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열의 정진기(政診器)] '코로나19 백신 정치' 키운 당·정·청 엇박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2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5부 요인 초청 간담회에서 코로나19 백신 확보 지연 논란에 대해 백신 때문에 걱정들이 많은데, 백신을 생산한 나라들이 많은 재정과 행정지원을 해서 백신을 개발했기 때문에 그쪽 나라에서 먼저 접종되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일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아쉬운 과거 뒤로하고 '3차 유행 차단', '백신 접종' 준비에 힘 합쳐야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코로나19 백신 확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 '백신 정치' 논란이 일고 있다. 야당과 일부 언론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백신 접종이 시작됐는데, 우리나라는 언제 백신주사를 맞을지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반면 여당은 야당이 국민 혼란과 공포를 부추기는 백신 정쟁화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논란이 확산된 것은 세계에서 가장 공신력을 인정받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한 면역 효과 95% 내외인 화이자·모더나 백신을 영국을 시작으로 미국·캐나다·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싱가포르·카타르 등 세계 30여 개국이 접종을 시작했는데, 우리나라는 해당 백신 계약 소식 발표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24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전날 얀센과 총 600만 명분을 계약해 내년 2분기부터 접종을 시작할 예정이고, 화이자 백신은 1000만 명분을 계약해 내년 3분기부터 국내에 들어온다"며 "도입 시기를 2분기 이내로 앞당기기 위해 국가 차원의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고, 구체적인 협상이 별도로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8일 계약을 체결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000만 명분까지 더하면 2600만 명분을 확보한 것이다. 정부는 향후 모더나와 내년 1월 중 계약을 통해 1000만 명분, 백신 공동구매·배분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1000만 명분을 추가로 들어올 예정이다. 총 4600만 명분의 백신을 계약했거나, 계약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백신 구매 관련 첫 발표가 나온 지난 8일부터 추가 계약 소식이 전해진 24일까지 16일간 거세진 백신 지연 확보 논란은 당·정·청의 미묘한 엇박자가 키운 측면이 있다. 문 대통령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계약 발표 다음 날(9일) "드디어 백신과 치료제로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했다. 이후 다른 나라에서 속속 화이자·모더나 백신 접종을 시작하는 사이 국내에선 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 안팎을 오르내릴 정도로 급증했다.

여론이 나빠지자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2일 백신과 치료제와 관련된 대통령의 12건의 지시를 이례적으로 공개하면서 대통령은 "과할 정도로 백신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대통령은 지시를 계속했는데, 담당자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화이자·모더나 백신 지연 도입에 대한 문 대통령 책임론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이지만, 청와대 스스로가 대통령의 리더십이 통하지 않고 있다고 자인한 셈이다.

또한 이날 문 대통령은 5부 요인을 청와대로 초청해 개최한 간담회에서 "백신 때문에 걱정들이 많은데, 백신을 생산한 나라들이 많은 재정과 행정지원을 해서 백신을 개발했기 때문에 그쪽 나라에서 먼저 접종되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일"이라며 "우리도 특별히 늦지 않게 국민들께 접종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고, 준비를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신 비생산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칠레·캐나다 등은 이미 백신 접종을 시작했고, 독일·프랑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스페인·불가리아 등도 연내 백신 접종을 시작하는데 현실과 동떨어진 말을 한 셈이다.

또한 이 기간 정부 관계자는 "최근 우리 사회 분위기가 백신을 세계 최초로 맞아야 하는 것처럼 1등 경쟁을 하는 듯한 그런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방역당국으로서 상당한 우려를 표한다"며 "하루에 20만 명 정도의 환자가 발생하는 미국과 3만5000명 정도의 환자가 발생하는 영국을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기에는 다소 부적절하다고 생각이 들고, 안전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고려할 때 세계에서 1, 2등으로 백신을 맞는 그런 국가가 될 이유는 없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백신의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강조하던 정부는 백신 늑장 도입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FDA 승인을 받지 않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조기 도입을 위해 "FDA 승인 여부와 상관없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심사하겠다"며 안전성과 속도전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야당과 일부 언론이 근거 없는 (코로나19) 괴담과 왜곡된 통계까지 동원하며 국민의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며 그것은 1년 가까이 사투를 계속하는 방역당국과 의료진을 허탈하게 하고 생명의 위험까지 무릅쓰고 치료제 개발에 매달려온 연구자들의 사기를 꺾고, 코로나 극복에 혼란을 초래하고 결국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사진취재단

이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코로나 백신 계약은 실패한 게 아니다"라며 "야당은 코로나 백신 정치를 중단하고 코로나 극복을 위해 정부가 최선을 다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고 야당 탓을 했다. 정부와 보조를 맞춰 안전성을 강조하더니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최대한 당겨서 설 전인 1월 내에 접종할 수 있도록 정부가 다각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속도전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동시에 나왔다.

이에 24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선 "다른 나라에서 접종을 시작한 좋은 백신을 제대로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 추궁을 정부에 하니 스스로 한 말을 뒤집고 있다"며 "FDA가 승인하지 않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긴급 승인해서 쓰겠다고 했다가, 또 세계에서 최초로 접종할 필요가 없다고 말을 바꾼다. 안전성과 속도전 사이에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면서 언론과 야당에 책임을 돌린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다행히 화이자·얀센 백신 계약 소식이 24일 전해지면서 백신 정치 논란은 일단락됐다. 코로나19 대응, 백신 확보 논란 등에 대한 시비를 가리는 일은 백신 접종이 시작된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아쉬운 과거는 뒤로하고 정치권도 이제는 코로나19 3차 유행 확산세를 꺾는 일과 백신 접종 준비에 힘을 합쳐야 한다. 특히 백신 확보에 열을 올리는 선진국 사례를 보면 우리도 지금보다 더 많은 백신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만큼 정치권은 추가 예산 지원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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