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 얼굴 되겠다" 고민정 차량 유세에서 '촛불'만 7번 언급
[더팩트ㅣ광진구=박숙현 기자] "광진을은 뼈를 묻을 사람 고민정 대 떠날 사람 오세훈 아닌가."
4·15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일 이른 아침. 서울 광진구 자양사거리에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등장했다. 청와대에서 한솥밥을 먹던 고민정 광진을 후보를 지원 유세하기 위해서다.
임 전 실장에 대한 취재진의 관심은 뜨거웠다. 30여 명 취재진의 눈과 귀가 이날 주인공인 고 후보보다 그에게 쏠렸다. 그는 지난해 연초 청와대를 나오며 이번 총선에서 종로 출마를 준비했었지만, 그해 11월 돌연 '총선 불출마·제도권 정치 은퇴'를 밝히며 중앙정치와 매스컴에서 사라졌다. 이후 약 5개월 만에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짙은 파란색 셔츠에 회색 코트로 다소 힘을 뺀 차림의 임 전 비서실장은 시종일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취재진 질문에 답했다.
임 전 실장은 본격 아침인사 전 기자들과 만나 광진을을 첫 유세 지원 지역으로 택한 이유에 대해 "가장 마음이 가는 곳이 여기였다"고 답했다. 이어 "광진이 이번 선거에서 상당히 상징적인 곳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지쳐 있는데 새로운 정치, 희망이 싹트는 정치의 가장 대표적인 곳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작게라도 힘을 보태고 싶어 택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당 직책을 맡지 않으면서 '마음 가는 후보들' 지원 유세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취재진과 짧은 질의응답 후 임 전 실장은 자양전통시장 입구 앞에서 고 후보와 옆으로 나란히 서서 출근길 인사를 함께 했다. 두 사람 모두 일회용 마스크를 쓴 채였다. 고 후보는 위아래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나섰다. '기호 1번 고민정'이라고 적힌 띠도 어깨에 둘렀다.
고 후보는 씩씩하고 큰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 고민정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라고 말하며 90도로 허리를 숙여 행인들에게 인사했다. 옆에 있던 임 전 실장도 "잘 부탁드린다"며 허리를 굽혔다. 고 후보는 임 전 실장에게 "오늘 생각보다 사람들이 적게 다니는 것 같다"며 아쉬운 듯한 말도 나눴다.
출근길 인사가 20여 분간 진행되는 동안 대여섯 명의 시민들이 이들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주먹 인사를 하는 이들도 있었고, 다가오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반면 한 50대 여성은 조용한 어조로 "이런 때만 온다"며 불평하며 지나가기도 했다.
아침 인사 후 두 사람은 자양사거리 인도에 주차된 유세차량에 올랐다. 고 후보 연설이 시작되자 지나가던 이들이 발걸음을 멈췄다. 마스크를 쓴 시민들은 팔짱을 끼고 진지하게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고 후보는 긴장한 표정으로 "반갑습니다. 광진사람 고민정입니다"라고 입을 뗐다. 그는 "이곳 광진에 와서 선거운동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돼 간다. 많은 날 중에서 어젯밤 유일하게 잠을 못 잤다. 제가 마이크 드는 것,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었는데 이제는 누군가의 말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 고민정이 스스로 서는 날이어서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다"고 했다.
고 후보는 "이제 광진의 얼굴이 되겠다. 여러분들께서 광진을 대한민국의 중심에 세워달라. 광진의 모든 힘을 저의 모든 능력과 모든 열정을 쏟겠다"며 "수많은 광진 사람들과 손에 손을 잡고 촛불의 힘을 지킬 수 있도록 문재인 정부의 완성을 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그 길에 저는 선봉에 서겠다"고 유세를 마무리했다.
약 5분 가량 진행된 연설에서 '촛불'이라는 단어는 7번 언급됐다. 고 후보 연설 도중 일부에선 불만도 터져나왔다. 고 후보 연설을 지켜보던 한 60대 남성은 "마음에 안 든다"라고 언성을 높였다. 고 후보가 '내 아이들을 지키고 싶었다'며 정치에 뛰어든 배경을 설명하는 대목에선 "거짓말 하지 마. 어떻게 지켜낸 나라인데...내가 왜 월남전에 참전했는데"라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고 후보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임 전 실장은 거물급 정치인답게 연설도 능숙했다. 고 후보가 정치 신인으로서의 포부를 중심으로 다소 밋밋한 연설을 한 반면 임 전 실장은 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인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말문을 열었다.
임 전 실장은 "국민과 대통령과 정부가 힘을 합쳐 코로나19를 극복해가고 있는 이 모습은 전 세계에 모범으로 기록되고 있다. 코로나 위기를 극복한 이후에도 세계적인 경제 불황이 올 것이라고 모든 전문가들이 예상하고 있다"며 "대통령과 정부를 조금 더 격려해 주시고 힘을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이어 고 후보의 약점으로 거론되는 '정책능력'을 치켜세우는가 하면, 상대인 오 후보를 향해선 "광진을 떠날 사람"이라고 저격했다.
임 전 실장은 고 후보에 대해 "생활을 이해하고 아픔을 느낄 줄 아는, 그 좋은 바탕에 문재인 대통령 곁에서 보고 배우고 느끼면서 아마도 문 대통령의 철학과 정책, 어쩌면 숨결까지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고민정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며 "고민정에게는 문 대통령의 철학과 정책뿐만 아니라 지금 정부가 펼쳐가고 있는 모든 정책 전반에 대한 가장 깊은 이해가 자리 잡고 있다. 그냥 준비가 아닌 넘치도록 준비가 돼있다"고 했다.
오 후보에 대해선 "왜인지 제겐 오세훈과 광진이 잘 어울리지 않다. 어색하다. 왜인지 제게는 (오세훈 후보가) 곧 떠날 사람으로 보인다. 아마도 제가 오 후보였다면 두 번이나 선택받지 못했던 종로에서 마지막 땀 한 방울까지 흘리며 종로 구민의 선택을 받으려고 노력했을 것"이라며 "과연 오 후보가 이곳 광진에 뼈를 묻고 국민들이 염증을 내는 현실 정치를 극복하는 새로운 정치의 희망을 싹 틔우고자 이곳에 오신 것인지, 아니면 벌써 마음은 콩밭에 가있는지. 저만 이런 생각 하고 있는 것일까"라고 했다. 임 전 실장은 오 후보의 광진을 출마를 '콩밭 정치', '과객 정치'라고 이름 붙였다.
그는 연설 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여긴 뼈를 묻을 사람 고민정 대 떠날 사람 오세훈 아닌가. 유권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게 그런 부분이라서 지역구 정할 때 어렵다. 그만큼 헌신적으로 남을 거라는 믿음을 (오 후보가) 주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이어 오 후보가 향후 당선되더라도 떠날 것을 확신하는 듯 "내기라도 해야 하나"며 농담도 던졌다.
이 자리에선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2번으로 나온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에 대한 입장을 묻는 민감한 질문도 나왔다. 이에 임 전 실장은 "당에 책임있는 자리 맡고 일하는 게 아니라 그 얘기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나중에 따로 물어달라. 총선 후 대답하겠다"며 웃어 넘겼다.
고 후보는 박빙 우세 결과가 나온 최근 여론조사에 대해 "마지막 결과는 4·15총선 때 열어봐야 알 수 있는 거다. 대통령을 모시고 있을 때도 지지율이 나올 때마다 일희일비 하지 않겠다는 게 습관이 됐다. 그러다 보니 수치에 대해 큰 고민 없다"고 했다. 이어 "앞으로도 10여일 정도 남아있는데 거리유세 등을 통해서 더 많은 광진 주민에게 새로운 정치, 새로운 모습, 각오들을 보여드리면서 확신을 심어드리고자 한다"고 답했다. 각오를 다지는 얼굴에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고 후보와 임 전 실장이 다른 곳 유세를 위해 떠난 자양사거리 한복판에는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만들어 유행했던 노래를 개사해 만든 선거송이 울려펴졌다. 사거리 횡단보도 맞은편에선 오태양 미래당 후보와 응원단의 유세 소리도 들려왔다.