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정당, 진보·개혁 의제 제시로 민주당 압박할 듯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더불어시민당과의 합당을 마무리만 남겨두면서 거대 양당 체제로 입지가 좁아진 군소정당과의 협치 방안 모색이 21대 국회의 과제를 떠안게 됐다. 민주당은 범여권 정당이 진보·개혁적 어젠다를 발굴해 제시하면 이를 지렛대로 삼아 보수 야당과 협상 에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12일 중앙위원회를 열고 더불어시민당과의 합당을 결의하고 합당 수임 기관으로 최고위원회를 지정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중앙위원 총 657명 대상 더불어시민당과의 합당 안건에 대해 온라인 투표를 진행한 결과, 97.79%에 달하는 486명이 찬성, 11명(2.21%)이 반대했다고 밝혔다. 양당은 13일 오후 2시 합동 최고위원 회의를 거쳐 1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합당을 신고한다. 합당 절차가 최종 완료되면 민주당의 21대 의석은 더불어시민당 14석(용혜인·조정훈·양정숙 비례대표 당선인 제명)을 합쳐 총 177석이 된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지난 두 달간의 '두 지붕 한 집 살림'은 접게 됐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사상 초유의 '비례위성정당' 창당사는 꼼수와 편법이 난무해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민주당은 지난해 말 범여권 군소정당들과 '4+1 협의체'를 만들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리고 통과시켰다. 이에 미래통합당이 비례 위성정당을 출범시키자 민주당 지도부는 미래한국당을 향해 "꼼수 정당" "퇴행적 정치행위" 이라고 맹공을 퍼부었지만, 군소 정당들과 함께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했다.
이 과정에서 녹색당과 미래당이 불참과 함께 "더불어시민당은 개혁세력의 공개적인 수평적 참여가 보장되는 선거연합 정당의 모습이 결코 아니다"고 비판을 들어야만 했다.
가까스로 창당한 '더불어시민당' 공천 과정도 떠들썩했다. 당초 참여 대상이었던 4개 군소정당 중 가자환경당과 가자평화인권당은 공천을 받지 못하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더불어시민당은 시대전환, 기본소득당 2개 정당과 자체 공모한 후보들로 10번까지 채웠고, 나머지는 민주당 후보들을 배치했다. 민주당은 통합당과 마찬가지로 총선에서 비례대표 투표용지 앞순위를 받기 위해 7명의 '의원 꿔주기'도 단행했다. 여권 표 분산을 우려해 열린민주당과는 때아닌 '친문 적통'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47석 가운데 미래한국당이 19석, 더불어시민당이 17석을 얻고 정의당은 5석, 열린민주당과 국민의당은 3석에 그쳤다. 이후 민주당 내에서 더불어시민당 위성교섭단체 구성 검토 목소리도 나왔지만, 부정 여론에 따라 이내 '조속한 합당'으로 당론이 정해졌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비례정당에 참여하면서 내세운 '소수정당 원내 진출 확대'는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에 각각 1석씩을 안기며 민주당 의석으로 흡수된 셈이다.
177석의 거대 여당이 된 민주당은 20대 국회 때처럼 '4+1협의체'를 꾸릴 필요도 없이 입법 과제들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됐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야당의 의견 경청하고 또 야당이 하고 싶어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최대한 반영하겠다"면서도 "엄중한 상황에 야당이 계속 발목만 잡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면 거기에 끌려다닐 수는 없다"며 제1야당과의 협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입법 과제들을 거대한 몸집으로 밀어붙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민주당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방역과 경제대책을 최우선 의제로 놓고 검경수사권 조정 후속조치, 국정원법 법제화 등 개혁 과제도 먼저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범여권 군소정당에 강한 주도권을 갖게 된 상황에서 입지가 좁아진 군소정당은 강도 높은 진보 개혁 의제를 발굴해 여론을 주도하며 존재감을 보이겠다는 방침이다.
이날 정의당 신임 원내대표에 선출된 배진교 당선인은 김 원내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도 "정의당에 국민이 주신 10%의 지지는 촛불혁명이 바랐던 개혁을 국회에서 함께 힘차게 추진해 나가라는 의미로 알고 있다"라며 "김 원내대표가 개혁에 속도를 내겠다고 말씀을 많이 했는데 속도 내는 데 좀 더 협력할 의사가 있다. 정의당은 함께 협력하면서도 방향과 내용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겠다"고 했다.
'형제 정당'이라고 불렸던 열린민주당이 21대 국회에서 민주당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도 주목된다. 총선 전 한 토론회에서 이낙연 상임 선거대책위원장은 열린민주당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 "연합이다, 합당이다 그런 것은 상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열린민주당의 국회 입성이 현실화한 만큼 이들과 친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설훈 민주당 최고위원도 총선 직후인 지난달 17일 "열린민주당에서 당선된 세 분은 우리와 함께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당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열린민주당은 이날 당원투표를 통해 최강욱 당선인을 당 대표로 선출했다. 온라인 당원 투표에서 99.6%의 찬성표를 받은 최 대표는 "비록 저희가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짧은 역사를 가진 정당이지만 앞으로 대한민국 국회, 정치, 검찰, 언론을 바꾸라는 중요한 사명을 안겨주신 것으로 기억하겠다"며 "저희가 쏘아 올리는 빛이 한국 역사에서 의미 있는 개혁 성과를 완성해낼 수 있도록 저희 당이 앞장서고 뜻을 받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범여 군소정당이 의석수는 적지만 뚜렷한 색채를 갖고 있는 만큼 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정의당은 21대 국회에서 인권, 복지, 노동, 여성, 소수자 등등 진보적인 어젠다를 먼저 발굴해 공론화 해나가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열린민주당은 의석이 3석밖에 없지만, 군소정당 가운데 정의당을 제외하고 가장 개혁적이다. 친조국 색채가 있지만 정의당이 제시하기 힘든 현실적인 어젠다로 민주당과 대화하고 협상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검찰 개혁이나 국정원 개혁 등에 대해 민주당을 압박하고 여론을 주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