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검찰 게이트'…달라진 게 없는 2020년 한국 정치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이 사기 범죄인 김봉현 씨가 권력 투쟁의 선봉장이 돼 있다. 지금 이상하게 돼 있다. 제가 볼 때는 질이 아주 나쁜 사기꾼 느낌이 드는데, 내부 고발자처럼 돼서 야당에 정권 투쟁 내지는 우리 정부의 어떤 대정부 투쟁의 선봉장처럼…."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15일)
"이번 사건은 김봉현의 사기 사건이 아니라 검찰 게이트 아닌가 싶다."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16일)
라임 펀드 사건의 핵심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옥중 편지가 16일 공개됐다. 강 전 수석에게 돈 5000만 원을 줬다는 법정 진술(지난 8일) 논란이 불거진 지 일주일 만이다. 여당의 태도가 바뀐 것도 김 씨의 옥중 편지 공개 후다.
더불어민주당과 강 전 수석은 김 씨를 '사기꾼'이라고 판단했다. 옥중 편지가 공개되기 전까지다. 그러나 지난 16일 공개된 김 씨의 편지에 검찰과 야당 정치인에 관한 로비 내용이 나오자 '사기꾼'이라던 사람의 글은 '신빙성 있는'으로 분위기가 반전됐다. 김 씨 편지가 공개되며 국민의힘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만, 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은 당사자들의 해명과 함께 '특검' 요구를 이어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19일 헌정 사상 세 번째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며 김 씨의 옥중 편지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면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다시 칼을 겨누는 모양새가 됐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법무부까지 정체가 불명확한 문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상황이다. 좋게 보면 정치인 연루 의혹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론 각자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위한 수단으로 이를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기꾼으로 치부됐던 김 씨가 옥중 편지 공개로 신뢰할 수 있는 제보자가 된 것 같다. 라임펀드 사건은 4000명이 넘는 피해자와 1조5000억 원이 넘는 피해액이 발생한 초대형 금융사기다. 김 씨는 라임 펀드 사기 사건의 피의자다.
김 씨는 옥중 편지 공개로 노린 게 뭘까. 그는 옥중 편지로 판을 흔들고 정치판을 흔들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너희들이 날 버려'라는 분노의 복수극 말이다. 실제 여야 정치권과 검찰과 법무부는 김 씨의 옥중 편지 공개에 설레발을 치고 있지 않은가. 진실은 밝혀야 하고, 그 과정에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야 한다. 감정적으로 보이는 건 논란만 더 확산할 뿐이다.
하지만 현재 벌어지는 모습은 정치권의 진영 논리만 있어 보인다.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는 김 씨는 로비했던 이들에게 가수 서태지의 노래 '필승'의 가사와 같은 분노와 복수심을 보이려는 것은 아닐까.
'난 버림받았어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보기 좋게 차인 것 같아
빌어먹을 내 가슴속엔 아직 네가 살아있어
정말 난 바보였어 몰랐었어 나를 사랑한다 생각했어
내 마음도 널 사랑했기에 내가 가진 전부를 줘버렸어
넌 왔다 갔어 이런 날벼락이 이 세상에 혼자 남은 듯한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있어 그리고 자꾸 깊은 곳으로 떨어져
아무도 모르게 내 속에서 살고있는 널 죽일거야
내 인생 내 길을 망쳐버린 네 모습을 없애 놓을거야
그렇게 사랑스럽던 네가 나에겐 눈물을 보일 기회도 주지 않았었지
아무 일도 난 잡히지 않았고 왜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나
허우적대고 있었지 내 생활은 칙칙하게 됐어
앞뒤가 맞지가 않잖아 나는 이를 악물고 오히려 잘됐어'
김 씨의 옥중 편지를 떠나 로비가 여전히 횡행하는 21세기 정치판은 서태지가 노래를 발표한 2007년에 비해 달라진 게 없다. 코로나19로 그렇지 않아도 힘든 국민은 또다시 정치의 민낯에 허탈할 뿐이다.
cuba20@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