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환의 '靑.春'일기] 이용수 할머니 조롱, 지켜만 볼 것인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앞줄 왼쪽) 할머니가 윤미향 민주당 당선인 수사와 처벌을 촉구한 가운데 이 할머니를 향한 인신공격이 일부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월 청와대에서 이용수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이동하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제공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국론 분열 우려에도 靑 침묵...역사 왜곡 저지 강력한 메시지 필요

[더팩트ㅣ청와대=신진환 기자] 몹시도 추운 2015년 12월 말. 서울 종로구 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를 위한 1211차 정기 수요집회가 열렸다. 취재를 목적으로 간 현장에서 처음 이용수 할머니를, 수요집회를 직접 목격했다.

당시 마이크를 잡은 이 할머니는 울분을 토했다. "오리발만 내밀고 있는 일본을 그냥 둬서 되겠나. 우리는 일본에 공식적인 사죄와 법적인 배상을 하라고 24년 동안 외치고 외쳤다. 아베(일본 총리)는 정신을 못 차렸다. 죄를 짓고도 죄를 모른다."

찬 공기를 녹이는 할머니의 절절한 외침에서 통한의 삶과 분노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끔찍했던 과거를 떠올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투쟁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우면서도 존경스러운 마음이 절로 일어났다. 한편으로는 죄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이 할머니는 일본의 공식 사과와 법적 책임이 있을 때까지 집회를 계속하겠다면서 의지를 다졌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취임 후부터 현재까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문 대통령과 김 여사는 이 이 할머니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각별히 챙겼다. 취임 첫해인 2017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 11월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국빈만찬에도 이 할머니를 초대했다. 다음 해 1월 15일, 2월 25일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 8월 14일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2019년 3월 1일에도 문 대통령은 이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이용수 할머니는 지난해 3·1절 행사에서 옆에 앉은 김정숙 여사에게 그동안 끼고 있던 가락지를 선물했다. 김 여사는 어려운 역사 속에서 고통을 당하신 할머니께서 보내주시는 믿음과 신뢰에 보답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해 3·1절 행사에서 나란히 앉은 김 여사와 이 할머니. /청와대 제공

김 여사 역시 이 할머니와 특별한 일화가 있다. 지난해 3·1절에서다. 당시 김 여사와 나란히 앉아 기념식을 지켜보던 이 할머니는 끼고 있던 가락지를 빼 손에 끼워 줬다. 뜻밖의 선물에 김 여사도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웃었다. 이 할머니는 가락지를 끼워주며 "대통령님과 여사님 두 분이 건강하시길 바란다. 늘 두 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대통령께서 우리나라를 위해 해나가시는 일들, 옳은 일이고 잘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말했다.

가락지를 받아든 김 여사는 "어려운 역사 속에서 고통을 당하신 할머니께서 보내주시는 믿음과 신뢰에 보답해야 한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 역시 지속해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미안함과 정부의 노력 등을 수차례 피력했다.

그런데 최근 이른바 '윤미향 의혹'을 폭로한 이 할머니에 대해 조롱과 비난이 거센 것을 보면서 국민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든든한 힘이자 후원자라는 생각이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정치적 목적이 있지 않느냐는 음모론 뿐 아니라 '토착왜구' '노망났다'라는 공격이 벌어지고 있다.

극우성향 단체는 어수선한 상황을 틈타 망언을 쏟아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위안부 자체를 부정하며 소녀상의 즉각 철거, 수요집회를 중단하라는 주장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일본 우익 언론도 이때다 싶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전체에 대해 왜곡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사안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2017년 11월 7일 국빈만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화 아이캔스피크의 실제 주인공인 이용수 할머니를 포옹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이 할머니가 제기한 기부금 유용 등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을 둘러싼 의혹은 수사기관에서 밝힐 일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이 할머니 폭로의 진정성과 정당성이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냉정한 시각으로 의구심을 갖는 것은 자유지만, 최소한 이 할머니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것은 가혹하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침묵하고 있다. 최근 청와대 관계자를 만났을 때 '윤미향 사태'와 이 할머니 기자회견과 관련한 입장을 묻는 말이 자주 나왔다. 이때마다 청와대는 당이 대응할 문제이며 정의연 회계 문제 등은 관련 부처가 자료를 받아 검토하고 있다는 식의 답을 되풀이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이 할머니는 물론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그동안의 노력 등을 비춰 볼 때 현재 청와대의 침묵은 아쉬운 대목이다. 국민 갈등 조짐과 우익단체의 망동이 날로 심화할까 염려된다. 또, 이 할머니를 향한 도 넘은 조롱도 멈췄으면 한다. 청와대도 분명한 메시지를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2018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은 "할머니들은 가족들에게도 피해사실을 말하지 못한 채 고통을 안으로 삼키며 살아야 했다. 국가조차 그들을 외면하고, 따뜻하게 품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죄송해했다. 이 할머니를 향한 비판과 비난이 도를 넘는 지금 문 대통령의 발언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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