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동 떨어진 문제 인식, 국회에서 '버럭'하는 태도 '논란'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현실에서 회중시계를 보며 뛰어가는 토끼를 본 사람이 있을까. 애벌레가 담배를 피우고, 몸이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면? 상상에서나 가능할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질 때 우리는 '내 뺨 좀 한 대 때려 봐'라고 하지 않을까.
회중시계를 보며 뛰어가는 토끼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한 장면이다. 이 동화는 영화도 만들어질 만큼 인기 있는 작품이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지만, 내용이 조금은 난해해 쉽게 이해하지 못 하는 내용도 종종 있다.
토끼가 앨리스에게 진심으로 권했다.
"차 좀 더 마셔."
앨리스는 기분이 상해서 대답했다.
"난 아직 아무것도 못 마셨어요. 그러니 '더' 마신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모자 장수가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안 마셨을 때 '더' 마신다는 것은 말이 되지. '덜' 마시는 것이 말이 안 되잖아요."
이상한 나라에서는 우리 일상의 표현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그곳만의 논리와 방식이 존재할 뿐이다. 이상할 것 같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이상한 나라의 논리가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아무것도 안 마셨을 때 '더' 마신다는 것은 말이 되지. '덜' 마시는 것이 말이 안 되잖아요"와 같은 말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도 불과 몇십 년 전 '독재'라는 이상한 나라에 살았다. 긴 머리를 단속하고, 자를 가지고 다니며 치마 길이를 단속했던 나라였다. 또, 국가에서 집에 들어갈 시간까지 정해줬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참 이상한 나라였지만, 당시 정부의 통치 논리였고 국민의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2020년 현재 우리는 군부 독재 시절의 이상한 통치 논리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다양한 생각이 공존하고 그것이 존중되는 곳에서 말이다. 그런데 요즘 다양성이 존중되는 민주주의 사회인데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일이 종종 있다. 정치권과 정부가 사회적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서 유독 '이상하다'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지난 25일 국회를 찾은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 국무위원들의 '버럭'하는 태도와 발언을 들으면서다.
"현재 부동산, 집값 상승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안정화 정책에 국민 다수가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론조사를 통해 매주 보고 있다." -노영민 비서실장
"부동산 관련 법안이 통과됐고, 이 효과가 8월부터 작동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8월이 지나야 통계에 반영된다. 최근 법인 등이 내놓은 매물을 30대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돈을 마련했다는 의미)해서 샀다는 데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
"국민 다수가 지지하고 있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여론조사로 나타나는 것과, 현장에서의 체감 민심은 다르다고 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불확실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들의 발언에선 '우리가 볼 때는'과 같은 자신감이 묻어난다. 이상한데 이들의 논리와 방식으로는 이상하지 않은 게 되는 것처럼.
즉, "아무것도 안 마셨을 때 '더' 마신다는 것은 말이 되지. '덜' 마시는 것이 말이 안 되잖아요"라고 말한 모자 장수의 말을 들은 앨리스와 같은 느낌이랄까. 국무위원들의 현실 인식에 공감하지 못 하는 국민이 이상한 나라에 간 앨리스인지, 국무위원들이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인지. 이쯤에서 '버럭'보다 '우리도 틀릴 수 있다'고 한번은 생각해보길 진심으로 권해본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이자 국민의 대표자이다. 설사 아무리 수준 낮은 국회의원이라고 할지라도 국민을 위해 서비스하는 별정직 공무원인 국무 위원이 버럭할 상대는 아니다. 국회의원을 무시하고 '버럭'하는 것은 바로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