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산안법 개정' 추진 가닥…정의당 "이낙연 리더십 흔들리나"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론 채택 가능을 시사했던 '중대재해기업처벌 제정법'(중대재해법)을 민주당이 하루 만에 제동을 걸었다. 정의당이 띄우고 국민의힘이 긍정 반응을 보이며 이번 정기국회 통과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지만, 민주당이 '산업안전법 개정안(산안법)'을 우선 처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12일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전날(11일) 이 대표가 "(중대재해법 당론 채택이)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닐 것"이라며 찬성 입장을 피력한 데 대해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당 대표 발언이 나온 지 하루 만에 부인한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9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관련법 제정에 힘을 실은 바 있다. 이를 두고 여당 지도부 내 입법 과제 추진이 혼선 양상이라는 말이 나왔다.
중대재해법은 사망 사고 등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한 기업에 대해 형사처벌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해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고 산업재해를 예방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정의당은 이 법을 21대 국회 첫 당론으로 발의하고 45일째(11월 12일 기준) 국회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후 지난 10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중대재해법에 대해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며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 대표가 당론 채택에 긍정적으로 답변하면서 국회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중대재해법 제정 대신 행정제재를 강화하는 산안법 개정안 추진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산안법에서 제외된 소비자 피해, 징벌적 손해배상은 우원식 민주당 의원이 이날 발의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안으로 보완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책위 관계자는 "이번 정기국회 때는 산안법 개정으로 먼저 할 것 같다. 정책위 입장이 확고하다"라며 "중대재해법은 제정법이라 시간이 오래 걸리고, 박주민 의원 발의안으로 (추진)하기엔 부담이 있다. 중소기업계 반대가 심하다"라고 했다. 이와 관련, 중소기업 단체장들은 이날 이 대표를 만나 중대재해법에 대한 우려 입장을 전달했다.
이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에 대해 지도부가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낸 데 대해선 "이 대표 발언은 꼭 중대재해법으로 하기보다 어떤 식으로든 취지를 살리는 법안이면 된다는 의미에서 말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도 이날 비공개 온라인 의원총회에서 파장이 큰 법안을 발의할 때 사전에 정책위와 충분히 논의하고 조율해달라는 취지로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11일) 박주민·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주에게 2년 이상 징역, 5억 원 이상의 벌금형 등 형사처벌과 손해액의 5배 이상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이와 관련, 김 원내대표가 개별 의원들이 '당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해 일종의 '경고'를 보낸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박 의원이 대표발의한 중대재해법은 경영책임자 책임 명시, 형사처벌 강화 등 큰 틀은 정의당 안과 동일하다. 다만 손해배상 및 처벌 강도와 50인 이하 사업장 법 적용 유예 조항 등은 차이가 있다.
정의당은 민주당의 산안법 개정 추진 움직임에 반발하며 중대재해법을 당론 채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이날 중대재해법 관련 처벌의 하한선, 유예기간 등을 토론하기 위한 3당 대표 회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정호진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이 대표가 (당론 채택이) 어렵지 않다고 말했는데 민주당이 또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걸 보니 이 대표 지도력이 흔들리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며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차적 과제가 어디 있나. 집권당이 기업 눈치보고 좌고우면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각 당이 발의한 중대재해법은 상임위에서 병합심사를 통해 논의될 예정이다. 하지만 제1,2당이 기업 경영인의 형사처벌 사안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어 연내 처리는 어려워보인다.
민주당 로드맵대로 산안법 개정안을 먼저 처리할 경우 '중복 입법'이라는 명분이 생겨 내년 중대재해법 추진 동력 역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내년 4월 보궐선거와 내후년 대선 등 선거 국면에선 부담이 커져 추진이 더 어려워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