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당 "민주당 성추문 이번 뿐 아냐"…시급 과제 산적 국회 운영 차질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저는 한 사람에게 5분 정도의 짧은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했다. 이것이 해서는 안 될 강제 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4·15 총선 '180석 압승' 여운이 가시기도 전 더불어민주당이 오거돈 부산시장이 '미투' 논란이 터져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오 시장은 23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 공무원 성추행을 인정하며 사퇴했다. 당장 야당은 "민주당 지도부가 총선 전 알았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민주당은 30여일 남겨둔 20대 국회 운영 계획에도 차질을 빚게 됐다. 디지털 성범죄 처벌 강화법,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추경안을 처리해 유종의 미를 거두려 했다. 또, 이를 동력 삼아 21대 국회에서 문재인 정부 국정 과제 추진에 속도를 내려했지만, 오 시장발 미투로 야권에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민주당도 이를 고려한 듯 신속한 대응에 나섰다. 오 시장의 사퇴 기자회견 후 3시간 만에 당 입장을 밝혔다. 윤호중 사무총장은 "오 시장이 불미스러운 일로 사퇴하게 된 것에 대해 국민에 머리 숙여 깊이 사과한다"며 성비위 사건 무관용 원칙에 따라 즉각 징계에 착수하겠다고 했다. 민주당 부산시당도 "책임 있는 공당으로서 이같이 불미스러운 일로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드린 데 대해 고개 숙여 사죄하며 엄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24일 당 윤리심판원에서 오 시장 제명 건을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오 시장은 지난 7일 부산시청 소속 여성 공무원을 집무실로 불러 신체 접촉을 했다. 피해자가 이달 초 부산성폭력 상담소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고, 오 시장의 공개사과와 사퇴를 요구했다. 사퇴 여부와 시점 등에 대한 협상을 진행하며 한 법무 법인을 통해 '공증'까지 받았다. 부산시의회 등에 따르면 오 시장의 성추행 의혹은 지난해에도 한 차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 시장은 지난해 10월 페이스북을 통해 "소도 웃을 가짜뉴스"라며 강하게 부인한 바 있다.
성추문 의혹이 여러 차례 제기되면서 당 차원의 철저한 진상 조사가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또, 오 시장 사퇴 연기 과정에서 민주당 지도부와 사전 협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민주당은 관련 내용을 모두 부인했다. 윤 사무총장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중앙당은 전혀 알지 못했다. (사퇴 공증 문서 마련도) 당과 상의한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피해 당사자는 입장문을 통해 "(총선 후 사퇴발표 등에 대해) 어떤 외압이나 회유도 없었으며 정치적 계산과도 전혀 무관하다.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하지만 미래통합당은 민주당이 의도적으로 사퇴 시점 조율 가능성이 있다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정오규 통합당 부산 서동구 전 당협위원장은 "성추행 시기가 '4월 초'라면 21대 총선이 들어갈 무렵"이라며 "선거를 위해서 숨기고 있었는지, 청와대와 여권에서도 알고 있었는지 시기를 주목해야 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통합당은 오 시장 성추행 의혹 제기와 함께 과거 민주당 주요 인사들의 성추문을 집중 조명했다. 김성원 통합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어 "민주당 출신 인사들의 성 관련 문제는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여성인권과 보호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민주당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고 했다.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을 깍아내리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성나라당' '성누리당'이라는 별명이 만들어지기도 했었는데, 최근에는 민주당 인사들이 성추행 사건을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통합당과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압승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공천에서 성비위 문제에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며 혁신을 추구했던 당 이미지가 한 순간에 추락하게 됐다.
민주당은 최근 3년 사이 굵직한 미투 의혹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2018년에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비서 성폭행 혐의로 구속, 지난해 대법원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확정 받았다. 정봉주 전 열린민주당 최고의원도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가 성추행 의혹이 불거져 출마를 접었고, 이번 21대 총선 당 경선 과정에서도 공천 배제됐다. 민병두 의원도 성추행 의혹으로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했다가 이를 번복하고 2개월여 만에 당에 복귀했지만, 역시 공천에서 배제돼 무소속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투 의혹으로 물러난 영입인재 2호 원종건 씨, 여성비하와 욕설이 난무한 유료 팟캐스트에 참여한 김남국 안산 단원을 당선인으로 이어졌다.
정치권은 오 시장 성추행 건과 사퇴 시점을 당 지도부가 사전에 알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상식적으로 부산시장이라는 광역자치단체장이 사퇴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를 당 지도부와 상의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어 보인다. 당 지도부에 전혀 귀띔도 하지 않고 덜컥 사퇴한다고 밝히는 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당이 이에 대한 공세를 이어나간다면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처벌 강화법, 코로나19 대응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2차 추경안 처리 등 20대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현안들이 여야 정쟁으로 추진 속도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민주당은 이날 '디지털성범죄 근절대책 당정협의'를 통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물의 처벌 대상 범위를 넓히는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통합당은 "'대책' 운운하기 전에 당장 본인들부터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통합당이 이번에 밝혀진 사건 만으로 정쟁화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 평론가는 "통합당에서는 사퇴 시점을 의도적으로 미룬 게 아니냐고 비난할 순 있겠지만 지금 와서 총선 결과를 뒤집어 엎을 수 없다. 역지사지라면 야당도 당 지도부 차원에선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건으로 통합당이 만약 긴급재난지원금 문제를 엮는다든지 정치 공세를 펼친다면 야당에 대한 국민 여론은 더 나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