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증책임·무고 우려'…통과까지 '첩첩산중'
[더팩트|국회=문혜현 기자] 21대 국회에서 '비동의강간죄'를 골자로 하는 형법 개정안이 발의돼 찬반 논란이 뜨겁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1호 법안'으로 발의한 해당 법은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피해자의 동의 여부'로 확장하는 데 중점을 뒀다.
2018년 처음 '미투 운동'이 일어나면서 비동의강간죄 관련 형법 개정안은 수차례 발의됐지만,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20대 국회에서 폐기됐다. 하지만 이번 법안은 '정의당 5대 우선 입법 과제'로 선정되면서 추진력을 얻을지 주목된다.
◆기존 법과 차이점?…"전면적 개정"
류 의원이 발의한 형법 개정안은 '강간과 추행의 죄'를 정의하고 있는 형법 제32장을 표현부터 내용까지 전면 개정했다. 또, 비동의강간죄 신설을 비롯해 기본 강간죄 구성요건에 위계·위력 포함, 처벌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형법 제32장의 제목인 '강간과 추행의 죄'는 '성적 침해의 죄'로 수정된다. 이에 대해 류 의원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본 개정안은 성범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율하는 형법 제32장을 시대의 변화, 국제적 흐름에 맞추어 전면 재정비하는 법률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범죄 처벌을 통해 보호해야 하는 법익은 성적 자기결정권"이라고 강조했다.
개정안은 '간음'이라는 법문은 모두 '성교'로 바꾸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형법 제 297조 강간죄를 행위 태양에 따라 제1항 '상대방의 동의 없이', 제2항 '폭행·협박 또는 위계·위력으로' 제3항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로 세분화했다.
류 의원은 이에 대해 "(제1항은)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폭행과 협박'으로 간음한 경우에만 강간죄 성립을 인정하는 법원의 해석은 더이상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2항은 '업무상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죄'를 삭제하고 기본 강간죄 구성요건을 확장했다. 실제 의사와 환자 사이, 종교인과 신자 사이 등 위계·위력이 존재해도 '업무상 관계'로 인정되지 않으면 적용할 수 없는 점을 수정했다.
류 의원은 개정안을 소개하면서 "법문과 구성요건의 개정으로 의미가 없어졌거나 다른 형사법과 처벌이 중복되는 법 조항을 삭제하는 등 체계를 정리하고, 강간 등 상해치사, 강간 등 살인치사와 같이 국민의 법감정에 비추어 현저히 낮은 형량을 조정해 법의 실효성을 제고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폭행과 협박 없이 가해자들이 저항이 어려운 상황이나 피해자의 취약한 처지를 겨냥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도 처벌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다만 '동의 여부'를 입증하는 과정, 무고의 여지 등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전망이다.
◆통과 여부는 '관심'에 달렸다…"응원·격려 이어져"
이 법은 여성 국회 부의장인 김상희 의원,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인 정춘숙 의원과 정의당 의원단, 최연숙 국민의당 의원까지 12명의 의원이 공동발의에 나섰다. 하지만 관련 상임위 문턱을 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먼저 비동의 간음죄를 다룬 백혜련 민주당 의원 법안이 먼저 발의된 만큼 병합 심사 과정을 거치면서 일부 내용이 수정될 수 있다.
법안 통과 가능성에 대해 류호정 의원실 관계자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법사위에 있는 위원들도 우리 법안을 빨리 검토하고 싶다고 해서 보내드린 곳도 있다"며 "'안 그래도 개정하려고 보고 있었다'며 법안 발의를 환영하는 분들도 있다. 저희는 희망적으로 보려고 한다"고 했다.
'차별금지법' 발의 당시 정의당 의원실에 이어졌던 항의 전화와 달리 응원 전화도 왔다. 관계자는 "응원하는 분들의 전화가 온다. '형법도 이제 바뀔 때가 됐다'고 해주시는 분들도 있다. 나이 많은 분들의 전화도 걸려왔다. 이제 시대가 바뀐 것 같다"고 했다.
개정안이 법사위로 넘어가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면 사실상 '모든 부분'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관계자는 "기본법이기 때문에 장 하나를 전체적으로 바꾸는 셈"이라며 "법을 바꾸는 것을 넘어 사회적 인식 자체를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비동의강간죄'에 대한 오해와 우려도 다수 포착되고 있다. 류 의원실은 관련 문의에 대해 'QnA'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특히 '동의 여부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무고한 사람이 나올 수 있지 않느냐'는 우려에 류 의원실은 명확한 답변을 내놨다. 동의 여부 증명, 입증 책임에 대해 류 의원실은 "피해자의 주장 외에도 보강증거(문자메시지, 통화내역, CCTV, 진단서, 사진, 진술분석, 심리평가, 거짓말탐지기 등)를 통해 범죄가 입증될 거다. 다만 이제부터는 '피해자의 반항이 불가능했나? 현저히 곤란했나?'가 아니라, '분명히 비동의했나?'를 입증해야 한다"며 "그 입증은 여전히 검사와 피해자가 해야 한다. 우리 법 절차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또한 "우리 헌법상 보장되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범죄 유무는 치밀한 법적 공방을 통해 입증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중요한 건 법안 통과를 향한 '관심'이다. 정의당은 전당적 캠페인을 통해 관련 법 홍보에도 나설 전망이다. 류 의원실 다른 관계자는 통화에서 "법사위 의원들을 찾아 법안을 설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의 동의 성명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 법안은 '비동의강간죄 신설 활동'을 해온 전국 210여개 시민단체가 함께하는 '강간죄연대회의'와 류 의원실이 함께 준비했다. 류 의원실 관계자는 "강간죄연대회의와 함께 논의하고 협의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수정하고 추가한 법안"이라며 "주변 성폭력 상담소와 민변의 자문을 받아 열심히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향후 법안 관련 활동에 대해 관계자는 "국민의 관심을 모으는 것. 사회적 공론의 장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대립하고 토론해 나갈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이 과제"라고 했다.
moone@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