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정의당, '다수의 힘' 과시하는 여당의 '동네북' 전락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21대 국회 첫 정기국회 종료를 앞두고 압도적 의석(174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의 힘'을 과시하며 원하는 법안들을 대거 강행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야당의 반발, 요청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민주당 뜻대로 민주당 입맛에 맞는 법안들만 통과됐고, 일부는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
야당 비토권을 무력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등을 위한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기한을 1년 6개월 연장한 '사회적참사법',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 등 100여 건의 법안이 정기국회 마지막 날(9일)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또한 곧바로 열린 12월 임시국회에서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신청으로 토론이 진행 중인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처리가 가능하다.
공수처법 개정을 격렬하게 반대했던 국민의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원했던 정의당은 철저히 배제됐다. 심지어 다수의 힘을 과시하는 여당에 조롱까지 당했다.
"평생 독재의 꿀을 빨더니, 이제 와 상대 정당을 독재로 몰아가는 이런 행태야 말로 정말 독선적인 행태다."
민주당 소속 윤호중 법사위원장은 지난 8일 공수처법 개정안 법사위 의결을 앞두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법안의 일방 처리에 반발해 '독재로 흥한 자, 독재로 망한다', '민주주의 유린 공수처법 저지', '권력비리 방탄 공수처법 저지' 등의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고 항의하자 이같이 말했다.
민주당은 숙원 과제였던 공수처 출범을 서두르기 위한 공수처법 개정안을 처리한 후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다른 두 건의 법안에 대해선 여유로운 모습이다. 홍정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필리버스터를 종결할 방법이 있지만, 그 시기를 조정해 야당의 의사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충분한 토론 기회를 드리기로 했다"며 "법안 처리는 충분한 토론을 하고 나서 처리할 예정"이라고 했다.
공수처법 개정과 관련해선 야당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더니,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혁법안에 대해선 '야당 존중'을 이유로 시간을 더 줄 테니 한 번 떠들 테면 떠들어 봐라, 실컷 떠들고 나면 우리 마음대로 처리하겠다는 태도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필리버스터 일부 내용을 두고 '막말 부스터'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11일 브리핑에서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막말 부스터가 됐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잘생기고 감성적이라 지지했던 여성들이 요즘 고개를 돌린다'는 발언과 '아녀자'라는 표현이 어떻게 신성한 본회의장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입을 통해 나올 수 있는지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즉각 사과함이 마땅하다. 필리버스터의 뜻이 무제한 토론이지, 무제한 막말이 아니지 않는가"라고 비판했다.
지난 20대 국회 말 준연동형비례제 선거법 개정을 고리로 민주당에 협력했다가, '위성정당 창당'이라는 뒤통수를 맞은 정의당은 공수처법 개정안이 처리된 다음 날인 11일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씨 등 산업재해 사망 유가족들과 함께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한 민주당의 직무유기를 규탄하면서 무기한 노숙 단식에 돌입했다.
이 법은 이낙연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여러 차례 처리를 언급했으나, 이번에 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100여 건의 법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대표가 지난 10일 재차 "이른 시기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으나, 정의당은 더 이상 민주당 지도부의 말은 믿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국회에서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민주당은 말이 아닌 행동을 보여야 할 때"라며 "정의당은 절박한 마음으로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 이 법을 올해 안에 제정하기 위해 김용균·이한빛 부모님과 함께 단식농성에 돌입한다"고 했다.
또한 정의당은 지난 8일 조혜민 대변인이 낙태죄 개정 국회 공청회와 관련해 김남국 민주당 의원의 발언을 비판하는 논평을 내놨다가 협박이 섞인 항의 전화를 받는 수모(?)도 겪었다. 정의당에 따르면 김 의원은 이날 저녁 일면식도 없는 조 대변인에게 전화해 왜곡된 브리핑이라 몰아붙이면서 "조치를 하지 않으면 낙태죄 폐지는 물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 정의당이 하는 건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항의하는 논평을 정의당 측이 내자 김 의원은 "피해자의 사과 요구를 '갑질 폭력'으로 매도하다니, 정의당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망가진 지 모르겠다"며 "정의당은 잘못을 반성하고 사과할 줄 모르는 부끄러운 정당인가. 정의당 대변인의 왜곡 논평에 매우 강한 유감을 표하며, 대변인의 책임 있는 사과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재차 정의당을 몰아붙였다.
정의당은 그간 국회 운영의 고비마다 민주당 손을 들어주면서 협조해 왔지만, 정치적으로 얻은 것은 거의 없고 오히려 손해만 봤다. 그 끝에 이런 푸대접까지 당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이 다수의 힘을 마음대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야당의 견제 기능은 사실상 실종됐다. 그렇다고 다수 여당이 야당을 조롱하는 듯한 발언까지 하는 건 의회민주주의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특히 국민의힘과 정의당 의원들은 그들을 지지한 국민의 대표자다.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이 뽑은 대표자라고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다. 민주당은 마치 영구집권을 자신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지만,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은 역사에서 증명된 말이다. 지금 이 권력이 영원하리라 믿고 있다면 하루빨리 그 꿈에서 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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