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등 공공기관 인사에 있어 부적격자,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는 없도록 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초 당시 여야 4당 대표들과 오찬회동에서 약속한 말이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 등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집권 4년 차,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다. 취임 초부터 투입되기 시작한 '낙하산'은 현재도 공기업 곳곳에 뿌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현황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지켜지지 않은 '낙하산 근절' 약속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공기업은 입사하는 것이 바늘구멍보다 좁지만, 평균적으로 공무원에 비해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정년 보장 등 안정성은 민간기업보다 높아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이른바 '신의 직장'으로 불린다. 올해 기준 총 36개 공기업의 2분기까지 신규채용 인원은 708명에 불과하며, 지난해 말 기준 평균 연봉은 7941만 원에 달한다.
공기업의 경영진인 임원진은 직원 평균 연봉의 두 배 이상(지난해 말 기준 기관장 2억922만 원, 상임이사 1억5715만 원)을 받는 만큼 들어가는 것이 더 어려워야 하는 게 상식적이다. 하지만 관련 경력이 전무한 문재인 정권 '캠코더(대선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에게는 신의 직장에서도 '꽃'이라 불리는 임원 취업도 그다지 어렵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민주당' 이력이면 바늘구멍도 쉽게 통과
<더팩트>가 9월 말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를 통해 36개 공기업의 임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25개 공기업의 임원 44명이 문재인 정권의 캠코더 인사로 나타났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청와대와 민주당 등에서 일한 경력을 숨기지 않았다. 해당 기관에 대한 전문성 대신 '청와대'와 '민주당'이라는 세 글자가 이들의 취업에 열쇠가 된 것이다.
대통령이 최종 임명권을 가진 공공기관장과 상임감사, 주주총회를 거쳐 사장이 임명하는 상임이사, 기획재정부 장관이 임명하는 비상임이사(사외이사) 가리지 않고 캠코더 낙하산은 퍼져있었다. 이들의 유형은 크게 노무현·문재인 정부 청와대 및 대선캠프 출신, 민주당 총선 후보·당직자·보좌진 출신으로 구분된다. 상당수는 여러 유형이 겹치기도 했다.
청와대 및 대선캠프 출신부터 살펴보면 국내 유일한 내국인 출입 가능 카지노를 운영하는 강원랜드 문태곤 사장(임기 2017.12.21~2020.12.20)과 한형민 부사장(2017.12.21~2020.12.20)이 낙하산으로 분류된다.
행정고시 24회 출신인 문 사장은 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근무했던 노무현 정부 말기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 비서관으로 재직했다. 올해 그의 기본급은 1억4114만 원으로 아직 받지 않은 성과 상여금을 포함하면 올해 그의 연봉은 2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지난해 2억483만 원).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한 부사장의 올 기본급은 1억1291만 원으로 연말 성과상여금을 포함한 연봉은 1억5000만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지난해 1억5504만 원).
외국인 전용 카지노 '세븐럭'을 운영하는 그랜드코리아레저(GKL) 유태열 사장(2018.6.15~2021.6.14)은 대전지방경찰청 청장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청와대 치안비서관을 지냈다. 또 민주당 중앙선대위 민생치안확립특위원장을 맡기도 했으며, 2017년 4월 퇴직경찰 553명과 함께 당시 문재인 대선후보 공개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유 사장의 올해 기본급은 1억4114만 원이다.
올 3월 GKL 연임이 확정된 임찬규 상임감사(2018.3.9~2021.3.8)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 민주통합당 사무부총장,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연구위원 등을 역임했다. 올해 임 감사의 기본급은 1억1291만 원이다.
◆노무현·문재인, 사회생활 인연이 곧 스펙?
GKL 송병곤 상임이사(2018.11.26~2020.11.25)는 문 대통령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인사다. 문 대통령이 대표 변호사를 지낸 법무법인 부산의 사무장으로 18년간 근무했으며, 이에 앞서 노무현·문재인 법률사무소 주임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송 이사의 올해 기본급은 1억1291만 원이다.
민주당 전주갑 지역위원회 사무국장 출신인 천진심 GKL 사외이사(2018.6.12~2020.6.11)는 임기가 종료된 이후에도 신규 사외이사 선임이 늦어지면서 지난 23일까지 재직했다. 천 이사가 빠진 자리에는 또다른 낙하산이 들어갔다.
지난 24일 열린 GKL 임시주주총회에선 5명의 새 사외이사가 선임됐는데, 이중 한 명인 한희경 이사의 주요 경력은 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 및 홍보미디어위원회 부위원장, 전라북도 도의원만 기재돼 있다.
사외이사는 통상 한 달에 한 번 꼴로 열리는 이사회에만 참석하면 되는데, GKL의 경우 올 초부터 9월까지 7번의 이사회가 열렸다. 사이외사 연봉은 기본급 2400만 원에 회의참석 수당으로 533만 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제주도의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전담하는 기구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문대림 이사장(2019.3.7~2022.3.6)은 제주대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장 출신으로 학생운동에 앞장섰던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다. 고진부 전 국회의원 보좌관,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장, 문재인 정부 청와대 제도개선비서관을 지낸 후 이사장으로 부인한 그의 올해 기본급은 1억3402만 원이다. 지난해에는 성과금을 포함해 2억 원 이상을 받았다.
송기정 상임감사(2018.2.6~2021.2.5)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 민주통합당 서울 강동갑 지역위원장 등 청와대와 민주당 경력을 골고루 갖고 있다. 올해 그의 기본급은 1억721만 원으로 지난해에는 1억5858만 원을 받았다.
도시가스와 수소에너지 등과 관련한 사업을 영위하는 한국가스공사에는 남영주 상임감사(2020.1.13~2022.1.12)가 올 초 낙하산으로 투입됐다. 경북대 철학과 출신으로 에너지 관련 경력이 전무한 그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민정비서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사무처장 등을 역임했다. 올해 그의 기본급은 1억1291만 원이다.
우리나라 전체 전기 공급량의 13% 이상을 공급하는 에너지 공기업 한국남동발전에는 지난 대선에서 문 후보를 지지했던 이들이 주축으로 모인 비영리단체 플랫폼경남의 김봉철 대표가 상임감사(2018.12.24~2020.12.23)로 재직 중이다. 2017년 11월 이 단체 개소식에는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당시 후보)도 참석해 축사를 하기도 했다. 김 감사의 올 기본급은 1억1505만 원이다.
◆'김용균 사고' 공기업 낙하산 감사 연임
지난 2018년 12월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씨가 작업 중 숨져 논란이 된 태안화력발전소의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에도 낙하산 인사가 감사로 있다. 최근 연임에 성공한 최향동 상임감사(2018.9.18~2021.9.17)는 전남대 행정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에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 노무현 정부 청와대 시민사회행정관, 사회적공유경제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그의 올해 기본급은 1억1192만 원이다.
또한 박시영 사외이사(2018.11.1~2020.10.31)도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 노사모 사무국장 등을 지냈다. 한국서부발전 사외이사의 기본급은 3000만 원이다. 올해 이사회는 지금까지 총 10번 열렸다.
이외에도 △한국마사회 김낙순 회장(17대 의원, 대선캠프/기본급 1억3059만 원), 정기환 상임감사(문 후보 대선캠프/기본급 1억447만 원)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김기만 사장(김대중 정부 청와대 춘추관장, 문 후보 대선캠프/기본급 1억3977만 원) △한국남부발전 손성학 상임감사(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기본급 1억1302만 원) △한국도로공사 신봉호 사외이사(노무현 정부 청와대 비서관/기본급 2400만 원+회의참석수당 600만 원) △한국지역난방공사 황찬익 상임감사(문 후보 대선캠프/기본급 1억702만 원) △한국토지주택공사 허정도 상임감사(문 후보 대선캠프/기본급 1억78만 원 △한전KPS 문태룡 상임감사(문 후보 대선캠프/기본급 1억1038만 원) 등이 캠코더 인사로 분류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이 정부에서 식언(食言)을 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일일이 말하는 게 입이 아플 정도인데, 그 중 하나가 '낙하산을 없애겠다'고 말하고선 임기 초부터 대대적으로 낙하산을 투하하고 있는 것"이라며 "지적을 해도 인정을 하지 않고, 반성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조 의원은 이어 "임기 말로 접어드는 시기이니 임기 초에 낙하산으로 들어간 사람은 임기를 연장하려고 시도하고, 본인 차례를 줄서서 기다리는 이들은 이번이 들어갈 마지막 기회라 여기며 청와대 줄을 잡고 곳곳으로 낙하산을 타고 가려 할 것"이라며 "정권 차원에서도 다음에 혹시라도 정권이 바뀔 수도 있으니 알박기 차원에서라도 낙하산을 계속 보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편에선 더불어민주당 총선 후보·당직자·보좌진 출신 낙하산 인사에 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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