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규명은 차후…진행 중인 국난 해결에 집중해야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전국이 기록적 폭우로 시름에 잠겨있는 가운데 정치권은 '수해(水害) 책임론'을 두고 네 탓 공방이 한창이다. 이달 1~11일 계속된 폭우로 사망 31명, 실종 11명, 부상 8명, 이재민 7512명의 피해가 발생했다. 시설 피해도 2만 2089건에 달한다. 중부지방의 경우 장맛비가 오는 16일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돼 피해는 더 커질 수도 있다.
역대급 수해가 진행형인 상황에서 정치권의 행보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각 정당이 주요 정치 일정을 미루고, 피해 현장으로 달려가 복구 작업에 손을 거드는 것은 타당한 일이다. 하지만 수해 원인에 대해 전 전 정부인 이명박 정부시절의 '4대강 사업', 현 정부가 추진한 '산지 태양광설비'를 지목해 상대 당을 비판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미래통합당에선 섬진강 일대에 비 피해가 많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 "현 여권 지지층의 반대로 섬진강에서 4대강 공사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무분별한 탈원전 정책으로 우후죽순 들어선 '산지 태양광설비'가 원인이다" 등의 비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일부 의원들의 발언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도 거들고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에선 "4대강 사업의 폐해가 이번 수해로 거듭 입증됐다",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선 4대강 사업으로 만든 보를 철거해야 한다" 등의 반박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0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4대강 보가 홍수 조절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실증적인 분석을 할 수 있는 기회다. 댐 관리와 4대강 보의 영향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조사와 평가를 당부한다"고 지시하면서 여야 정쟁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의견이 다른 전문가들도 가세해 '4대강 vs 태양광' 논쟁에 불을 붙이면서 혼란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유례 없는 피해의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대규모 수해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정치권이 원인을 둘러싼 네 탓 공방을 벌이는 것은 방재(防災)에도, 피해 복구 및 피해자 지원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정부와 정치권이 할 일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고, 피해 지역의 조속한 복구와 피해자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원인 규명은 이 사태가 진정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아직 피해 원인에 대한 구제척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추측으로 전 전 정부 탓이니, 현 정부 탓이니 하는 것은 국민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
수해 원인을 따지기 전에 지금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길 바란다. 아무리 여야 관계가 좋지 않더라도 전국적 재난 상황에서 밝혀지지 않은 원인을 놓고 정쟁을 펼치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의 후진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 가뜩이나 정치 뉴스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국민들이 재난 상황에서도 무엇이 먼저인지, 무엇이 중요한지를 잊은 듯 다투는 정치인을 보면서 한숨을 짓는 일을 이제는 멈춰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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