐름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외연 확장'이라는 야권의 단일화 방정식이 성공해 차기 대선으로까지 이어진다면 여권에 위협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야권 단일화로 여권의 대선주자 판세도 급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강상호 정치평론가(국민대 교수)는 "이번 보선을 앞두고 보수 내에서의 분열 양상이 과연 어떻게 될 것이냐가 이번 선거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면서 "4·15총선 이후 소위 광화문 세력으로 대변되는 아스팔트 위 우파와 김종인으로 대변되는 제도권 내 우파가 상당한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야권 주자에 대항해 서울시장 후보로 여권에서 어떤 인물이 나올지도 눈여겨볼 지점이라고 짚었다. 강 평론가는 "만약 서울시장 선거에서 꼭 이겨야 하는데 구도가 불리해 확실한 카드를 써야 한다면 정세균 국무총리의 출마를 밀어붙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에 맞설 야당 후보는 마땅치 않다"고 했다. 그는 "선거 결과가 여당의 차기 대선후보 결정에도 상당히 영향을 줄 것 같다"며 "만약 정세균 카드 말고 다른 인물로 서울시장에서 승리한다면 여권은 '인물 구도가 아니라 세력 구도에서도 진보 지지층이 많구나'라고 생각하고 대선에서 친문 쪽에 가까운 제3의 인물로 교체할 가능성이 있다. 이낙연 대표로선 선거에서 이겨도 져도 분발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안철수발 야권 후보 단일화 바람이 불면서 여당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우상호 의원은 최근 "열린민주당과 당 대 당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며 진영 통합론을 주장했다. 민주당 내부에선 대선주자급인 안 대표가 보선에 뛰어들지 않는 쪽으로 예측하는 분위기였다. 예상치 못했던 만큼 그의 출사표가 위협적으로 다가온 셈이다. 이와 함께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당 지지율이 동반으로 하락하면서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다만 야권에서 단일화 방식에 대한 각종 이견이 터져 나오면서 이를 어떻게 풀어갈지가 관건이다. 국민의힘은 범야권 후보들이 입당한 후 당내에서 경선을 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안 대표와 금 전 의원은 험지나 다름없는 곳에 정치적 타격을 입으면서까지 입당할 이유는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에 야권 일각에선 '비상시국연대'라는 제3지대에서 공정한 방식으로 단일화 경선을 치르자는 주장도 나온다. 비상시국연대는 '반문(反문재인)'을 내세워 범보수정당·시민사회단체 통합을 목표로 한다. 당 안팎 후보가 동일한 기준으로 한꺼번에 경선을 치르는 '원샷 경선' 제안도 나오고 있다.
현재 여론조사 판세대로라면 가장 유력한 대진표는 '박영선'과 '안철수' 구도다. 두 인사가 과거 동지가 될 뻔했던 인연도 눈길을 끈다. 박 장관은 지난 2016년 안철수신당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민주당 잔류를 택했다. 박 장관은 당시 안 대표를 향해 "변화를 위해 자갈밭 길을 선택했다"며 "변화를 향한 간절함이 꼭 성공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서로 승리하는 길을 찾아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갔으면 한다"는 애틋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보선 구도와 관련해 "새 인물이 없다. 과거의 격돌이고 기득권 대 기득권의 싸움"이라며 "현재 정치 구도는 미래를 놓고 싸우는 경쟁이 아니고 과거를 평가하는 선거이기 때문에 기득권 대 기득권의 충돌, 체급 대 체급의 충돌"이라고 했다. 이어 "대선 전초전이기 때문에 포지티브 방식보다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상대 약점을 더 드러내서 반사이익을 얻는 구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서울은 '부동산 정책'·부산은 '신공항' 이슈...윤석열 사태 여진 이어질 듯
서울시장 보선에서 주목할 이슈는 단연 '부동산'이다. 정부여당의 부동산 안정화 대책에도 수도권 집값과 전셋값이 치솟으면서 '정권 심판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에 민주당은 일찍 민심 다잡기에 돌입했다. 최근에는 '투기성 다주택자'는 후보로 내지 않겠다는 후보 검증 기준을 신설했다. 이에 따라 후보자는 후보검증 신청 시 부동산소유현황, 부동산보유현황 증명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오는 2월에는 이낙연 대표가 주도해 출범한 당 미래주거추진단에서 주거 안정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주택 공급 대책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추진단은 토지임대부 '반값 아파트', 협동조합 리츠(부동산투자펀드) 등 저렴하게 입주할 수 있는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후보 개인들도 주택 공급을 통한 '집값 안정'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여당에서 가장 먼저 출마선언한 우 의원은 서울 '공공주택 16만 호' 공급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운 상황이다. 공공부지를 확보해 공공주택을 짓는다는 것이다. 그는 출마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시장이 안정된 도시들은 공공주택 비중이 25%에서 40%에 달하는 데 비해 서울은 10%에도 못 미친다"며 "정부 발표와 별도로 서울 시내에 16만 호 정도의 공공주택을 다양한 방식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은 '도시전문가 출신'임을 앞세워 '역세권 미드타운'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는 "기존 역세권과 새로운 역세권의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해 직주근접, 직주혼용, 직주밀착이 가능한 미드타운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야권 후보들은 재개발·재건축 중심의 공급 방안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부동산시장을 정상화해 주거의 꿈을 되살리고, 세금 폭탄은 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부동산 정책이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하다며 "재개발, 재건축, 용적률 완화, 층수 문제를 포함해 전반적으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은 출마선언문에서 공공과 민간 주택 공급을 모두 확충하겠다고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땅값 없이 건축비만으로 지을 수 있는 만큼 생애 첫 주택을 구입하는 젊은 층들이 감내할 수 있는 가격으로 내 집 마련의 길을 열어 드리겠다"고 강조했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5년간 주택 65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부산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다. 특히 가덕도신공항 문제가 지역 정가의 최대 관심사다. 민주당이 지난해 11월 총리실 산하 검증위원회에서 김해신공항 사업을 백지화 결정하자마자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만들자고 주장했고, 국민의힘 부산 지역 의원들도 민주당보다 앞서 관련 특별법을 발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당은 집권당으로서 경제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민주당 부산시당 위원장인 박재호 의원은 <더팩트>에 "우리는 일자리와 경제 문제 등 부산의 미래에 대해 정확한 로드맵을 제시해 던져보려 한다"며 "변화를 싫어하는 세력과 변화를 원하는 세력의 차이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가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 총장 정직 2개월 처분 결정이 뒤집힌 이른바 '윤석열 사태' 여진은 보선 기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국민의힘 등 야권에선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현상) 이야기까지 꺼내고 있다. 문 대통령이 최근 청와대 비서실장을 포함한 참모진 개편과 2차 개각을 앞당겨 단행하고 민주당이 '검찰 개혁'으로 화제 전환을 시도하는 것도 이번 사태가 보선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분석이다. 지지율 반등을 위한 돌파구가 마땅치 않다면 이번 선거는 여당에 혹독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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