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삼은 의원 없어…여권 "평가 자체가 모욕적"
[더팩트|국회=문혜현 기자]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4일 본회의장에 입고 온 원피스 복장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비난 목소리가 높아지자 류 의원을 옹호하는 주장도 나오면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일부 지나친 비난 표현에 "도를 넘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지난 4일 류 의원은 이날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 빨간색 무늬 랩원피스를 착용하고 나타났다. 본회의 당일 해당 복장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5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비난 댓글이 폭주했다.
방송인 김어준 씨가 운영하는 '딴지일보' 커뮤니티 게시판엔 "꼰대 나이든 국회의원 형님들은 그래도 눈요기된다고 좋아할 듯", "탬버린 손에 걸치고 옵빠 한번 외쳐라", "도우미 아닌가"라는 조롱 섞인 표현도 나타났다. 류 의원의 페이스북에도 누리꾼들의 포화가 이어졌다. 지난 4일 류 의원이 비동의강간죄 관련 법안 준비를 마쳤다며 올린 게시물엔 "국회가 언제부터 바캉스 장소가 됐을까", "국회로 휴가간 모양"이라는 댓글이 올라왔다. 이밖에 류 의원을 향해 "티켓다방 생각난다"는 등 인신공격성 발언도 있었다.
반면 "국회에 정해진 복장 의례 기준 조항이 있나"라는 반박이 이어지기도 했다. 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의원 시절 백바지를 입었던 것을 두고 "백바지 사건 잊었냐"는 지적도 나왔다. 2003년 개혁국민정당 소속으로 당선된 유 이사장은 의원 선서를 하는 자리에 흰색 면바지, 회색 라운드 티셔츠, 남색 재킷을 입고 나타났다. 당시 한나라당(미래통합당 전신) 의원들은 유 이사장의 복장에 "국회와 국민을 업신여긴 것"이라고 야유했다. 이에 유 이사장은 "튈려고 그런 것도 아니고, 국회를 모독해서도 아니라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게 보기 싫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외에도 누리꾼들 사이에선 "의상이야 단정하기만 하면 된다", "일 잘하면 옷이야 어떻든 상관 없다"는 반박도 나왔다. 실제 국회의원에 대한 복장 조항은 규정되지 않았다. 국회법 25조에 '의원은 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있을 뿐이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그런 규정이) 있을리가 없다"며 이번 논란과 관련해 "일반 직장이나 마찬가지로 인식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본회의장에서 함께 있었던 여야 의원들도 관련 논쟁에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류 의원에게 쏟아진 비판 여론을 문제적으로 의식하는 이들도 있었다. 평소 면바지와 스니커즈 등 캐쥬얼한 복장을 자주 입는 김웅 의원은 통화에서 "나한테도 뭐라고 하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김 의원은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인데 일 하는게 중요한 것 아닌가"라며 "(류 의원을 향한 비판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 사모관대를 쓰고 다녀야 하나. 단발하시고 머리 자른 분들도 상투 틀고 다녀야 한다"고 반박했다.
한 통합당 여성의원도 "옷으로 국회의원을 규정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유시민 (당시) 의원도 백바지 입고 나왔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건가"라고 했다.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도 "저는 그렇게 심각하게 문제라고 느끼지 못했다"고 답했다. 지난 4일 본회의장에서 류 의원 앞에 착석했었던 강 의원은 통화에서 "심각한 노출을 했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원피스를 입은 것 아닌가"라며 "본질적인 건 국회 의정활동이다. 그런 문제에 집중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목소리를 보탰다. 민주당의 한 여성 의원은 "그 사람의 입법이나 정책을 가지고 갑론을박하는 건 당연하다. 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면서 "사회적으로 전혀 통용될 수 없는 그런 옷이 아니라면 뭘 입든지 (괜찮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다른 한 의원도 "논란 자체가 우스운 것"이라며 "이 문제가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복장에 대해) 평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모욕적"이라며 "너무 화가 난다. 다양성을 외치면서 이런 것을 문제삼는 시각이 의아하다. 뉴질랜드에선 의회에서 수유도 한다"고 밝혔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도 SNS에 "나는 류 의원의 모든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와 생각이 다른 점들이 꽤 많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그녀가 입은 옷으로 과도한 비난을 받는 것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다. 국회는 그렇게 다른 목소리, 다른 모습, 다른 생각들이 허용되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회의 과도한 엄숙주의와 권위주의를 깨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류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회의 권위가 영원히 양복으로 세워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직접 비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날 "관행이나 TPO(시간·장소·상황)가 영원히 한결같은 것은 아니"라며 "'일 할 수 있는 복장'을 입고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너무 천편일률적 복장을 강조하는데 국회 내에서도 이런 관행을 바꾸자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류 의원은 이번 상황에 대해 "저의 원피스로 인해 공론장이 열렸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정치의 구태의연, 여성 청년에게 쏟아지는 혐오발언이 전시됨으로써 뭔가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겠나. 이렇게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게 진보 정치인이 해야 할 일 아닐까"라고 말했다.
☞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누구? 1992년생으로 만 27세다. 21대 국회 '최연소 국회의원'이자 헌정사상 역대 네 번째 최연소 국회의원이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재학 시절 게임 동아리 회장을 지냈으나 '롤 대리 사건'으로 회장직에서 사퇴한다. 대학 졸업 후 게임회사인 스마일게이트에 입사했다가 퇴사해 민주노총 회섬식품노조에서 선전홍보부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정의당에 입당해 성남시위원회 부위원장, 경기도당 여성위원장, IT산업노동특별위원장 등을 역임한 뒤 정의당 비례대표 1번을 받으며 국회에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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