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권 승계, 국내정치 배경, 정치적 부담 이유 등
[더팩트ㅣ박재우 기자]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강제징용' 문제를 꺼내며 올해 말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의 조건부 참석을 밝혔다. 스가 총리의 조건부 참석 의사로 올해 말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의는 사실상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한일 간 정상통화로 한일관계 개선 기대가 커진 가운데 스가 총리가 갑작스레 '강제징용' 문제로 찬물을 끼얹은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건부' 참석을 내건 배경으로는 아베 정권을 승계하는 차원에서 강제징용에 대한 문제 해결에 미온적인 태도가 꼽힌다. 또한, 국내정치적 이유도 작용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14일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일본이 수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으면 스가 총리가 한·중·일 정상회담에 참석할 수 없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앞선 지난 12일 교도통신도 한일 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한국의 조치가 없으면 스가 총리가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강제징용 문제는 지난해부터 한일 갈등 핵심 난제로 상존해 왔다. 일본 전범기업 일본제철은 지난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으로부터 강제징용 피해자 4명에게 1억 원씩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이행을 거부해왔다. 피해자 측은 일본제철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한 압류 및 매각명령을 신청했다. 일본제철은 자산압류 명령에 불복해 항고했지만, 이르면 연말쯤 매각 절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주최 측인 상황에서 동북아 외교행사에 찬물을 끼얹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스가 총리가 취임한 이후엔 '한일관계 정상화' 전망도 있었지만, 아베 정권 뒤를 계승하는 '스가 정권'이라는 점에서 예상 가능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임인 아베 총리도 강제징용문제와 관련해서 대법원이 판결을 내리자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라는 경제보복카드를 꺼낸 바 있다. 이후 한일관계는 격랑 속으로 빠져들어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본이 이처럼 한국이 수용하기 힘든 요구를 내건 것은 스가 총리 방한 기간 또는 방한 이후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가 이뤄질 경우 국내적으로 비판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하종문 한신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서 스가 정권이 새로운 솔루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데, 당분간은 시간이 넉넉하진 않은 상황"이라며 "일본 입장에선 해결이 아니라 '현금화'를 중단해달라고 말해 어느 정도 뒤로 물러난 입장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스가 총리가 한·중·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방한을 하는 도중 일본기업의 자산현금화가 이뤄진다면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고 분석했다.
14일 청와대도 스가 총리의 이런 태도에 "만남을 선결 조건으로 삼으면 아무것도 풀리지 않는다"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만난다,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 양국 간 현안 해결에 전제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라며 "문제를 풀기 위해서 만나는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오히려 만나서 풀려고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3국 정상회의 성사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중·일 정상회의가 매년 개최된 것은 아니여서 내년 회의 가능성도 점춰진다. 이 정상회의는 2015년 재개해 정례 개최를 약속했지만, 지난 2016년에도 일본 개최 순서에서 회의가 무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