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피해 동료 향해 "정말 죄송하다…이건 진심"
[더팩트|국회=문혜현 기자] "그 당시 분위기상 오래 알고 지내온 감독의 잘못을 들추기도 싫었고, 제 잘못도 들추기 싫었다. 두려워서 그랬다."
'처음 (고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에 대한) 폭행·폭언 사실을 부인했다가 왜 양심선언을 했느냐'는 물음에 김도환 트라이애슬론 선수는 "제 잘못을 인정하는 언론의 질타를 받을가 그랬다"며 이같이 답했다.
이용 미래통합당 의원은 이날 '원수가 누구냐'는 물음에 경주시청 팀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고인의 다이어리를 공개했다. 김 선수에게 '마지막으로 청문회를 보고 있는 최 선수 부모님과 피해 동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자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이건 진심이다"라며 "다른 말은 나중에 찾아뵙고 말씀드리겠다"고 짧게 답했다.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선 고 최숙현 선수와 관련한 '철인 3종경기 선수 가혹행위 및 체육분야 인권침해에 대한 청문회'가 개최됐다. 청문회는 고인을 향한 추모의 의미로 모든 출석인들이 묵념한 뒤 진행됐다. 이날 청문회엔 최근 최 선수에 대한 가혹행위를 인정한 김 선수만 출석했다.
최 선수에 대한 직접적인 가혹행위로 구속된 안주현 팀닥터와 김규봉 전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감독, 주요 가해자로 지목된 장윤정 주장선수 등도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었지만 거부 의사를 밝히고 나타나지 않았다.
김 선수는 최 선수가 사망 전 폭행 혐의로 고소한 인물로 지난 6일 문체위 긴급현안질의 당시 폭행·폭언 사실을 부인하며 "사과할 게 없다"고 했지만, 이후 언론을 통해 김 전 감독과 장 선수의 폭행 사실을 공개하고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다.
이 의원은 김 선수에게 "늦었지만 사죄를 구하기로 결정한 만큼 다른 가해자의 죄를 밝힐 수 있게 김 선수가 노력하길 바란다"고 하자 김 선수는 "알겠다.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고 했다.
이날 청문회엔 박양우 문체부장관을 비롯해 여준기 경주시 체육회장, 주낙영 경주시장, 이기홍 대한체육회장 등 다수 체육계 관계자들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문체위원들은 김 전 감독 등 출석 요구를 거부한 국회차원의 고발과 김 선수의 증언, 경주시체육회의 안일한 대응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앞서 통합당은 지난 2017년부터 문체부 장관을 역임했던 도종환 문체위원장을 향한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이달곤 통합당 의원은 의사진행 발언에서 "체육계에 만연한 성폭력·폭력 문제가 있지만 사건·사고가 있을 때마다 대책만 발표하고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관리감독을 게을리 한 책임도 대단히 높다"며 "지난 10년 동안 대통령도 나선 경우를 포함해 아홉 차례 대책이 수립됐지만 우리는 비극적 결과를 맞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좀 살펴보면 우리 도 위원장도 지난 2017년 6월부터 작년 4월가지 문체부 장관으로 있었다"며 "이번 청문회에서 주 가해자였던 김 전 감독은 문체부 장관 표창장도 받았다. 그래서 이런 폭력 사건의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고 있는데, 위원장이 장관으로 계실 적에 어느 정도 관계성이 있는지를 저희가 알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박정 민주당 간사는 "오늘은 청문회 자리"라며 "우선 청문회에 집중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며 반박했다.
또한 이날 김승수 통합당 의원은 안 씨 및 김 전 감독과 장 선수의 불출석과 관련해 "관련 핵심 증인이 출석을 거부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전용기 민주당 의원은 "오늘 가장 필요한 몇 사람이 빠졌다. 국회의 명령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가에 대한 생각에 아연할 따름"이라며 "법원의 동행 명령도 불투명하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청문회장에 불출석한 자들에 대한 고발 의견을 요청드린다"고 했다. 이에 도 위원장은 "국회의 동행 명령을 거부할 경우 국회에서의 증인 및 감정에 관한 법률에 의해 고발 조치를 요구할 것"이라며 "양당 간사와 협의해 추후 조치 방안을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질의응답에선 김 선수를 중심으로 위원들의 질의가 이어졌다. 유정주 민주당 의원은 김 선수에게 "고 최 선수를 폭행·폭언한 게 있나"라고 묻자 김 선수는 "있다"고 답했다. 김 선수는 뉴질랜드 전지훈련 중 "육상 훈련을 하면서 최 선수가 앞길을 막는다는 이유로 뒤통수를 한 대 가격했다"고 설명했다. 또 '장 선수와 김 전 감독, 안 씨가 최 선수에게 폭행과 폭언을 일삼는 것을 봤느냐. 얼마나 자주 했나'라고 묻자 김 선수는 "명확히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도 "일주일에 한 번 (폭행)했다"고 밝혔다.
'팀닥터 안 씨가 부적절한 마사지를 했다는데 사실인가'란 질문에 김 선수는 "맞다. 치료 명목으로 마사지 했다"면서도 "(다른 선수가 추행하는 것은) 직접 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김 선수는 자신 또한 팀닥터 안 씨에게 매달 80만 원에서 100만 원을 치료비 명목으로 지급했고, 중학생 때부터 김 전 감독으로부터 폭행을 당해왔다고 밝혔다.
또 "장 선수가 최 선수와 수영 훈련 중 꿀밤을 때리는 걸 본 적이 있다"고도 했다. 임오경 민주당 의원은 최 선수 이외 전직 선수들이 자필로 작성한 진술서를 화면에 띄우며 "김 선수도 장 선수 및 다른 선배에게 당한 적이 있나"라고 물었다.
김 선수는 "왕따 말고는 다 있었다"며 김 전 감독으로부터 당한 폭행 사실도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김 전 감독은 김 선수에게 '(김 전 감독이) 때리지 않았다고 말해야 한다'는 강요를 받았다. 또 김 전 감독은 다른 선수들에게 전화해 진술서를 작성하면서 폭행 내용 등을 적지 못하도록 강요했다.
이밖에 김 전 감독은 김 선수 부모에게 허락을 받고 무차별 폭행을 가했으며, 김 선수는 맞지 않는 날이 없었다. 이에 임 의원은 "김 전 감독은 안 씨를 교사하고 방조한 혐의도 있다"며 "이 둘의 관계를 보면 갑자기 영화 '기생충'의 대사가 떠오른다.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둘의 냄새가 똑같다. 이 둘의 관계는 체육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폭력적 기생관계"라고 꼬집었다.
이밖에 이날 청문회에선 경주시체육회가 고 최 선수 가해에 대해 김 전 감독과 장 선수를 제외하고 팀닥터 안 씨에 대해서만 대구지검 고발을 진행한 점 등이 지적됐다.
윤상현 무소속 의원은 "결국 체육회가 피해자 보호 원칙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렇게 피해자를 궁지에 몰지 않았다면 최 선수가 고인이 되어 있었겠나"라며 "경주시 체육회가 이 사건을 어떻게 축소·은폐했는지 책임자 문책이 중요하고, 안 씨가 어떻게 경주시청에 들어왔는지 과정을 규명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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