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시한 넘긴 공수처…통합당 협조 구해야 할 與 '법 개정' 압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 법정 시한인 15일이 지났다. 여야는 서로 네탓 공방이 한창이다. 전문가는 민주당이 내민 법 개정 카드는 기존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지난달 16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는 윤호중 법사위원장. /배정한 기자

거대 여당 잇단 악재에 스텝 꼬여…거대 여당 정치력 부재 비판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국회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공수처장후보추천위 구성을 마치지 못하면서 공수처 출범 법정 시한인 15일을 넘겼다. 시한을 기준으로 출범 준비에 집중하려 했던 거대 여당은 예기치 못한 '박원순 사태'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한 분위기다. 야당을 협상장에 불러들이기 위한 '공수처법 개정' 카드는 여권 내에서도 "제정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동안 '속도 조절론'에 힘을 실었던 더불어민주당은 15일 또 법 개정 카드를 꺼내 들며 강공 드라이브를 걸었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은 이날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야당 2명의 추천 위원을 추천하지 않거나 또는 추천하더라도 계속적으로 후보자에 대한 비토권을 행사해서 절차를 계속 파행 내지는 지연시키는 사태가 계속된다면"이라고 전제하면서 관련 법 개정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같은 당 법사위원인 박주민 최고위원도 이날 YTN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에서 "당에서 공식적으로 법 개정을 검토하거나 고민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통합당이 계속 버틴다면) 출범을 위해서 (개정이) 정 필요하다면 고민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법을 개정할 경우 백혜련 민주당 의원이 최근 발의한 운영규칙안대로 국회의장이 정한 시한까지 야당이 추천위원 명단을 제출하지 않으면 추천권을 국회의장이 지정하는 다른 교섭단체에 주도록 하는 안이 유력하다.

민주당은 공수처 설치법의 위헌성에 대한 심판 청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공수처 관련 절차에 협조할 수 없다는 미래통합당의 주장에 대해 "전혀 타당하지 않다"며 반박하고 있다. 박 최고위원은 이날 당 회의에서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로 만들어진 공수처이니 만큼 출범을 연기하는 것은 민의를 배신하는 일이며 국회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원순 성추행 의혹 논란'으로 인한 민심이 싸늘해진 상황에서 민주당이 '검찰 개혁'이라며 공수처 출범을 밀어붙일 경우 거대 여당의 오만 프레임으로 역공당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은 최근 n번방 사건 조주빈의 공범이던 강모 씨를 변호했던 장성근 변호사를 민주당 몫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으로 선임했다가 6시간 만에 철회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공수처 출범 시기에 맞추려 서두르다 논란을 자처했다는 당내 비판도 나온다.

공수처 출범 준비에 속도를 내려했던 민주당은 박원순 사태로 싸늘해진 여론을 의식,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과 환담을 나누는 남기명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 준비단장

검찰총장과 법무부 갈등을 부각해 공수처 추진 동력을 키우려 했던 전략도 벽에 부딪혔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시도 때도 없이 검찰총장의 수사지휘에 간섭하지 말고 법무부의 양성평등 자문제도나 인권국을 가동해 박원순 성피해 사건의 진실을 가려내 주기 바란다"라며 "지금은 피해자의 고통을 헤아려야 할 때"라고 추 장관을 비판했다.

이 같은 여론을 의식한 듯 그동안 '법 개정'을 시사했던 이해찬 대표는 이날(15일) "공수처를 출범시켜야 할 국회가 법률에 따른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 공직자의 위법, 탈법을 조사하는 기관의 출범을 공직자인 야당 국회의원이 막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이런 국면에서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핵심 국정과제를 위해 법 개정 추진을 밀어붙이면 야당의 반발은 더 거세질 수 있다. '야당의 거부권'은 공수처법에서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핵심 조항이기 때문이다.

검찰개혁 찬성 진영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국회가 시행일이 되도록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조차 구성하지 않고 있는 것은 국민에게 한 약속을 보란 듯이 어기고 있는 것"이라며 여야 모두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통합당에 대해 "철 지난 위헌론을 다시 끄집어내 공수처 시행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을 향해서도 "이틀 전에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을 지명했다. 국민에 약속한 대로 15일에 설립할 의지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의 공수처 법 개정 추진 움직임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임 교수는 "(공수처법 제정) 처음에 보수를 탄압하는 도구로 공수처를 악용할 것이라고 야당에서 반대했다. 이에 공수처가 그런 도구로 전락하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게 그 조항이다. 그래서 핵심 조항인데 이를 야당이 후보 추천을 안 한다고 해서 시행도 안 해보고 조항을 손본다면 설립 취지가 훼손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법 개정 추진 의견이) 압박 카드용이라고 해도 그런 식으로 말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 '저 사람들이 애초에 여야 합의로 공수처장 후보로 추천할 생각이 없었다'라며 오히려 야당의 극한 반발을 불러들일 수 있다.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했다.


unon89@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