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도 야당 대표 시절 '메르스 사태' 때 질본 방문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발 빠른 코로나19 방역 행보에 더불어민주당이 협조가 아닌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과거 야당 시절 자신들이 했던 일은 잊은 듯한 자가당착적 행보도 보여 통합당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송읍에 위치한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를 방문했다. 코로나19 방역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질본의 수장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을 만나 방역의 어려움 등을 청취하고, 궁금한 점을 묻는 자리였다.
◆김종인, 질본 방문이 불편(?)한 민주당
김 위원장은 질본 방문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정치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코로나19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전문가들 말을 경청할 수밖에 없다"라며 "질본의 지침 사항에 맞게 방역을 쫓아가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정 본부장과의 면담에서 질본과 지방 모든 조직의 연계가 잘 이뤄지지 않는 점과 최근 확진자 급증 후속 조치로 3단계 사회적 거리두기 조기 실시 여부 등을 묻고, 국가보건안전부 신설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에 민주당은 코로나19 재확산 위기 속 본인들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도 질본을 찾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진 김 위원장의 질본 방문이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당 차원은 물론 개별 의원들도 비판을 쏟아냈다.
허윤정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21일 국회 브리핑에서 "코로나19 재확산의 중대 고비에서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질본을 김 위원장이 굳이 지금 방문한 것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혹여나 방역 업무에 방해가 될까 대통령도 방문을 자제하고, 국회 상임위에서도 출석요구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공당의 대표가 질본을 방문한 것도 모자라 총괄책임자의 시간까지 빼앗으며 면담을 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22일 페이스북을 통해 "뜬금없는 김 위원장의 질본 방문은 전형적인 '구태 정치'"라며 "김 위원장은 어쭙잖은 훈장질 대신에 통합당과 전광훈 (목사) 일당이 그간 정부 방역 활동을 방해한 점은 무엇인지 참회하고 그에 대해 사과하라"고 공세를 펼쳤다.
정 의원은 또 김 위원장을 향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고 셀프 대권 놀이만 즐기고 있는 노욕 정객"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도 2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김 위원장이 정 본부장을 찾아간 것은 정치적 중립성 위배라고 본다"며 "정 본부장은 감염병 방지와 예방을 위한 모든 시책의 컨트롤타워로 정부, 정권의 눈치도 보지 말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야당의 눈치로 보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2015년 5월 31일 일요일에 '메르스 사태' 대응에 여념이 없던 질본을 찾아 당시 양병국 본부장으로부터 현안 보고를 받았다. 김 위원장이 평일(금요일) 질본을 찾아 현안 보고 없이 본부장과 면담을 하고 나온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뺏은 것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메르스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며 "신종 감염병에 대해 우리의 대응 시스템이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라고 질타했다.
이와 관련 김기현 통합당 의원은 2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 한다고 생각한다"며 "문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메르스가 한창 창궐할 때 당 지도부, 충청북도 도지사 등을 총동원해 세를 과시하면서 질본을 방문해 대회의실을 빌려서 현안 보고를 받고 야단까지 쳤다"고 꼬집었다.
김 의원은 이어 "일요일에 공무원들 다 비상근무하고 있는 상태에서 거기 가서 더 업무를 가중시켜서 사실 어떻게 보면 방해하신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며 "거기에 대해서 우리 당은 아무 얘기도 안 했다. 김 위원장은 현안 보고를 받은 것도 아니고 잘하라고 격려하고, 여당과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는데 그걸로 야단을 치면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종인 "정부·여당, 야당이 아니라 코로나와 싸워야"
이에 대해 김 위원장도 지난 23일 국회에서 개최한 코로나19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질본을 다녀온 것은 질본이 신속한 조처를 내린 상황에서 정부나 여당 눈치를 보지 말고 소신 있게 일해 달라고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었다"라며 "여당은 이에 함께하지는 못할망정 이마저도 정쟁으로 악용하려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방역에는 여야가 있을 수 없다. 지금 정부·여당이 싸워야 할 대상은 국민과 야당이 아니라 코로나"라며 "여야 합의로 '코로나 특위'를 구성해 공동 대응에 나서자"라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김 위원장은 전공의들의 파업이 진행되고 있던 23일에는 정부의 4대 의료 정책(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한방 첩약 급여화, 원격의료 추진)에 반발해 총파업을 예고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최대집 회장을 국회에서 만나 "의사들이 파업을 빨리 멈춰야 한다"며 "2차 파업도 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의협 간 갈등을 좁힐 수 있도록 역할을 하겠다"고 중재자를 자처했다.
김 위원장과의 면담에 앞서 의협은 정세균 국무총리와 민주당·통합당에 최근 의료 사태와 관련해 대화를 통한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긴급 간담회 개최 제안' 공문을 발송했다.
김 위원장과 만난 최 회장은 다음 날(24일)에는 정 총리와도 면담을 진행했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따로 만나지 않았다. 이는 민주당 측이 거부해 회동이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여야가 함께하는 코로나 특위 구성에 대해서도 24일까지 명확한 답을 하지 않고 통합당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통합당은 국론분열 조장을 중단하고 방역에 적극 협력하길 바란다"며 "통합당이 방역에 협조할 의지가 있다면 광화문 집회 참가자에게 지금이라도 진단검사를 받을 것을 강력히 권고해야 한다. 지금은 제1야당이 근거 없이 정부를 비난하면서 국론을 분열시킬 때가 아니라 방역에 솔선수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통합당은 "광화문 집회는 통합당이 주최한 것도 아니고, 전광훈 목사도 전 대표였던 황교안 전 대표와 가까웠던 인사로 지금은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며 "민주당이 남 탓을 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사실 민주당이 통합당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남 탓을 하는 건 어제오늘 이야기는 아니다"라며 "최근에는 지지율이 역전됐다가 다시 역전됐는데, 그래서인지 초조해하는 것 같다. 다시 통합당에 역전될까 봐 쐐기를 박으려 남 탓을 하고 김 위원장이 정 본부장을 만난 것도 비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어 "야당 대표가 코로나19 방역 관련 질본을 찾아가는 것은 굳이 과거 문 대통령은 갔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갈 수 있는 것"이라며 "방역엔 여야 구분이 있을 수 없는데, 그걸 문제 삼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sense83@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