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사면 고민할 때…세습공천 비판 가장 쓰라려"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퇴임을 앞둔 문희상 국회의장이 21일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참 복이 많은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의 남은 2년 임기 과제로 '통합'을 꼽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검토할 때라고 말했다. 40년 정치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을, 가장 슬펐던 순간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언급했다. 퇴임 후에는 작은 텃밭을 가꾸며 살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문 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돌아보니 덤 치고는 너무 후한 정치인생을 걸어왔다"며 "무려 다섯 정부에서 제게 역할이 주어졌고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할 수 있었다. 놀라운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아쉬움은 남아도 나의 정치 인생은 후회 없는 삶이었다. 하루하루 쌓아 올린 보람이 가득했던 행복한 정치인의 길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팍스 코리아나의 시대를 만들고 싶었다"며 "몸은 떠나도 문희상의 꿈, 팍스 코리아나의 시대가 열리길 간절히 바라고 응원할 것"이라고 했다.
◆ "文대통령은 운장…통합 위해 박근혜 사면 고민해야"
문 의장은 문 대통령을 향해 "참 복도 많은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복 많은 대통령이 드물다. 용장은 지장을 못 이기고 지장은 덕장을 못 이긴다고 하는데 덕장은 운장(運將), 운 좋은 장수를 못 이긴다. 최고의 장수는 복 많은 장수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일각에선 야당 복이 있다고 하는데 그건 너무 예의가 안 되고 (대통령이) 시대정신에 항상 관심 있고 그대로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역대 대통령이 되신 분들은 시대정신을 타고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남은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 "제일 중요한 건 코로나19에 관해 전 세계적으로 받는 평판에 걸맞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성과를 내지 않으면 이제 슬슬 불평 불만이 나올 수 있다. 시종일관 적폐 청산 얘기만 하면 정치보복이라고 말하는 세력들이 늘어나고 그러면 개혁의 동력은 상실할 것"이라며 "과감하게 통합의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중에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상당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타이밍을 놓치면 놓칠수록 의미가 없게 된다. 나는 지금이 적기라고 본다"라고 했다.
문 의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권유하는 의미인가'라며 발언의 뜻을 묻자 "사면을 고민하지 않아도 될 시간이 됐다는 의미다. 사면하라는 건 아니다.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하지만 그 분 성격상 (사면을) 아마 못 할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 첫 현직 대통령 탄핵한 20대 국회 '성숙한 민주주의' 평가…개헌론 재강조
문 의장은 20대 국회를 돌아보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건의안에) 300명 중 234명이 찬성했고, 반대는 51명뿐이었다. 휘황찬란하게 오래 남아있을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임기 내내 강조해온 개헌론을 다시 꺼내 들었다. 문 의장은 "비선실세, 국정농단은 대통령 치하 문제점으로 모든 게 시작된다. 이 문제를 풀려면 제도적으로 완성해야 한다. 그 첫 번째가 개헌"이라며 "국정농단이 있었다는 게 분명하다면 제도화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집중을 막기 위해 내각제 대통령제가 돼야 한다. 국무총리의 헌법상 권한을 보장하는 책임 총리제를 중간 단계로 거치자는 게 내 주장"이라고 했다.
이어 개헌 추진 시기에 대해선 "여야 간에 만남을 많이 갖고 대화해야 하면서 대안이 우리 정치에 얼마큼 진전이 있을까 (논의해야 한다)"며 "대통령은 이미 안을 냈다. 그런데 또 대통령 이름으로 바꿔 내라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그러니 국회가 맡아서, 특히 야당 중심으로 이를 관철하기 위해 자꾸 걸어야 한다. (개헌 추진은) 이때가 제일 적당하다"고 했다.
◆ 김대중 당선과 노무현 서거 그리고 아들 공천 논란
문 의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되던 날을 정치인생 중 가장 기뻤던 날로 꼽았다. 그는 "제 정치 목표는 김 전 대통령 당선 하나였다"며 "처음 만났을 때 유명한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고 김 전 대통령이 그 위업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며 "(박정희 정권 때 대의원을 지냈던) 아버지와 싸웠는데 김 전 대통령 당선된 날 아버지 묘지에 가서 큰절을 드리고 "아버지 내 말 맞았죠"라며 아버지와 진정성 있는 화해를 했다"고 했다. 문 의장은 서울 동교동 지하서재에서 이뤄진 김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을 계기로 정치계에 발을 들였다.
이어 "가장 슬펐던 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였다. 지금의 문 대통령이 전화로 '돌아가셨다'고 알려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회한과 자책, 결국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애환이 가슴 속에 서려 있다"고 했다.
국회의장 2년 임기 동안에는 지난해 12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을 처리했던 순간이 가장 기뻤다고 회고했다. 문 의장은 "이 일을 가장 보람차게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세 명 대통령의 한결같은 꿈이 검찰개혁이었고 공수처 설치였다. 김 전 대통령 때 (검찰개혁이) 2개월도 안돼 실패로 끝났을 때 실망하는 모습을 봤다. 노 전 대통령도 결과적으론 실패했고 그로 인해 돌아가셨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라고 했다.
이어 "그런 세 분 역대 대통령들의 꿈과 염원이 있었고, 결국 '숙명이구나'라고 6개월 전부터 결심하고 있었다"라며 "하지만 계속 협치를 강조해온 사람인데 결과적으로 강행처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면서 기뻐만 할 수 없었다. 그날이 제일 슬프고 가슴 시린 날이기도 하다. 기쁘면서 서러웠다"고 했다.
그는 또 지난해 이른바 보수 진영으로부터 '4·15 총선 아들 공천을 위해 직권상정 등으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을 밀어붙인다'는 비판을 받은 데 대해 "가슴 쓰라렸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문 의장은 "내가 어떻게 아들 출세를 시키려고 내 위치를 이용하겠나. 그 말을 들었을 땐 이루 말할 수 없는 쓰라린 심정을 느꼈다. 동지라는 사람들도 그 말에 함몰됐다. 지난 19대 공천에서 탈락했을 때도 모멸감을 느끼거나 쓰라리지 않았는데 이 일을 겪으면서는 쓰라렸다"고 했다. 문석균 전 민주당 의정부갑 상임부위원장은 아버지 문 의장 지역구인 의정부갑에서 출마를 준비했으나 ‘세습 공천’ 논란 관련 당 내부 우려로 출마를 포기했다가 무소속으로 다시 나와 낙선했다.
문 의장은 퇴임 후 계획에 대해선 "10평 정도 꽃밭이 있으면 좋겠다. 또 텃밭 10평 정도 있으면 쌈을 좋아하니 계속 쌈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이 있다. 그렇게 되길 바라는데 이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 2018년 7월 20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에 오른 문 의장은 오는 29일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임기를 마치게 된다. 이로써 80년 서울의 봄 이후 40년 정치인생에 마침표를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