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 동력 잃지 않으려면 의혹 해소 필수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여야가 MBC가 보도한 '채널A 기자와 윤석열 검찰총장 최측근의 공작 의혹'을 '검언유착'과 '권언유착'으로 각각 주장하며 정치공방 중이다. 미래통합당은 10일 의혹에 연루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을 검찰에 고발 조치하며 판을 키우고 있다.
한 위원장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 권경애 변호사의 지난 5일 폭로로 정치권에 소환됐다. 권 변호사에 따르면 사법연수원 선배인 한 위원장이 지난 3월 31일 9시께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와 "한동훈 검사장을 반드시 쫓아낼 것이고, 그에 대한 보도가 곧 나갈 것이니 제발 페이스북을 그만두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권 변호사는 또 한 위원장이 통화에서 "윤석열이랑 한동훈은 꼭 쫓아내야 한다" "한동훈은 진짜 나쁜 놈이다"라는 편파적인 발언 내용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통화 직후 지인과 나눈 텔레그램 메시지도 있다고 했다.
이에 근거해 통합당은 한 위원장을 방송통신위원회 설치·운영법 및 방송법 위반, 직권남용,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했다.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통합당이 고발장에 사례로 넣은 것처럼 박근혜 정부 당시 세월호 참사 보도 개입 혐의로 1000만 원 벌금형을 선고받은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때보다 더 심각한 건이 될 수 있다.
통합당은 또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상임위 현안 질의도 요청한 상황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를 거부하며 현재까지 통합당 고발 관련 논평도 내놓지 않고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한 위원장과 권 변호사의 통화 시각이 MBC 보도 직전이 아닌 직후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여권은 '메신저 때리기'에 나섰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7일 권 변호사 폭로에 대해 "기억 오류에 의한 소동"이라고 규정했다. 민주당은 통합당의 국정조사와 특검 요구도 일축했다.
하지만 상식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그저 '기억의 오류'로 덮고 넘어가야할지 의문이 든다. 한 위원장이 MBC 첫 보도 당시 실명 공개가 안 됐던 '한 검사장'을 언급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가 MBC의 '검언유착' 의혹 보도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의혹이 남아 있다면 해소하는 것이 먼저다.
또 이참에 MBC 보도 초기부터 제기됐던 열린민주당 지도부와 제보자 지 모 씨, MBC와의 '권언유착' 의혹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와 황희석 최고위원은 보도 내용을 사전에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실이 아닌 데도 단정한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이들은 채널A 기자가 총선 전에 기사를 터트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 게 아니냐는 식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나중에 공개된 채널A 기자와 한 검사장 대화 녹취록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다. 구체적인 '공모' 정황이 없다는 점은 검찰수사심의위원회(심의위)가 한 검사장에 대해 '불기소' 권고를 내린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황 최고위원은 "MBC 보도가 나가는 당일 방통위원장으로 추측되는 사람이 보도가 나갈 예정임을 미리 알았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이 무슨 권언유착인지 설명해달라"라고 했다.
이쯤 되면 사리분별을 잃었다고 할 수 있다. 권언유착이 왜 나오는가. 권력을 가진 쪽이 부당한 권력의 비판에 앞장서야 하는 언론과 결합하여 권력의 논리를 추종하거나 옹호하고 이를 통해 특례조치를 향유하려는 것 때문에 나온 말이 아닌가. 방통위원장은 바로 방송위원회의 방송 정책 및 규제, 정보통신부의 통신서비스 정책과 규제를 총괄하는 대통령 직속 기구의 수장으로 방송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사전에 방송 보도 내용을 미리 알고 있다면 얼마든지 '권언유착'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인데도 오히려 적반하장 식의 태도를 보이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런 와중에 여권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각종 개혁에도 제동이 걸리는 모양새다. 윤석열 총장 해임 요구가 여권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7일 검찰 요직을 비특수통·호남 출신 인사들로 채우며 '윤 총장 손 발목 자르기'라는 부정 여론을 불러들였다. 민주당은 오는 18일부터 시작하는 8월 임시국회에서 본격적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을 위한 후속 법안 등을 처리해야 한다. 이대로 무대응 전략으로 일관한다면 의혹은 확산하면서 '개혁'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또, 무엇보다 권언유착 사실 여부를 분명히 밝히는 것은 집권 여당의 책무이기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살아생전 내내 권언유착을 경계했다. 그는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나는 언론 권력과의 유착을 단절했다. 언론 권력의 부당한 특권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 자유를 탄압한 적은 결코 없었다"고 했다. 통합당은 국민의 요구사항을 대변했을 뿐이다. 민주당은 이번 만큼은 '정쟁'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