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국고보조금 최소 10억 더…'보조금 불 비례성' 묵은 과제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21대 국회 원 구성을 논의하는 정치권에선 벌써부터 '위성 교섭단체'가 거론되고 있다. 거대 양당이 자신들의 비례정당을 교섭단체로 승격시킨다면 국민세금으로 지급하는 국고보조금을 독식하면서 정당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 심화할 전망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다음 달 15일에 각 정당에 지급하는 2분기 국고보조금 총액은 약 115억1549만 원(21대 국회의원 총선거 선거권자 총수*1047원/4)이다.
현재 정당 국고보조금은 원내 교섭단체(20석 이상) 정당들에게 총액의 50%를 주고 있다. 교섭단체들은 이를 의석 수나 득표율에 상관 없이 똑같이 나눠 갖는다. 5석 이상 20석 미만 정당에는 총액의 5%씩만 나눠주고, 5석 미만 정당에는 일정 요건을 충족한 경우 총액의 2%를 지급한다. 이처럼 배분한 뒤 남은 보조금의 절반은 다시 의석수 비율에 따라, 나머지 절반은 21대 총선 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에 나눈다.
이를 적용해 자체 추산한 결과, 현재 국회 의석수를 적용하면 2분기 국고보조금은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 민생당, 미래한국당 등 교섭단체 4개 정당이 먼저 약 57억5774만 원을 나눠 갖는다. 더불어시민당(8석), 정의당(6석) 등 2개 정당은 5억7577만여 원씩 가져가게 된다. 이 외 국민의당, 열린민주당 등은 2억3000만여 원씩을 먼저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외 나머지 보조금은 의석수 비율과 총선 득표율에 따라 배분해 더불어민주당이 가장 많은 보조금을 타게 된다.
원내 교섭단체 수가 추가된다면 셈법도 달라진다. 정치권에선 벌써부터 민주당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원내 교섭단체' 구성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더불어시민당은 17일 비공개 회의를 열어 21대 국회 교섭단체 구성 여부 등 향후 거취에 대해 논의했다. 이와 관련, 더불어시민당 관계자는 "당 차원에서 공식적인 논의가 있었다고 말하기엔 이르다. 대표 등 지도부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개인적 차원에서 말했는데 당 차원에선 아직 조심스런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번 총선에서 17석을 확보한 더불어시민당은 모(母)정당인 민주당으로부터 '의원 꿔주기' 방식으로 3석만 얻으면 수월하게 원내 교섭단체 지위를 얻게 된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교섭단체를 만들 경우 대응 차원에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경우엔 교섭단체 5개 정당이 국고보조금 57억여 원을 나눠 갖게 된다.
21대 국회의원 의석수를 기준으로 하는 3분기 보조금 지급 때는 정당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거대 양당이 각자의 비례정당을 원내 교섭단체로 만들 경우 4·15총선에서 1석도 확보하지 못한 민생당은 빠지고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통합당과 한국당 등 사실상 두 곳이 57억여 원을 나눠 갖게 된다. 이어 정의당(6석)이 5억7577만 원을 가져가고, 국민의당(3석), 열린민주당(3석)은 총액의 2%인 약 2억3000만 원을 먼저 배분받는다. 특히 의석수 180석인 민주당-더불어시민당은 위성 교섭단체를 만들지 않을 때보다 최소 10억 원 이상의 국고 보조금을 더 얻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만큼 소수정당 몫은 줄어든다. 이번 총선 정당 득표율로만 따져봤을 때 정의당(9.6%)과 국민의당(6.7%), 열린민주당(5.4%)는 이보다 적은 비율로 보조금을 받게 된다.
이처럼 의석수 20석 이상 정당에 총액의 50%를 먼저 떼어주는 방식은 거대 정당에만 유리하므로 이를 수정해야 한다는 비판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하지만 관련법 개정 논의는 입법 주도권을 쥔 거대 정당의 무관심 속에 진전되지 못했다. 교섭단체 우선 배분은 1991년 12월 정치자금법에 처음 담겨, 1997년부터 교섭단체 선지급 비율을 총 지급액의 40%에서 50%로 올린 후 현재까지 이를 유지하고 있다.
국고보조금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1980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정당 보조금 제도는 정당 정치를 활성화하고 정치 부패를 막기 위해 국민의 혈세로 지급하고 있다. 현행법상 국고보조금은 인건비, 사무운영비, 정책개발비, 조직활동비 등 용도가 정해져 있다. 하지만 '기타 정당활동에 소요되는 경비'라는 목적 확인이 애매한 항목이 있고, 당 회계나 사용내역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다. 사실상 '눈먼 돈'이라는 지적이다.
총선 과정에서부터 정당간 재정 여력에 따른 선거운동 규모는 크게 차이났다. 선거를 치르는 해에 추가로 지급되는 선거보조금 역시 정당보조금과 같은 방식으로 배분되기 때문이다. 총 440억7000여만 원 가운데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이 모두 144억7000여만 원, 통합당과 한국당은 176억6000여만 원을 타냈다. 특히 한국당은 막판에 교섭단체 지위를 확보해 61억 원을 받았다. 반면 정의당은 27억8000여만 원, 민중당 9억6000여만 원을 받았다. 총액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수정당 선거비용 몫은 또 줄어들었던 셈이다. 이를 두고 지난달 31일 임미리 교려대 교수 등은 헌법재판소에 선거보조금 지급 위헌소원 및 사용중단 가처분 신청을 낸 바 있다.
민주당은 선거운동비용을 버거워하는 더불어시민당에 연이율 3.6%의 이자로 총 16억 원을 빌려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당초 계획대로 총선 직후 두 당이 합당하면 시민당은 선관위로부터 선거비용을 보전받지 못하고, 민주당은 사실상 빌린 금액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다. 이 같은 정당운영 면에서도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이 합당을 미루고 제2교섭단체 구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소수정당은 턱없이 높은 기탁금과 선거비용 보전 기준으로 재정 지원받기가 쉽지 않다. 기탁금(국회의원 지역구 후보 기준 1500만 원)과 선거비용은 선거 투표율이 15% 이상이면 전액, 10%이상 15% 미만이면 반액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이하면 아예 한푼도 못받는다. 75명의 지역구 후보를 낸 정의당의 경우 심상정(고양갑 39.3%), 여영국(창원성산, 34.8%), 이정미 의원(인천연수을, 18.3%), 윤소하 의원(전남 목포, 11.8%), 권영국(경북 경주, 11.5%) 후보를 제외하고 모두 선거비용을 보전받지 못한다.
이번 총선에서 서울 광진을에 출마했던 오태양 미래당 대표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소수정당이 겪는 선거운동 과정의 애로사항을 털어놨다. 그는 "비례후보의 경우 저희는 선거 공보물을 전국에 다 보내지 못하고 절반인 천만 가구 정도만 A4용지 한 장 짜리로 보냈다. 아주 저렴하게 했는데도 1억3000만 원 정도 소요됐다"며 "비례 선거는 당선자를 한 명만 배출해도 선거비용을 보전받는데 저희는 그렇지 못하니 공보물을 제한적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또, 비례 후보는 오프라인에선 손피켓을 들거나 명함 돌리는 것밖에 못해 소수정당에게 특히 불리하다. 거대 정당은 미디어 노출도 높고, 대형버스에 홍보물을 새겨 전국을 도는데 소수정당들은 꿈도 못꾼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구도 같은 상황이다. 다른 정당들은 유세차, 현수막, 명함, 공보물 등 선거비용이 다 보전되니 선거비용 상한선인 1억 5000만 원을 다 쓴다. 제 경우는 5000만 원 들었다. 이것도 국고보조금이 한푼도 안 나오는 저희에겐 굉장히 큰 돈이다. 특히 이번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주민들 만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홍보 수단 자체도 재정 기반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났다"고 했다.
그는 이어 "선거 게임 룰 자체가 소수정당이나 정치 신인에겐 어려운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저는 처음에 코로나19도 있으니 유세차 없이 조그만 스피커로 유세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자리 맡은 곳을 상대 후보 측에서 일방적으로 큰 유세차로 밀고 들어와 당해낼 재간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조그만 유세차를 써야 했다. 지난 2018년 지방 선거 때는 거대 정당 소속 후보가 오타로 인해 공보물을 세 차례나 찍는 바람에 전국에 인쇄소가 없어서 인쇄소를 구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결국 찾은 인쇄소에서는 돈을 더 달라고 해 비싸게 준 적도 있었다"고 했다.
오 대표는 소수정당은 정치진출도 갈수록 힘들어지고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하며 거대 정당은 기성 정치인 목소리만 대변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현 정치상황을 진단했다. 그는 "소수정당의 대부분 후보들은 선거 후 빚을 진다. 한 2년 동안 후보들은 선거 준비를 하는 게 아니라 직전 선거의 빚을 갚느라 2년을 소비한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던 이들은 출마를 포기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후보들이 자꾸 바뀌고 같은 어려움과 실수를 반복한다. 이런 상황이 지난 몇십년 간 계속돼 온 악순환이다. 반면 거대정당에선 후보들이 빚을 안 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차분히 다음 선거를 준비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결국 대부분 젊은 정치인들은 기성정당에 편입되는데 그곳에 가더라도 자기 목소리를 내기보다 줄 서기를 하니 기성정당의 관성적 목소리만 남고 새로운 청년 정치인들의 싹은 사라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국가혁명배당금당은 이번 21대 총선에서 '여성 추천 보조금' 명목으로 8억 4000여만 원을 타냈다. 정치자금법 기준을 충족하는 77명의 여성 후보를 내면서다. 하지만 이들 모두 당선권은 커녕 경합지도 없이 낙선하면서 정치자금법을 악용한 '세금 먹튀('이득만 챙긴 뒤 역할 없이 떠난다'는 의미)'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1대 국회에선 의석수의 '기울어진 운동장' 현상으로 나타나는 정당간 빈부 격차를 완화하고, 꼼수를 막고, 정치시장 활성화를 위해 소수정당의 활동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 대표는 "우리나라 선거제도가 워낙 양대 정당 중심으로 만들어져 소수정당에 불리하다"며 "기탁금의 경우 이번에 낮춘 비례대표 후보처럼 지역구 후보도 500만 원 수준으로 낮추거나, 정치 신인이나 40대 미만 청년 후보에겐 기탁금 기준을 차등으로 두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선거비용 보전 기준도 소수정당 봉쇄조항처럼 3%나 5% 정도로 낮추면 좋겠다. 국고보조금은 의석수 여부보다 독일의 경우처럼 정당 후원금의 몇%를 국가가 보조해주는 식으로 바뀌면 좋겠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