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 vs 尹 갈등에 함몰된 정쟁, 차라히 동면(冬眠)하라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가을도 끝을 향하고 있다. 초가을(秋)인가 싶더니 붉어진 낙엽과 앙상해져 가는 나무가 가을의 끝자락으로 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싸늘해진 공기와 바람도 그렇다. 코로나19 시기에 오색낙엽이 그나마 나름의 위로를 준다.
가을은 흔히 초추(初秋), 중추(中秋), 만추(晩秋)로 구분한다. 초추는 음력 7월로 가을의 시작, 중추는 음력 8월로 가을의 중간, 만추는 음력 9월의 늦은 가을이다. 그런데 만추는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이라는 의미에서 잔추(殘秋)라고도 하는데 꼭 지금이 아닐까 싶다.
계절만 만추가 아니라 정치권도 만추다. 추(秋)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을 두고 펼치는 여야의 지루한 정쟁이 그렇다. 가지에서 떨어지기 직전 붉게 물든 낙엽처럼 달아올랐다. 여든 야든 추 장관이든 윤 총장이든 누군가는 나뭇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가 되어야 끝날 싸움을 벌이는 것 같다.
추 장관은 지난 9월 검찰 인사를 시작으로 10월 수사지휘권 발동, 11월 감찰권 행사가 가을이 깊어가는 과정과 똑 닮았다. 특히 이번 특수활동비(특활비) 논란은 단풍이 전국을 뒤덮은 것처럼 청와대로까지 번지고 있다.
특활비 논란의 시작은 더불어민주당과 추 장관이다. 지난 5일 김종민·소병철 민주당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검찰총장의 특활비 문제를 언급했다. 추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특활비를 주머닛돈처럼 쓰고 있다. 루프홀(loophole·제도적 허점)이 있다"고 했다.
9일엔 국회 법사위원들이 법무부와 대검찰청 특활비 검증까지 했다. 결과는 각 당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달랐다. 예상했던 상황이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은 코로나19로 고통받는 국민의 고충마저 덮어버렸다. 지금 정치권에 국민을 위한 정치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검찰개혁을 내걸고 드라이브를 건 추 장관 질주에 내년 4월 재보궐선거를 준비 중인 민주당도 이젠 부담을 느끼는 듯하다. 당내에는 윤 총장도 잘못했지만, 추 장관의 행보가 자칫 부정 여론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심심치 않게 나오기 때문이다.
추 장관이 밀어붙인 검찰개혁이 검찰 장악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에 민주당도 추 장관의 행보를 어디까지 지켜봐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어쩌면 민주당이나 청와대나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시기를 놓친 건 아닌지 다시 점검해볼 때가 됐다.
늦가을인 만추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잔추로 표현된다. 잔추의 잔(殘)은 '나머지'라는 뜻과 함께 '멸하다' '없애다'이다. 추 장관이 빼든 감찰권 행사는 마지막 잎새마저 떨어뜨리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민주당이나 추 장관에게 이번 늦가을은 만추가 아닌 잔추에 가깝다. 물론 선거를 앞둔 민주당으로서는 여론 악화를 의식해 잔추보다는 만추로 비치길 바랄 수도 있다.
나무는 잎을 물들이고 소멸시키며 자양분을 축적해 겨울을 난다. 그리고 봄이 오면 다시 푸른 잎을 만들어낸다. 잔인해 보이지만, 나무의 생존방식이고 자연의 순리다. 잎이 떨어지기를 기다리지 못해 억지로 흔들어 잎을 떨구면 나무는 겨울을 견디지 못해 죽을 수도 있다.
깊어가는 가을, 정치는 없고, 추 장관과 윤 총장 갈등을 자양분 삼아 정쟁에만 몰두하는 여야에 '정쟁의 동면'(冬眠)을 권해본다.
cuba20@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