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의 눈] 민주당 '당헌 개정' 꼼수, 우리 모두가 부끄럽다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후보자를 공천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에 대한 야권의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재발방지 등 정치권의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성추문 논란을 빚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왼쪽)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더팩트 DB

정치인 성추행 '재발방지' 논의 없는 여야 정치권의 민낯

[더팩트|문혜현 기자] "성추행 보궐선거"..."838억 혈세 낭비"

더불어민주당의 서울·부산시장 후보 공천 방침에 정치권이 시끄럽다. 야당 인사들은 돌아가며 '얼굴이 철판'이란 비판을 퍼붓고, 물의를 일으켜 발생한 선거에 후보를 공천하지 않겠다는 민주당 당헌을 언급하며 '약속 파기'를 질타하고 있다.

민주당은 거듭 사죄 입장을 밝히면서도 '집권여당 책임을 위한 정치적 결단'이라며 후보 공천이 불가피했음을 피력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지난 29일 의원총회에서 "당헌에 따르면 두 곳 보궐선거에 저희 당은 후보를 내기 어렵다. 그에 대해 오래 당 안팎의 의견을 폭넓게 들었다"면서 "그 결과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것만이 책임 있는 선택은 아니며 오히려 후보 공천을 통해 시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 있는 공당의 도리라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피해자를 향한 사과를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특히 피해 여성께 마음을 다해 사과를 드린다. 보궐선거 후보를 낼지 당원 여러분께 여쭙게 된 데 대해서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민주당 스스로 부족함을 깊게 성찰해 책임있는 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서울·부산시민은 2년 전 민주당 소속 단체장을 직접 선출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최초로 '3선'이라는 기록을 달성했고,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7전 8기' 끝에 험지인 부산에 민주당 깃발을 꽂은 정치인으로 화제를 모았다. 지역주의를 극복한 오 전 시장의 모습은 감동적인 스토리로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이후 준 충격은 당선 당시의 그것보다 훨씬 컸다. 잘못을 인정하고 도망친 오 전 시장의 잔상이 날아갈 즈음 들려온 박 전 시장의 부고는 사실 믿기 어려웠다. 처음 박 전 시장의 실종 관련 소식이 돌 때만 해도 '설마' 싶었다. 그 충격은 정치권에도, 시민사회에도 깊은 상흔을 남겼다.

때문에 야권의 비판은 대체로 틀리지 않았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30일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아예 '성추행 보궐선거'로 명명합시다"라고 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날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838억 혈세가 자당 출신 단체장의 불법 행위로 일어났는데 전 당원이 결정했으니 당헌을 바꾸겠다는 건 후안무치"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넘쳐나는 비판은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다. 상대 정당 소속 인사가 일으킨 성 비위 문제로 발생한 보궐선거란 점을 부각시키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신이 난(?) 듯하다. 당헌을 바꾼 민주당을 지적하는 비난도 '동어 반복'으로 들린다. 성폭력 문제로 한국 제1·2 도시의 지도자 자리가 공석이 된 상황에 정치권의 깊은 고민을 기대하는 건 역시 무리일까. 야권의 비판에 왠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지난 29일 오히려 후보 공천을 통해 시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 있는 공당의 도리라며 보궐선거 후보 공천 방침을 굳혔다. 이날 열린 의원총회를 주재하는 이 대표. /이새롬 기자

내년 4월 치러지는 보궐선거는 2022년 3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 그 해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 판을 흔들 키로 분석된다. 집권을 최대 목표로 하는 정당으로선 목적을 위한 명분이 중요한 게 현실이다.

다만 시민사회에선 두 시장의 몰락 사례를 통해 '성폭력도 산재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의제가 힘을 받고 있다. 그러는 사이 정치권은 후보군을 꾸리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정권을 교체하기 위한 전략에 골몰하고 있다.

결국 정치권은 그동안 '정치권 성폭력'에 대한 고민이 없었기에 이번 보궐선거를 치르게 된 셈이다. 그리고 아직도 그 고민은 부재하다. 어떤 정치인은 민주당을 향해 '부끄러운 줄'은 알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 모두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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